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별거 없다. 다른 이들 인생처럼 내 인생도 고만고만하다.
“선배 인생 부러워”
가끔 후배들이 말한다. 나름 아이들도 크고 안정된 직장을 다니니 그들 눈엔 내 삶이 괜찮아 보이나보다. 속사정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내가 제일 행복해! 내가 제일 잘 나가!라고 떠들어대지만 실상은 한 달도 쉴 수 없는 게 내 인생이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넌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
친정언니가 측은지심에 내게 하는 소리다. 들여다보면 누구도 나 같은 인생 살고 싶지 않을 거다. 내 인생 참 고달팠고 지금도 고달프다.
엄마로서의 내 삶은 고만고만도 안된다. 엄마는 참 어렵다. 다시 태어나면 엄마 같은 거 안 하고 싶다. 아들들은 자분자분 키우는 재미도 없고 그저 짐승(?)처럼 먹어대니 음식 하기 바쁘다. 어려서부터 일인 일치킨을 시켜줘야 해 식비가 엄청 들었다. 아이들 급성장기땐 내가 부엌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아이들이라 고기요리를 좋아해 주방이 기름때로 반질반질 코팅질이 되었다. 건강하니 저렇게 잘 먹지 하고 나를 위로할 뿐이다.
아내로는 정말 지난한 삶을 살았다. 오랜 세월 이혼이란 단어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넣었다 되풀이했다. 이혼을 안 한 건지 못한 건지 잘 모르겠다. 용감한 내가 이혼 앞에서는 용감해지지 않았다. 단호한 내가 이혼 앞에서는 단호할 수 없었다. “너 없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남편에 가스라이팅 당했다. 술담배로 몸이 오징어처럼 쪼그라들고, 세월에 성질마저 죽은 남편에게 측은지심이 생겨버렸다. 분명 남자와 결혼했는데 지금 내 옆에는 남자가 아닌 동지만 남아있다.
나의 직장생활은 늘 가시밭길이었다. 농부의 자식인 난 천성이 게으름을 못 피워 어려서부터 항상 일을 몰고 다녔다. 일복이 많다. 따분함과 불평등을 못 참는 난 일을 만들거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 보니 일을 사서 했고, 힘든 일들이 자주 나한테 맡겨졌고, 상사나 둉료들과 원치 않는 분쟁도 겪어야 했다. 먹고살아야 해 50 넘어서까지 공부와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했다. 지금 50이 넘은 나이에 신입사원으로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다. 더디게 돌아가는 몸과 머리를 카페인으로 각성해 가며 겨우겨우 버티고 있다.
며느리로는 어떤가? 딸 셋 있는 종갓집 외며느리다. 명절에 일을 실컷 하고 와도 다음날이면 벌떡 벌떡 일어난다. 이 타고난 체력은 어느 누구의 연민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타고난 식욕은 어떻고! 꼼꼼하고 참하진 못해도 대수롭지 않게 일과 음식을 후딱 하니 시댁을 가든, 친정을 가든, 모임을 가든 일복이 많다. 남편을 남편이라 칭하기 힘든 결혼생활을 하고있다. 넘겨준건지 빌려준건지 뺏긴건지 양보한건지 정확하진 않지만, 남편이 full time 아들에 on-call 남편을 하고 있다. 얼마전 시어머니가 캐나다 아들옆에 사시겠다고 둥지를 트셨다. 앞으로 어떤 드라마를 찍게 될까 막막하다. 비련의 주인공이 아니길. 행복한 아니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 눈에 안 띄는, 무사한 조연이길 바래본다.
한 인간으로 삶은 어떤가? 평생을 동동거리며 살았다. 태생이 비루해 대학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다. 하는 연애는 족족이 꽝이었다. 남자 보는 눈도 없어 그 흔한 초콜릿이나 목걸이 한번 받아보질 못했다. 대학 1학년때 한 첫 연애는 6년의 파란만장한 시간과 함께 악몽만 남겼다. 의지하고 싶어도 의지할 사람이 없었던지라 평생을 투사처럼 살았다. 세월에 투박한 몸뚱이와 성질만 남았다. 우아함과 고상함은 눈 씻고 찾을 수 없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정체불명의 성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행복하기로 맘먹었다. 그래서 감사할 것들을 찾고 글을 쓰고 꿈을 꾼다. 행복과 불행이, 잘살고 못 사는 게 한 끗 차이다. 다른 삶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화려한 사진 속에 행복해 보이는 웃음 속에 그들도 다 지지고 볶고 웃고 운다. 다 고만고만하다.
남의 떡이 커 보일 뿐이다. 글을 쓰며 누군가의 눈에 내 삶이 행복해 보이기만 할까 봐 그래서 상실감이나 박탈감을 느끼게 할까 봐 걱정이 된다. 사람들이 인스타나 페이스북에 여행사진이나 명품사진 올리면 보는 사람들이 박탈감을 느낀다고 하듯 말이다. 난 SNS를 안 하니 그런 감정들을 딱히 느껴본 적이 없다. 사진 찍히는 것도 찍는 것도 즐기지 않는다. 살아온 인생이 남들의 시선에 무심해도 되는 인생을 살아왔다.
'행여 내 이야기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닐까?'
용기 내 시작한 내 이야기가 남들 눈에 공감 없는 자랑질로 혹은 헛소리로 들리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때가 있었다. 글로 다른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 나 또한 글을 쓰며 위로받고 행복해지고 싶었다. 대수롭지 않게 걸어온 내 길이 누군가에게 ‘그냥 하면 된다’는 용기를 주길 바랬다. 나 같은 아줌마도 했으니 누구나 맘먹고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30대, 40대, 50대, 60대이후에도 충분히 꿈을 꾸고 주체적이고 멋진 삶을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나누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인생들은 고만고만하다. 물론 내 인생도 비등비등하다. 행복하고 싶은 내가 쉽지 않은 오늘하루를 잘 살아내려 발버둥 치고 있을 뿐이다. 그저 삶의 고단함이 나의 오늘을 집어삼키지 못하게 감사한 것을 애써 찾을 뿐이다. 하루하루 글을 쓰고 혼자 몸부림을 칠 뿐이다.
인생과 늘 밀당을 하며 살았다. 단 한 번도 행복이 계속된 적이 없고, 그렇다고 불행이 겹쳐 계속 온 적도 없다. 늘 행복과 불행이 들고나는 바람처럼 그렇게 내 인생에 찾아들었다. 행복하다 싶음 불행이 불쑥 고개 밀고, 불행하다 싶음 행복이 손잡아 줬다. 그래서 난 웬만한 행복에도 불행에도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고 믿었는데, 아니었다. 너무도 미약한 난 아직도 조그만 서풍에도 아프게 흔들린다. 하루하루 나를 보듬고 챙기지 않으면 금세라도 나락으로 추락해 버릴 것 같다. 끝없는 밀당이다. 그럼에도 탄생과 소멸의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내가 대견하다. 살아갈 날보다 돌아볼 날이 점점 늘어나는 오늘, 하루를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나를 일으켜 세울 뿐이다.
얼마 전 함박스테이크를 치대다 갑자기 세월에 이리저리 치대어 지금의 내가 된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치대기의 반복을 통해, 그 하잘것없어 보이는 시간을 버티며, 삶의 근력을 기른 내 모습이 겹쳐졌다.
‘Good things take time’.
안절부절못할 때,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 때, 끝이 보이지 않을 때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이다. 가끔은 미련한 게 지름길의 정석이다. 의미 없어 보이는 치대기의 반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