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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Mar 18. 2024

그때 그때 그때

살다 살다 그런 거지꼴은 처음이다

 친구와의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N번째 다이어트 결심을 했다. 바다 수영이 계획되어 있는 여름 여행이어서 몸상태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겨우내 찌웠던 살과 이별하고, 예쁜 옷을 입고 멋진 사진을 찍어야지. 아직 여행이 한참 남았는데도, 얼른 해외 가서 예쁜 사진을 남기겠다는 욕구가 가득하다.


 유럽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나의 첫 해외여행이 계속 생각이 난다. 그때, 나의 첫 해외여행 때는 사진에 대한 욕구가 적었다. 아니 없었다. 오히려 지금 보다 더 외모에 관심이 많았던 시기이지만, 여행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로망이 가득해서 여행지에서의 내 모습을 그리고 내 사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직 여행 경험이 적어서 그랬기도 했고, 지금처럼 프사에 SNS에 사진을 자랑하는 문화가 없어서 그렇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거기까지 신경 쓰기가 어려웠다는 게 가장 클 것이다.


 해외여행은 처음이어서 준비할 것이 많았다. 유럽여행이라는 특성상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공부도 해야 했고, 스마트폰이 없었기에 길을 미리 익혀야 했다. 지금처럼 여행에 관한 예약에 능숙하지 못해서 숙소와 이것저것 투어를 미리 예약하느라 바빴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연륜이 쌓였다고 할까나. 혹은 더 막무가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그 막무가내를 실천해 줄 스마트폰도 있으니까 더 겁이 없다. 그때에는 이런 경험도 없으니, 더 준비를 하는데 공을 들였다. 그래서인지 예쁜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내 머릿속에 없었다. 사진을 많이 찍기는 했다. 다만 나를 예쁘게 찍는 것보다는 내가 여기를 다녀왔다는 인증 사진을 남기는데 집중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가져간 옷도 단출했다. 사실 짐을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해외여행이 처음이었고, 심지어 우리 가족 내에서도 첫 여행이었다.(그전에 우리 가족은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다.) 한인민박에서는 옷을 세탁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말만 믿고 티셔츠와 바지 몇 개만 적당히 챙겨갔다. 그래서 당시 사진을 보면 옷이 맨날 똑같아 보인다. 심지어 스타일도 다 비슷비슷하다. 청바지에 티셔츠만 돌려 입었다. 너무 더우면 반바지 입었고, 아닐 때는 청바지를 입었다. 지금 같으면 스커트도 하나 챙기고 예쁜 사진용 원피스나 좀 과감한 스타일의 옷도 챙겼을 테지만, 그때는 그냥 여름에 집에서 입던 옷을 챙겨갔을 뿐이다. 얼마나 단출하게 갔던지, 16박 여행을 하는데 내 짐이 기내용 캐리어에 다 들어갔다. 화장품도 기초제품과 선크림 정도만 챙겼다. 지금 같으면 28인치 캐리어에 눌러 담아도 모자라서 배낭을 하나 더 챙겨갈 텐데 말이다.


 그때에 비하면 연륜과 여유는 늘어났지만 현저하게 줄어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체력이다. 그때는 체력이 지금 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이 좋은 체력으로 시간을 사고, 돈을 아꼈다. 지금이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는(아니 못하는) 야간이동도 16박 중 3일이나 시행했다. 야간기차에 심지어 야간버스까지 감행했다. 오로지 돈을 아끼고, 더 많은 곳을 다니고 싶다는 욕심에서였다. 야간기차는 그나마 침대석이라 선잠이라도 잘 수 있지, 버스를 타고 밤에 국경을 넘는 야간버스에서는 거의 잠들기 힘들었다. 야간버스를 타고 새벽에 오스트리아에서 체코로 이동하여, 체코 도착하자마자 아침 일찍 숙소에 짐을 맡기고 숙소사장님 배려로 간단히 씻고 바로 여행을 시작했다. 지금 같으면 절대 실행할 수 없는 스케줄이다. 지금 30대 중반의 여행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밥을 제때 먹고 편안한 곳에서 잠드는 것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당일 여행뿐만 아니라 정말 여행 내내 골골거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의 넘치는 체력에도 16박 여행은 힘들기는 했다. 그래서 여행 후반에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비록 세탁을 했다고는 하지만, 집이 아닌 숙소에서 해주는 세탁 서비스를 한 옷들을 입고, 피곤에 절어 있는 상태로 마지막 여행지인 로마를 돌아다녔다.


 새로운 유럽여행을 준비하면서 내 첫 여행인, 대학시절 유럽여행이 떠오른다. 어렵게 모은 여행자금을 아끼기 위해서, 그리고 더 많은 곳을 다니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던 그 시절. 그때 사진을 보고 있으면 지금보다 더 꼬질꼬질하고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다니긴 했지만, 그 시절에만 있는 생기가 얼굴에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말씀하신다. 인천공항으로 우리를 데리러 왔을 때, 입국장에서 나오는 우리 남매의 모습을 봤을 때, 그렇게 살다 살다 거지꼴은 처음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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