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시고 살게요. 감사합니다.
한창 열심히 집 공사를 계획하고 조사했던 게 작년 이맘때이다.
덕분에 올해 겨울에는 제주의 우리 집에서 쉴 수 있다. 작년에는 밥도 제대로 못 먹어가며 아침부터 깜깜한 밤까지 공사했었는데! 감개가 무량하다. 화장실도 밖에 있던 집이었는데...
운명같이 만나게 된 나의 집.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나의 집.
공사를 하면서, 계속 집이 나를 굴리는(?) 느낌이었다. 나를 고치거라, 더 잘 꾸미거라, 나에게 돈을 더 쓰거라.. 이 집은 나에게 어떤 새로운 운명을 가져다줄까. 집은 이상하게 어떤 인격 같은 느낌이 든다. 공들여 잘 다듬고 잘 대해주면 복을 가져다주는 존재. 고유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존재...
집 고치기 전, 사실 자존감, 성취감이 바닥인 상태였다. 나름 핫한 분야에서 15년 일을 했는데, 다들 쭉쭉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이제껏 뭐 하나 제대로 해낸 것이 없었다. 열심히 하면 되지, 싶지만 열정도, 재미도, 소속감도, 팀워크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열심을 끌어내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나를 받아준 곳은 여기뿐이기에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간신히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매일 도대체 내가 무슨 쓸모가 있는 인간인가 싶었다.
그런데 집을 고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내가 쓸모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매일의 성과가 눈에 보이니 힘들어도 신이 났었다. 몇 년간 뭐 하나 제대로 끝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한국에 사는 것도 아닌 내가 어떻게든 제주에 예쁜 집을 만들어 놓다니, 얼마나 뿌듯한지!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성취감인지.
이제 태어나서 잘한 일이 무엇인가 꼽자면 아이를 낳은 것과 제주도 집을 고친 것,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고마운 집이다. 내게 와 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우리 집을 함께 고쳐주신 많은 작업자분들,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