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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Mar 12. 2024

책 대충 읽고 싶은 사람

[석세스리딩], 가와기시 고지

대충대충, 빨리빨리, 쉬엄쉬엄


내가 책을 읽는 태도이다. 유튜브도 1.5배속으로 보는 시대에 뉴럴링크가 상용화되면 없어질지도 모를 책 따위에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소모할 수 없지 않은가? 책은 모름지기 빨리 읽고 취할 것을 취한 다음 버려버려야 제 맛이다.


독서를 하는 이유야 개개인마다 다 다를 것이지만, 독서로 얻는 건 대게 비슷하다. 지식, 지혜, 감동, 공감, 위로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사람들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기억하기 위해서 이다. 인류의 최초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 기원전 4500년경부터였다고 하는데, 그때 당시 점토판에 적어 놓은 것은 ‘누가 언제 얼마의 돈을 빌려 갔다.’는 채권문서였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 인류는 최초 문명시대부터 돈 빌려간 빚쟁이를 잊지 않기 위해 책을 쓰고 기억했다.


책을 쓴 이유는 기억하기 위해서이고, 책을 보는 것은 기억을 상기하기 위해서이다. 책에 담긴 기억의 조각들은 우리에게 때로는 감정적인 위로와 감동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방대한 지식의 보고로서 인류 문명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책은 65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기억 저장장치, 하드디스크 역할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책이 기억의 용도라면 책을 읽는 사람은 그 기억을 보고 싶은 관음증적인 목적일 것이다. 남의 기억을 훔쳐보고 싶다. 그 기억을 내 것으로 만들어 책을 쓴 사람처럼 훌륭해지고 싶다. 이런 욕망이 책을 보게 한다. 책을 보는 목적을 거창하게 뛰어난 지성이 지혜를 옅본다든지, 인류 문화의 보고를 경험한다든지로 말할 필요는 없다. 그저 우리는 남들에게 관심이 있고, 남들이 써놓은 내밀하고 사적인 부분까지 알고 싶은 관음증을 타고났을 뿐이다.


나의 솔직한 욕망을 인정하고 나니 독서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책을 진지하게 보는 엄격한 태도를 버리고, 유튜브 영상처럼 가볍게 대하기 시작했다. 책을 쓴 저자를 스승처럼 대하기 보다 시루떡을 나눠주는 옆집 아주머니 처럼 느끼게 되었다. 책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니 꼭 배워야 한다기보다, 재밌는 것 있나 한번 읽어봐야지라는 호기심으로 책을 대하게 되었다. 이렇게 책에 대한 태도가 딱딱함에서 말랑말랑함으로 변하고 나니 책이 쉽고 편해졌다.


책을 1000권 읽으니 인생이 변했어요!


나는 어느 정도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밀리의 서재를 구독한 지도 4~5년 정도 되었고, YES24의 등급이 최고등급인 것만 봐도 내가 책을 일반적인 수준보다는 많이 본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요즘은 독서의 양보다는 질에 집중하는 편이 낫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고 있다. 아무리 많이 읽는다 한들 남는 게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책을 하루에 한 권 이상 뚝딱 읽어버리고 그 내용을 술술 이야기할 수 있는 초능력"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아직은 질보다는 양에 집중하는 자세를 견지하려고 한다. 질보다 양에 집중하기 위해 오늘도 난 독서법책을 두리번 거린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으로서 아직도 독서법책을 두리번거리고 있다는 건 좀 부끄러운 일이긴 하다. 우주 명작 '코스모스'를 읽다가 독서법 책 '석세스 리딩'을 읽는다는 건 마치 시험공부기간에 교과서를 보지 않고 만화책을 읽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책을 빨리 잘 읽고 싶은 베짱이이기 때문에 나보다 잘난 베짱이에게 배워야 한다. 독서법을 쓴 저자들은 나보다 독서고수임이 분명하고, 고수의 가르침은 언제나 유용하기에 독서법 읽는다는 것은 내게 숨겨진 무공비급 같은 것이 있는지 탐색하는 과정이다.


가와기시 고지의 '석세스 리딩'에는 어떤 무공비급이 있을까? 기와기시 고지는 본인 스스로를 게으른 베짱이라고 고백하는 솔직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10년간 1000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책을 바탕으로 돈도 잘 벌 고 있다고 하니 군침이 싹 도는 게 아닌가? 빨리 읽어버려서 무공비급을 날름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석세스 리딩'의 무공비급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책은 대충 보세요. 하루에 15분만 보시면 돼요. 책을 보고 잊어버리고 쉬세요.


