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자 May 19. 2024

권태기와 천하통일

운동하고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 권태기가 찾아옵니다.

운동이라는 애인은 참 어렵습니다. 조금씩 썸을 타듯 친해지다 어느 순간 격렬하게 사랑하고, 익숙해졌다 싶어 서로의 매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니 곧 권태기가 찾아옵니다. 운동과 연애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운동과 헤어지고 그냥 화려한 솔로로 복귀할까 잠깐 망설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운동과 헤어진다면 앞으로 다시는 건강한 몸이라는 결혼 같은 순수한 행복은 느끼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이건 내 생애 마지막 연애이다.'라는 생각으로 운동과의 헤어질 결심을 뿌리칩니다.


문제는 운동의 난이도가 조금 어려워졌다는 것과 운동을 해도 뚜렷하게 살이 빠지는 결과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는 건 힘들게 힘들어졌는데, 그에 따른 결과는 보잘것이 없었다는 것이죠. 누구나 동기부여가 잘되진 않습니다. 돈이 벌려야 장사가 재밌는 것이고, 키스를 해야 연애가 짜릿한 것처럼 말이죠.

 

아니 이게 하루만에 말이되냐고요.



운동을 하니 76kg 정도는 한 끼만 굶어도 빠집니다. 그런데 뭔 음식만 먹었다 하면 78kg에 근접하니 이건 앞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뒤로 가는 것도 아니고, 주차장에서 후진하다가 차들 속에 갇힌 멍청한 운전자 같은 느낌이네요. 


팔 굽혀 펴기 100번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새로 시작한 운동은 별거 없었습니다. 그냥 멋있게 말해 풀업, 실상은 철봉매달리기를 하나 추가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게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지 하고 나니 하루 이틀은 앓아눕게 되더군요. 젊은 시절에는 밤새서 놀아도 다음날 쌩쌩했는데, 이제는 하루만 무리해도 그 여파가 한 주가 가니 세월이 야속합니다. 


1주 차 계획이라 쓰고 2주를 해버린...


어차피 망한 거 그래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억지로 운동을 하고 이렇게 글을 씁니다. 글을 쓰기 위해 운동을 한 건지 운동을 했기에 글을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타자를 두드리는 지금의 심경은 혹한기 훈련을 끝낸 군인의 심정입니다. 


요즘에는 하도 사람들이 힘들고 열심히들 살다 보니 매체에서는 곧잘 '살아가다 한 번쯤은 게을러도 괜찮다.'라고 위로하는 말들이 많이 들립니다. 하지만 실상은 한 번만 게을러지는 게 아닌지라 계속 게을러져 결국 패배감에 휩싸이곤 하죠. 그래서 쉽사리 여유를 가지라고도 위로하지 못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한번 안 하기 시작하니 다시 하는 게 너무 힘들더군요.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중요한데, 포기하지 않는 게 더 중요했습니다. 저는 멈춰 선 운동 기관차를 다시 가동하기 위해 열 배의 의지력이 필요했습니다. 


식단은 뭐... 반포기 상태입니다. 아이들과 한 끼는 포기할 수 없죠.


식단은 이미 포기했고, 그냥 잘 먹고 잘 삽니다. 아침에 공복상태인 게 조금 힘들지만 견딜만합니다. 아침을 물 한잔으로 대신한 지 꽤 오래됐습니다. 그리고 식단은 몰라도 운동은 계속합니다. 근육이 한번 붙으니 체중이 쉽게 빠지진 않아도 또 쉽게 찌지도 않네요. 


내 몸의 건강한 세포의 영역을 오늘도 한 뼘 늘려갑니다. 내 몸속의 살덩어리 들을 전부 평정하는 그날이 아직 멀게만 느껴집니다만, 그래도 제 몸속에서 벌어지는 난세의 혼란은 잠재워야겠습니다. 천하통일 까짓 거 한번 해보죠. 건강한 몸의 평화를 찾는 그날까지 계속합니다. 운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