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1인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1인 가구란 말과 함께 혼밥도 익숙한 말이 되었고 어느 식당에 가든 혼밥하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다.
20년 전 애들이 어렸을 때 혼밥은커녕 아이 둘을 데리고 남편 없이 식당에 가면 아빠 없이 아이를 키우는 여자로 보일까 봐 노심초사했던 기억도 있으니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휴직을 하면서 이래저래 혼밥 할 기회가 많았다. 처음 시도할 때만 해도 혼밥 하러 들어갈 때면 왠지 어색했고, 앉아서 밥 먹을 때도 어색해서 순식간에 밥을 먹고 나오기도 했는데 이제는 많이 여유로워졌다.
인터넷에 떠도는 혼밥 레벨테스트 1~9 중에 7단계 패밀리 레스토랑서 먹기까지는 달성했다. 최근에 ‘빕스’에 가서 우아하게 혼밥을 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전자책을 보면서(밥 먹으면서 종이책을 보는 것은 어색할 듯) 여유롭게 먹는데 참 좋았다. 점심시간이었는데 빕스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와인까지 곁들어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10인이 함께 먹는 오마카세에서 연인들 사이에 끼어 혼밥을 즐긴 것도 약간 난이도가 있었지만 그럭저럭 할만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8~9단계이다.
먼저 8단계 고깃집, 횟집에서 먹기. 고깃집이나 횟집에서 2인분만 시키면 눈치 보지 않고 혼밥이 가능하다는데 일단 2인분을 혼자 먹을 자신이 없고, 두 가지 음식을 혼자서 먹어야 할 정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마지막 9단계 술집에서 혼자 술 먹기. 이건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일단 술집이 어두운 분위기이고 다들 약간은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왠지 나 자신이 청승맞게 느껴질 것 같다. 뭔가 사연 있는 여자처럼.
나중에 9단계에 도전한다면 반듯하게 차렵 입고 가야겠다. 혹시 아는가 멋진 남자가 합석을 요구할지도. 하지만 무리하고 싶진 않다. 요즘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나 일식집에서도 언제든 맥주 한 잔은 반주로 즐길 수 있으니까. 그 정도는 충분히 행복한 주량을 가졌으니 술집은 왁자지껄 떠들 수 있는 친구들하고 가는 걸로.
혼밥에는 나름 의미가 있다. 본의든 타의든 혼밥을 자주 하게 된 요즘, 나 스스로가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남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지만 어쩔 수 없이 의식하게 되는 자의식이 조금은 약해졌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주위의 시선에 신경을 덜 쓰면서 자신의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물론 웨이팅이 많은 식당은 붐비는 시간을 피해 한가한 시간에 가는 혼밥러로서의 배려는 기본적으로 하면서.
혼밥에 잘 어울리는 식사는 아무래도 일식이다. 개인적으로 반찬까지 한 상차림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혼자가도 전혀 미안하지 않다.
제일 혼밥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한식이다. 일단 밑반찬도 많고 보통 2인용으로 제공되는 반찬들이 차려지기 때문에 조금은 미안하다. 세상을 계속 혼밥러를 양산해 갈 텐데 한식도 혼밥에 가능한 스타일로 조금씩 변해가야 할 것 같다. 2인 이상만 가능한 메뉴가 많은 1인 밥상도 개발하고, 1인 좌석도 만든다면 영업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혼밥이 익숙해지면서 나에게 온 변화는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쁜 남편에게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고 보채지도 않게 되고 맛점 하자고 친구들을 불러낼 필요도 없으니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고, 그 시간의 즐거움도 깨닫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생각한다. 오늘은 점심때 어디를 가고 카페는 어디를 가야지. 그 생각만 해도 즐거워진다. 혼자만의 시간을 힘들어했던 내가 1년 남짓한 기간에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도 들고 기특해지기까지 하다. 아직 혼자 가는 여행(1박 이상)은 못해봤지만 이것도 곧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혼밥 훈련을 통해서 혼행까지 도전해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