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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Feb 05. 2024

나의 첫 비행, 두려움을 넘어서

 비행기는 처음이고, 목적지는 유럽입니다.

 앉아서 공부밖에 할 일이 없던 고등학교 시절,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능 이후의 삶을 꿈꾸면서 어려운 시간을 견뎠을 것이다. 

'대학 가면 살 빼고 예뻐져서 연애해야지.'

'술 먹고 어른들처럼 놀아야지.'

이런 꿈들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꿈은 명확했다.


 '대학생이 되면 유럽 배낭여행을 가야지!'

왜 이런 꿈을 가졌는지 그 시작은 생각나지 않는다. 꿈의 시작은 생각나지 않아도 나름 명확하고 구체적인 꿈이었다. 

'대학 생활하면서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해야지. 세뱃돈 등을 모아놓은 통장에 열심히 저금해야지. 돈이 적당히 모이면 떠나자. 내 몸보다 큰 배낭을 메고, 기차를 타고 유럽을 횡단해야지. 에펠탑 앞에서 사진도 찍고 교과서에만 봤던 모나리자도 보겠어.'


 로망과 용기는 다르다 했던가.

이렇게 고등학교 시절부터 꿨던 꿈이지만, 정작 대학생이 되어서는 꿈을 실현하는 것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4학년 전에 배낭여행을 떠나려면 서둘러야 하는데, 나는 더나지 못하는 합리적인 이유만 찾고 있었다.

'아직 돈을 많이 못 모아서.. 겨울에는 해가 짧아서 다들 여름에 가라고 하니까.. 다음 여름 방학에는 꼭 가야지..’ 하면서 여행을 미루고 있었다.

가고 싶은 건지, 가기 싫은 건지 스스로도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우유부단했다.


 2학년 겨울 방학 때, 여행을 가지 못하는 핑계를 엄마에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직 모은 돈이 부족해. 1년 정도 더 모으면 4학년 되기 전에는 갈 수 있을 거야. 다들 여름에 가야 한데. 내가 돈이 모이면 간다.”

그랬더니 엄마가 말했다.

“네가 매번 가고 싶다고 노래 부르는데, 더 미루지 말고 다음 여름방학에 가봐. 모자란 돈은 엄마가 좀 보태줄게”

‘어라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먼저 든 거 보니, 결정 내리기 무서웠던 게 맞나 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결정 내리는 게 무섭다는 것도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한테도, 그리고 나한테도 말이다. 내 로망이라고 여러 번 말했으면서 실천하지도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다. 그 당시 나는 스스로 뭔가를 해내는 성인이라는 이미지를 동경했으니까.


  엄마가 등을 밀어줬으니, 이제 결정해야 했다. 그래 가보자. 뭐 아직 반년이나 남았는데,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겠지. 나는 막연히 생각했던 꿈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당시 최대의 유럽여행 카페인 ‘유랑’에 가입하고 여행 관련 책자들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 출발! 하기에는 또 하나의 난관 봉착했다. 여행 짝꿍이 없는 것이다. 낯을 극도로 가리는 극 내성적인 성격인 내가(지금이면 MBTI 극 I), 모르는 타인과 동행을 구해 간다는 거 자체는 성립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도 물어봤지만, 한두 푼도 아닌 배낭여행에 맞춰줄 친구도 구해지지 않았다. 결국 선택한 것은 혼자 여행하기였다. 카페에 보면 다들 혼자서도 잘 간다는데,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선 비행기조차 타보지 않았던, 혼자서는 국내 여행 조차 해보지 않았던 22살 여자애의 혼자 해외여행을 허락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부모님은 당연히 반대하셨고, 나는 그런 부모님에게 정말 애처럼 떼를 썼다. 하지만 동시에, 부모님이 반대해서 내가 못 가는 건가 하는 약간의 나의 겁을 무마할 핑계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나의 떼와 부모님의 결정으로 결국 배낭여행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남동생이 내 여행 메이트로 낙점되었다. 동생의 여행 경비는 부모님이 지원해 주셨다. 이제 진짜 핑계가 없어졌다. 

