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이다], 세스고딘
마케팅은 고객의 문제점을 해결해 주는 관대한 행위다.
제 와이프는 통역사입니다. 국제회의나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에 참가해 참석자들 간의 원활한 소통을 돕는 일을 하고 있죠. 말이 무기인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통역사와 마이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통역사가 좋은 마이크를 쓴다는 건 좋은 음질로 자신의 말을 잘 전달하기 위함이죠.
전 와이프의 일을 잘 이해하고 있고, 굉장히 응원하고 서포트하는 입장이라 마이크에 대한 입장도 관대합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열리게 된 비대면 사회는 통역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이제는 통역사가 직접 행사장에 찾아가지 않고도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원격통역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시류에 따라 와이프는 집에서 쓸 마이크를 장만해야 했죠.
'예티(YETI)'라는 고품질의 마이크 브랜드가 있답니다.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고 게임 스트리밍을 할 때 잘 사용하는데, 와이프의 니즈에도 딱 부합하더랍니다. 그래서 가장 큰 주요 제품 하나를 샀는데, 문제는 이게 너무 큰 겁니다.
처음에는 집에서만 쓸 것이라 생각하곤 '큰 게 음질도 무조건 좋을 것이다.'라는 제 조언을 들었던 와이프는 이내 막심한 후회를 하게 되죠. 거의 마이크가 남자 팔뚝만 한 크기였으니까요. 무거운 무게 때문에 집에서 설치했다가 해체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죠.
마이크를 산 지 한두 달이 지나고 이제는 마이크를 들고 외부로 나가야 하는 상황도 펼쳐지자 와이프는 용단을 내립니다.
이렇게 된 거 작은 거 하나 더 사자
와이프가 마이크를 사며 진정으로 바랬던 점은 좋은 음질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휴대하기 편하고 설치하기 쉬운 편의성도 와이프에게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비싼 마이크를 두대나 사게 되는 과소비? 가 펼쳐졌죠.(사업상 필요에 따른 결정한 것이므로 과소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는 아닙니다. 난 아니야! 여보)
세스고딘은 'THIS IS MARKETING(마케팅이다)'에서 고객이 진짜로 원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버드 대학 마케팅 교수인 시어도어 레빗은 사람들은 0.25인치 드릴을 원하는 게 아니라 0.25인치 구멍을 원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중략>... 하지만 이 말 역시 충분히 멀리 내다보지 못했다. 누구도 구멍만을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구멍을 낸 다음 벽에 설치할 선반이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나서 0.25인치 크기의 구멍을 뚫은 벽에 선반을 설치하고 잡동사니를 올렸을 때 느낄 기분. 사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마케팅이다, 세스고딘, 샘 앤 파커스 P.45
드릴을 살 때 사람들이 멋진 드릴을 원하는 게 아닌 ‘벽을 잘 뚫는 드릴을 원한다.’는 하버드 교수 시어도어 레빗의 말도 통찰력이 있는 말입니다. 구매 시 물건에 대한 사용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세스고딘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들어갑니다. 드릴을 사용해 선반을 설치한 후 느낄 고객의 만족감이 그것이죠. 제품이 내 생각대로 잘 굴러가서 내가 원하는 것을 딱! 하고 성공시켰을 때의 그 기쁨말입니다.
만족감에서 하나 더 들어가 볼까요? 드릴로 선반을 잘 만들고 깔끔해진 침실의 모습을 자랑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이 남편은 아내에게 고래처럼 칭찬받죠. 그래서 남편은 고래처럼 춤춥니다. 아내에게 인정받는 남편의 모습, 이 것이 드릴을 사는 남편의 진정한 욕구였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고객이 원하는 건 다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1단계) 제품의 사용가치만 보고사는 사람도 있고, (2단계) 사용 후의 만족감 때문에 사는 사람도 있죠. 혹은 (3단계) 제품을 통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인정욕구를 만족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마케팅은 이들의 가장 심층적인 욕구까지 해석하고 그 욕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일입니다. 제품의 우수성만을 강조는 마케팅이 망하는 이유는 위와 같은 고객의 심층적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한 마케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스고딘은 마케팅을 ‘변화를 일으키고, 고객의 문제점을 해결해 주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세스고딘이 말한 마케팅을 잘하기 위해서는 5단계의 마케팅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1단계: 들려줄만한 이야기, 가치 있는 물건 고안
2단계: 극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설계와 제작
3단계: 최소유효시장에서 필요한 내러티브(의미부여&해석)와 이야기 만들기
4단계: 입소문 퍼뜨리기
5단계: 오랜 기간 꾸준하고 일관된 마케팅으로 신뢰를 구축하기
이를 키워드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마케팅이 쉬워 보입니다. '좋은 제품을 소수의 사람들에게 재밌게 홍보하고 약속을 잘 지키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요?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마케팅은 정말 어렵다면서 매일 골머리를 썩고 있고, 대기업들도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붓으면서도 이번 마케팅이 잘 될지를 매일 전전긍긍합니다.
저는 마케팅이 절대 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케팅은 계속 공부할 의미가 있는 과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케팅을 공부하다보면 결국 돌고 돌아 만나게 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이해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제 와이프는 왜 비싼 마이크를 두 개나 샀을까요? 선반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 남편은 어떤 드릴을 고를까요? 가스 택시가 아닌 전기차 택시를 고르는 택시기사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이처럼 마케팅의 근본적인 고민은 고객, 즉 사람에게로 향합니다.
사람에 관심이 많고 사람의 내면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 마케팅을 잘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마케팅은 소수의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건 그 사람을 잘 이해하는데서 비롯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