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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줌마 Aug 09. 2024

망치면 어때, 내 집인데!

Day 1: 철거, 떨리는 집수선의 시작 

 망치면 어때~ 내 집인데!

공사를 계획했던 12월이 다가왔다. 사실 공사 직전에 미국 출장이 잡혀 일도 많고 정신도 없어 그냥 말씀이 잘 통했던 목수분께 맡길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랬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집을 고치자니 목수님께 맡기면 예산이 훌쩍 넘어갔다. 공사를 시작하면 돈이 더 들 테고, 집기며 가전이며 구입하면 또 더 들 텐데. 비용을 줄이자면 역시 직영밖에 답이 없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한국에 있는 것도 아닌데...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내게 용기를 준 건 어느 목수 유튜버님의 한마디였다.


"망치면 뭐 어때~ 내 집인데!"

  

맞다. 내 집인데. 망쳐도 그만인걸 뭔 걱정이랴. 걱정할 시간에 준비를 열심히 해보자 하고 나름 피피티도 정리하고, 구글 시트 정리하고, 미리 주문할 것들을 주문하고, 각 공정 사장님들과 일정을 확정하며 내가 할 일을 준비했다. 가족들은 집이 제법 정리되었을 크리스마스쯤  (나의 희망이었다 하하하)  오기로 하고, 12월 3일, 나 홀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피피티에 전체 계획과 각 공정별 세부 사항 (사장님과의 주요 대화, 견적서, 시공 계획 등) 을 정리해 두었다.



D-1, 벽 타공부분 마킹


아무리 망치면 어때... 란 마음 가짐이었어도, 첫 시작인 철거는 정말 긴장 만발이었다. 철거 자체는 건물 벽 하나만 없애는 작업이기 때문에 간단하지만, 창호와 문 설치를 위한 벽체 타공 자리를 표시할 사람이 누구도 아닌 나였기 때문이었다. 창호는 진즉 다 발주해놓았는데 기존의 창호와 같은 사이즈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어디를 어떻게 잘라야 할지 내가 정확히 마킹을 해야 철거팀이 벽을 제대로 잘라줄 것이었다. 그러나 나란 인간, 초등학생 시절 직사각형 국기함을 제대로 못 만들어 정사각형으로 만들어버린 이력이 있는 심각한 도형치(?). 정말 너무너무너무, 긴장되었다. 이거 마킹 제대로 못 그어서 구멍 잘못 뚫으면 공정 다 밀린다. 이거 마킹하자고 목수님을 부를수도 없고...   


그래서 단 한 번 사용할 거지만 그럼에도 주문했다. 레이저 레벨기, 수평계 세트, 직각자. 도구의 도움을 받아 한 땀 한 땀, 벽에 줄을 긋고, 수직 수평을 맞추고 커팅 라인과 창의 크기를 마킹했다.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끝내고 호텔방에 들어왔다. 제발 잘 맞게 해 주세요...      


하룻밤이지만 나를 도와준 천군만마, 레이저 레벨기와 수평계
이런 식으로 창호의 크기와 커팅할 라인을 마킹해 놨다. 역시나 600인데 60이라 써놓은거 봐라


 D-day, 철거 시작


눈떠보니 다행히 날씨는 맑음! 오늘은 철거가 시작되고, 미장 사장님이 현장 오셔서 자재 발주 하는 날이다. 오늘은 휴가를 냈다. 현관에 공정표를 붙여놓고 벽에 붙은 에어컨은 비닐로 잘 감싸놨다.


칼같이 시간 맞춰 철거팀이 오셨고 일사천리로 철거가 진행됐다. 창문/ 문들을 우선 바로 빼고 잔잔바리 물건들 (개집, 담장옆 비계, 장판... 등등)을 떼내고 오함마로 벽을 깨낸다. 거실과 방 사이 벽은 얼마를 남겨야 하는지 사장님들마다 의견이 달랐는데 철거팀이 깨면서 보니 힘 받는 벽이 아니라 다 깨도 된다 하신다. 혹시 몰라 우리 집에 들르신 다른 사장님들께도 물었는데 동일한 의견, 좋습니다. 다 깹시다!


문짝과 창호만 빠져도 뭔가 정리된 느낌


오전 안에 빠질 건 다 빠지고 거실벽 까대기도 끝나버렸다. 남은 건 벽체 커팅. 이 작업은 계획보다 오래 걸려 다음날까지로 연장되었다. 첫날이 스무스하게 지나가는 것 같았는데, 점심 먹고 들어와 보니 누군가 우리 집 앞에서 싸운다. 뭐... 뭐지? 첫날부터 이웃이 공사 반대를 하나? 어제 이웃분께 미리 양해를 구하려 했지만 안 계셔서 못했는데... 알고 보니 지난 세입자분의 어머니가 가스통을  나 쓰라고 두고 가신걸 잊고 있다가(가스통도 10만 원쯤 한단다), 문득 생각나 우리 집에 오셨는데 가스통이 없어졌다고 철거팀이 훔쳐갔다고 작업자분들과 한바탕 하고 계시는거다. 돈 되는 거 알고 가져간 게 분명하다고, 도둑놈들이라고 욕을 욕을 하시는데... 나는 가스 없이 인덕션을 쓸 예정이었기 때문에 가스통을 챙길 생각도 안 했었고, 있는 줄도 몰랐다. 어머니는 나름 나를 생각해 가스통을 줄 생각이었고. 철거팀은 내가 잔잔바리 그냥 다 치워달라 했기 때문에 진즉에 치워버려서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어머니는 그놈들 거짓말하고 팔아먹은 거라고 하고 노발대발. 철거사장님도 누가 대뜸 욕을 욕을 하니 현장 더러워 일 못하겠다 하고. 아... 어머니 ㅜㅜ 아.. 사장님 ㅜㅜ 그냥 잘 모르는 제가 잘못했고 화를 푸십시오...


그렇게 사죄하며 공사 첫날이 지나갔다.





오늘의 팁

제주에서 창호는 미리미리 발주

육지에서 제작해 들어오기 때문에 창호는 여유 있게 주문해야 한다. 나는 미국식 창호인 A1 프런티어 3 중창+ 이건창호를 주문했고, 발주를 좀 촉박하게 해서 재고가 있는 제주 업체인 건우하우징에서 주문했지만 시간 여유가 있고 독일식 레하우 창호(더 성능이 좋다고 들었다)를 주문할 경우 투바이포 (2x4.co.kr) 라는 곳에서 주문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한겨울과 한여름을 지내본 결과, A1 3중창 괜찮습디다. 레하우까지 안가도 될듯합니다! (단 즈희집은 남쪽 서귀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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