 핑계가 없어지니 잘 해내고 싶었다. 좋지 않은 집안 사정에도 남매의 여행경비를 지원해 주신 부모님을 봐서라도, 뭔가 잘 해내고 싶었다. 여행이란 게 잘 해내는 게 따로 있지 않음에도, 돈을 최대한 아끼고 많은 나라를 가보고, 많은 명소들에 가보고 싶었다. ‘이것이 바로 대학생의 유럽 배낭여행이다.’ 이런 걸 보여주고 싶었다. 드라마나 책에서 나오는 반짝이는 청춘의 모습을 실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3학년 1학기를 배낭여행에 모든 관심을 쏟았다. 심지어 교양 수업도 서양미술의 이해를 들을 만큼 여행만 생각하면서 한 학기를 보냈다. 성적은 떨어졌지만, 살면서 하나의 주제에 가장 몰입한 순간이었다. 내 생애 가장 큰돈을 들여 항공권을 결제했고, 리뷰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사에서 주최하는 배낭여행 설명회에 가보고, 각 지역의 여행책자와 지도책을 열심히 예습하고, 카페(유랑)의 글도 매일 살펴봤다. 그렇게 준비를 하면 할수록 두려움만 커져갔다.

 잘해야 한다는 그 마음이 오히려 두려움을 더 키워간 것이다. 가서 사고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길을 잃으면? 숙소 예약이 누락되었으면? 갑자기 비행기가 뜨지 못하면?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


 여행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설치기도 했다.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더 앞섰다. 이러한 증상은 공항 보안 수속 앞에서 가장 절정을 이뤘다. 부모님과도 인사하고, 인천 공항도 잘 찾아갔지만, 보안수속에서 통과되지 못할까 봐 옆에 있던 동생에게 괜히 짜증을 내면서 시간을 버텼다. 몇 번이나 확인했으면서, 아직 군대를 가지 않은 남동생이 비행을 못 타게 될 거라는 근거 없는 두려움에 사로 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걱정했던 사고는 없었고, 공항 보안수속대에서 출국이 되지 못한 채 갑자기 끌려가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비행기가 이륙했다. 이륙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유럽 배낭여행은 현실이 아니라 아득한 꿈이었다. 여행을 막연히 생각할 때도, 그리고 실질적으로 여행 준비를 하고 그 나라의 지도까지 열심히 공부할 때도, 그냥 꿈꾸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그렇기에 마치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는 걸 싫어하는 어린아이처럼, 핑계를 대고 이유 없이 두려워하면서 꿈속에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이륙하는 순간, 내가 지금 현실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히 몇 번이나 확인했음에도 망상에 가깝게 생각을 사로잡았던 두려움이 없어지고, 정말 현실적인 고민과 두근거림이 시작되었다.

 이제 유럽 배낭여행은 꿈도 아니고, 나는 이제 몇 시간 뒤면 사진 속에서만 봤던 런던에 도착하겠구나. 그런 런던에서, 영어도 짧은 나는 영어로 길을 물어보고, 숙소에 도착하고, 음식점을 찾아다녀야 하는 현실에 부딪히겠구나.


 나의 첫 비행은 남들이 보면 소소해 보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큰 도전이었다. 지금의 나는 아직도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돌아서 생각해 보면 그 두려움이 전혀 근거 없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마치 첫 여행을 시작조차 못 할까 봐, 내가 실행한 모든 것들이 취소되는 불행이 다가올까 봐 걱정했던 그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때는 몰랐다. 몇 년간 돈을 모으고 반년은 계획해야 여행을 떠날 수 있던 내가, 이제는 휴가철에 어디로 떠날지 고민하는 직장인이 될 줄은 말이다. 시작은 반이라고 했던가, 이 당시의 여행이 내 현재의 여행의 반이 되었다. 이때 여행은 아득한 추억이 되었지만, 이 여행에서 느낀 긍정적인 감정이 내 여행의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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