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이야기 잘하는 사람

by 작은영웅 Mar 08. 2025

내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가 알아보려면 살아오는 동안 들었던 칭찬을 떠올려 봐야 한다. 살아오는 동안 무수히(?) 들었던 칭찬 중에 압도적 1위를 차지하는 것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한다'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재미있어하고 듣고 싶어 다. 명절 때에 시댁에 가면 막내도 아닌 셋째 며느리인 나에게 형님들이 ’ 동서는 일하지 말고 거기 앉아서 재미있는 이야기나 해.‘라고 말할 정도이다.


이렇게 재잘재잘 이야기를 잘하게 된 시발점은 아주 어릴 때로 거슬로 올라간다. 시골이었지만 어느 정도 부유했던 가정환경 때문에 우리 집에는 책이 많았고, 학교 도서관에도 문고판 책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당시에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아이였다. 집안 청소를 하다가도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면 청소하다 말고 쓰레기더미 옆에 주저앉아 책을 읽곤 했다. 초등시절에는 어린 나이에 안경을 쓰고 늘 책을 읽고 있어서 별명이 안경잡이나 책벌레였다.


당시에 주로 읽은 책이 동화책이나 소설책이었는데 이런 책들은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주었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의 세계로. 책을 읽고 나면 나만 알기 아까운 그 이야기들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곤 했다. 읽은 내용에 약간에 상상력을 가미해서 이야기를 해주면 친구들은 재미있어했다. 워낙 몸치라서 고무줄놀이든 사방치기 놀이든 공기놀이든 제 역할을 못하는 나를 친구들이 깍두기라도 시켜서 계속 놀이 속에 끼워준 것은 이야기를 잘하는 재미있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학교 가기 전에는 동화책을 읽고 거기에 살을 붙여서 실감 나게 얘기를 해줬는데 재미있게 들은 친구들은 늘 하나 더 해달라고 졸랐다. 학교에 가면서 도서관에서 읽은 문고판 소설들을 친구들에게 전달하다 보니 요약 정리하는 능력이 생겨서 공부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중학교에 가서는 주로 귀신 이야기를 잘했는데 수학여행 가서 불 끄고 이야기하다가 아이들 몇 명을 울려서 선생님께 혼난 일도 있다. 고등학교 야자시간에는 아이들이 떠들 때 앞에 나가 영화 이야기나 소설 이야기를 들려주면 우리 반 전체가 내 얘기를 듣느라 조용해지곤 했다.

친구들의 이런 호응 덕에 나의 이야기 실력은 점점 자라났다. 지금 만나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그때 들은 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하는 걸 보면 당시에 내 이야기 실력이 대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능력을 지닌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핵인싸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식사를 하든 커피를 마시든 한담을 나누는 자리에 내가 있으면 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한다. 함께 하면 즐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모임이 생겼다. 

그런데 요즘은 약간 의욕을 잃었다. 내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고 재미있게 웃어주는 친구들보다 약간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친구들이 주변에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폭넓은 인간관계를 위해서 이야기의 힘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요즘에는 퇴근한 남편을 앞에 두고 실력을 연마하는 중이다. 그날 읽은 책(그전에 읽은 건 기억이 안 난다) 내용을 이야기한다. 소설이든 인문학책이든 가리지 않고 전달한다. 요약 능력과 말하기 능력을 동시에 기를 수 있다. 물론 듣는 사람이 성의가 없고 졸기도 하지만, 이런 청중을 경청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니까. 공부도 되고 남편과 대화하는 방법도 배우고 일석이조가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어디서든 한 마디를 던지면 의도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감동시키던 나의 재치 있는 말솜씨를 다시 되살려 볼 생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키 작은 여자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