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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ul 07. 2024

뛰면서 책도 보고 이거 완전 럭키잖아!


뭐요? 세 달 만에 10kg를 뺐다고요?


오랜만에 만난 아는 형님을 만났습니다. 나이도 저랑 비슷하고 키도 저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형님인데 체중은 저보다는 조금 더 나가는 그런 형님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잦은 회식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한잔씩 해야 하는 고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형님이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얼굴은 홀쭉해지셨고 저와 비슷한 뱃살은 아예 사라져 버렸습니다. 요즘에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고 하던데, 이 형님을 보니 그 말이 참말이었습니다.


“아니 형님 어떻게 그렇게 살을 빼셨어요? 뭐 식단 조절이라도 하신 건가요?”


“아니 그런 거 없다. 그냥 밥도 그대로 묵고 회식도 다 참석한다. 그냥 뛰면 된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는 과장을 싫어하는 경상도 남자들의 담백한 성품을 닮았습니다. 10kg 정도 뺀 것 가지고 유난떨기 싫다는 듯 담담하게 다이어트 과정을 말씀해 주셨는데, 5개월간 2kg 정도밖에 빼지 못한 저로써는 부끄러워지더군요.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매일 10km씩 뛰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헬스장에서든 공원에서든 걷기 뛰기를 반복하며 땀을 흘리면 살은 절로 빠진다는 게 형님의 결론이었습니다.


사실 10km라고 하면 뜨악할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건 매일 하기에 부담스러운 목표가 아닌가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군생활 하신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10km를 30kg 군장도 매고 가는데 맨몸으로 간다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큰 맘을 먹어야 되는 일이긴 해도 점진적으로 하다 보면 꼭 불가능한 목표는 아닙니다.


오랜만에 가본 애증의 헬스장


형님의 성공 사례를 직접 목격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 뭐 까짓것 한번 해보지 뭐.’라는 결심을 하고 한동안 안 가던 헬스장을 가봅니다.


그간 헬스장 사용료로 매달 1만 원씩 자동이체를 했는데, 자동이체의 함정인지 의지력의 부족인지는 몰라도 거의 반년 간은 헬스장을 안 가고 사용료만 지불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땅을 파도 동전 하나 벌기 어려운데 길가에 한 달에 만원씩 뿌리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참 기가 막힙니다.


오늘은 마침 일요일이었고, 바깥에는 비도 왔기 때문에 운동을 하자면 변명의 여지없이 헬스장으로 가야 했습니다. 가장 싫어하는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한다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하는 수 없었습니다.


아 정말 뛰기 싫다. ㅜㅜ


저는 군대에서 매일 아침마다 구보를 하는 게 그렇게 싫었습니다. 근력운동이라면 그래도 참고 좀 하겠는데, 뛰는 건 체질적으로 싫었나 봅니다.


체질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헬스장을 같이 다닌 와이프가 비 오듯 땀을 흘리며 뜀박질을 할 때도 그 모습에 감화되기는커녕 ‘아마 난 안될 거야.’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대기만 했으니까요.


뛰기는 싫으니 빠르게 걷기라도 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귀신의 집에 들어가기 전 아이들처럼 심호흡을 크게 하고 러닝머신에 오릅니다. 귀에는 에어팟을 꽂고 오디오북을 켭니다. 나는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이라 제 몸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목표는 30분간 빠르게 걷기였습니다. 10분 정도 지나니 몸에 가득 찬 지방층에 땀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듯 내 몸의 지방이 지글지글 익어가는 상상을 합니다. 그렇게 지방이 없어지면 제 뱃살에 숨겨졌던 복근도 홍해의 맨바닥처럼 보이길 바라면서요.


어찌 저지 30분을 버텨냈습니다. 책도 어느 순간 70p를 읽었군요. 잘 해냈습니다. 독서에 운동을 곁들이니 최고의 성찬이었습니다. 저 자신을 속이는 만행을 저지르긴 했으나 효과는 좋았습니다.


한동안 몸무게는 정체 상태입니다. 근력운동도 중단한 지 일주일이 넘어가네요. 다시 살을 빼보자고 맘을 먹어봅니다. 10kg를 감량한 그 형님이 제 눈앞에 나타난 건 저도 살을 뺄 운명이기 때문에 만나게 된 기연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원영적 사고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잘 나가는 아이돌 그룹의 센터 장원영 양이 유행시킨 긍정적 사고방식의 하나인데요. 물이 반쯤 남았을 때 물이 반이나 남았네 하는 정도의 긍정적 사고가 아니라 물에 마침 먹고 싶었는데 지금 딱 내 눈앞에 물이 있네? 이거 완전 럭키잖아!라고 극도의 긍정적 사고를 하는 것을 일컬어 원영적 사고라 한다고 합니다.


저도 원영적 사고를 해봅니다.


‘마침 책 읽는 시간도 부족하고 살도 빼고 싶었는데, 러닝머신에서 30분 이상 뛰면서 책을 보다니 이거 완전 럭키잖아?!’


한 2주일 정도는 매일 헬스장에 출근하겠습니다. 한번 진짜 살이 빠지는지 지켜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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