아니 이게 무슨 애들 장난 같은 말이란 말인가? 책을 보는 것을 종교 경전 보듯 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저 이단자를 끌어다 화형에 처하라고 할만한 불경스러운 말이 아닌가? 내가 이 책을 본 것은 다행이었다. 나는 그다지 독서맹신론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불경스러운 책이라는 생각보다 오히려 내가 책을 보는 태도와 비슷한 저자의 태도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그렇다. 책은 대충 보는 것이다. 빡세게 읽으라고 아무리 떠 들어들 봐라, 대충 보는 내 태도를 고치나. 책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고, 스승으로 생각하면 책에서 멀어진다. 친구와는 편하게 술 한잔 할 수 있지만, 스승에게는 깍듯하게 접대를 해야 한다. 나는 책에 접대할 생각은 없다.


책을 대충 보라고 하지만 '석세스 리딩'이 대충 쓰인 책은 아니다. 저자가 중요하게 강조하는 '1% 독서법'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다. 1% 독서법과 그 근거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독서법 요약]

1) 책을 보기 전 목적을 정한다.

2) 책은 15분만 읽는다.

3) 스키밍(훑어보기)을 원칙으로 하되, 모르는 부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나오면 정독한다.

4) 책을 읽고 읽은 내용을 머리에 떠올려본다.

5) 책을 보고 나서는 잊어버리고 쉰다.


[1% 독서법의 근거]

1) 초두효과, 최신효과: 처음 부분과 마지막만 기억이 잘난다.(첫 키스와 마지막 이별만 기억에 남는다.)

2) 자이가르닉 효과: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미드 '다음화에서 계속' 같은 효과)

3) 칼리굴라 효과: 하지 말라면 더하고 싶다.(청개구리 습성)

4) 데드라인 효과: 시간이 정해지면 누구나 똥줄이 탄다.(김대리! 얼마나 남았어!)


어떤가? 저자의 무공비급이 그럴듯하지 않은가? 하루에 15분만 읽으라니, 독서 초보자라도 도전할만한 과정이 아닌가? 독서력이 좀 늘었다고 생각하면 15분을 읽고 5분을 쉰다음 다시 15분을 읽으면 된다. 이렇게 15분 독서, 5분 휴식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독서량을 늘리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포모도로 공부법이라 한다.



인간이 가장 잘 학습할 수 있는 최대 집중시간이 15분이라고 한다.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1) 15분 공부, 5분 휴식을 한 그룹과 2) 쭉 80분간 쉬지 않고 공부한 그룹의 학습 성취도를 조사하니 1) 번그룹의 학습 성취도가 더 높았다고 한다. 우리 뇌는 인풋만 하면 쉽게 지쳐버린다. 인풋을 어느 정도 해주고 쉬는 시간을 줘야 뇌도 '윈도 조각모음'처럼 기억을 잘 저장한다. 이처럼 학습 성취도와 뇌의 기억저장방법이란 측면에서 포모도로 공부법을 독서에 활용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빠르게 책을 읽고 많은 부분을 기억하려면 대충 읽어야 한다. 여기서 대충이란 내가 원하는 부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찾아내서 그것만 짧은 시간에 기억하는 방법을 말한다. 어차피 모든 인간의 성과는 파레토 법칙에 따른다.(8:2의 법칙으로 전체 성과는 전체의 20% 요소가 결정한다는 법칙) 전체의 20%가 진또배기다.  


빨리 읽는 초능력 같은 속독법은 없다. 배경지식이 늘면 아는 부분을 생략하면서 읽을 수 있기에 독서가 빨라지는 것뿐이다. 따라서 배경지식을 많이 쌓는 것이 빨리 읽는 정도이다. 배경지식을 많이 쌓으려면 책을 많이 다양하게 읽는 것이 중요하고, 이런 점에서 '석세스 리딩'의 '1% 독서법'은 의미가 있다. 책을 지치지 않고 많이 읽는 법을 알려주니 말이다.


이렇게 오늘도 무공비급 하나를 훔쳤다. 이제 연마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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