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결혼 생활 동안 남편은 딱 두 번 외박을 했다. 그것도 연락도 없이. 첫 번째는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고 두 번째는 휴대폰이 있던 시절이다. 밤새 내내 지옥을 맛보게 했던 그 얘기를 해볼까 한다.
첫 번째 외박은 결혼하고 1년도 채 안되었을 때이다. 무일푼으로 결혼한 우리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도 전무했기 때문에 맞벌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가난했다. 덜컥 시영아파트를 분양받은 남편은 중도금을 벌기 위해서 다니는 회사 외에 아침에 컴퓨터 학원 강사, 밤에는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제 막 나이 30이 된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임신까지 한 아내를 보면서 책임이 막중했으리라. 새벽부터 밤까지 애쓰며 고생했던 남편을 지금 떠올려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친구도 가족도 멀리 있는 객지에서 종일 남편을 기다리며 외로움에 시달리던 젊은 날의 나도 안쓰럽게 여겨지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날 밤도 나는 12시 가까이 오는 남편을 기다렸다. 회식이 있어서 늦을 때도 있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1시가 넘고 2시가 넘어도 오지 않는 것이다. 그 시간이면 회사도 약국도 문을 닫았을 테니 연락할 곳은 없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니 무슨 일이 있으면 남편이 집으로 연락을 해야 하는데 집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막막함과 걱정 속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긴긴 밤동안 부른 배를 안고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전화를 못할 정도의 상황이면 길에서 쓰러진 게 아닐까.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니 교통사고가 나서 쓰러져 있는 게 아닐까, 경찰이 발견했다면 연락이 올 텐데. 이쯤 생각을 진행하다 보니 나는 이제 유복자를 낳아야 하는 가엾은 여자가 되어 있었다.
밤새 울다가 생각하다가 하면서 기진맥진해진 나는 아침에 회사에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긴 기다림 끝에 회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를 받은 사람이 남편이었다.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것이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남편이 전화를 받으니 반가움은 잠시 분노가 치솟았다. 이게 뭔 일이냐고 울면서 묻는 나, ‘내가 왜 여기 있지’하는 남편. 그래도 남편의 살아있음에 감동한 나는 일단 각자 일을 하고 저녁에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사연은 이러했다. 퇴근을 하고 약국 알바를 가기 전에 잠시 시간이 난 남편은 어디서 쉴까 고민을 하다가 회사에서 실험용으로 가져다 놓은 돌침대를 발견했다. 아무도 없는 회사 실험실에서 따뜻한 돌침대에 누워서 잠시 쉬려고 했는데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아침까지 자버린 것이다. 정말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지만 평소에도 잠이 많은 사람인지라 믿어 주기로 했다. 다른 이유로 외박을 하기에는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죽었을 거라 생각한 남편이 돌아와 준 것에 감사하는 것으로 그 사건은 종료되었다.
두 번째 외박은 휴대폰이 있던 시절에 일어났다. 휴대폰이 있는데도 연락 두절인 것은 또 다른 의미로 두려움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그날 밤 남편은 회사 상사랑 술을 마신다고 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하는 말이 상사가 워낙 술을 좋아해서 자리가 길어질 것이다. 근데 그분은 집이 멀어서 아주 늦게까지 마시지는 않을 것이다는 것이었다. 밤 11시쯤 3차를 하고 있다고 그분을 보내드리고 집에 갈 테니 먼저 자라고 연락이 왔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 난 일단 잠을 잤다. 자다가 문득 깨어보니 침대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새벽 2시였다. 부랴부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수십 번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전원이 꺼져 있다고 나오는 것이다.
이때부터 고통의 밤은 시작되었다. 나의 특기인 상상력을 동원하여 생각해 보니, 평소 안 마시던 술을 마셔서 길가에 쓰러진 것이 분명했다. 길에서 얼어 죽었을 수도 있고 뻑치기를 당했을 수도 있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나, 그럼 집에는 왔겠지. 평소에 추리물을 좋아하는 실력을 발휘하여 온갖 추리를 해봐도 이해 가능한 상황은 없었다. 분명 남편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는 결론에 이르자 이때부터는 두 아이를 남편 없이 키우는 가엾은 나의 모습으로 상상이 진행되었다.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며 울다가 생각하다가 분노하다가 하면서, 수시로 전화를 걸어보면서 긴 밤을 보냈다.
그러다 새벽 6시쯤이었을까 갑자기 누군가가 전화를 받는 것이다. 남편이었다. 살아 있구나 하는 기쁨은 잠시 분노와 의심의 말이 내 입에서 쏟아졌다. 어디냐고 다그치는 나에게 찜질방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의 무한한 상상력의 답변들 중에는 없던 곳이었다. 술이 많이 취한 상사는 집에 가기에 너무 늦었다고 찜질방에서 자고 바로 출근하겠다고 했단다. 일단 자리를 잡아주고 나오려고 같이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새벽이었고 자신의 토사물 속에서 잠든 자신을 발견하고 씻고 나온 것이라고 했다. 들어보니 이해는 되지만 납득은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난 잃어버린 소리치고 분노했지만 일단 남편에게 별일이 없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좋아하는 동태탕을 끓여 주는 것으로 마감했다.
남편과 나는 생각하는 방식도 생각의 방향도 아주 달라서 내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 외박의 이유나 방식도 예상외라서 내 사고의 범위를 벗어난다. 가능한 모든 상황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가끔 두렵다. 무슨 기상천외한 일을 저질러서 나를 놀라게 할지. 그래서 아침마다 그날의 스케줄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갑자기 연락 두절 되면 그걸 기반 삼아 여러 가지 추측을 해야 하니까. 아무튼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