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아 Feb 19. 2024

라떼의 여행, 스마트폰 없이 여행하는 법

지도책을 아시나요

 이번 여름휴가는 친구와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크로아티아. 얼마만의 유럽 여행인가. 아직 겨울이 지나지도 않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여름에 가있었다. 친구랑 여행 가기로 결정한 그 순간부터 우리는 바빠졌다.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큰 일정을 짜고 숙박 시설을 알아봤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에어비앤비 어플을 다시 활성화시키고, 유튜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맛집과 관광지를 구글 지도에 저장했다. 여름 여행을 2월부터 설레발치면서 준비하는 건 14년 전 나와 똑같지만,  2010년 여름 유럽여행과 2024년 여름 유럽여행은 많이 다를 것이다.


  14년 전 과거, 지금과 그때의 여행의 가장 큰 차이점은 스마트폰 없이 여행이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2010년은 아직 스마트폰이 지금처럼 보급되기 전이었다. 스티브잡스가 아이폰을 출시한 것은 그 이전이지만, 한국에서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보급화되지 않았다.

  

 이때에 관광지를 돌아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종이 지도였다. 요새 아이들에게 종이 지도를 보며 여행했다는 말을 한다면 아마 나를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진 조선시대쯤의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종이 지도를 가지고 식당을 찾고 관광지를 돌아다녔지 라는 의문이 남지만, 그때는 그랬다. 배낭여행을 가면 필수로 가져가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도책이었다. 이 지도책에는 각종 여행지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었다. 보통 많이 가는 서유럽의 주요 도시들(런던, 파리, 로마 등)의 지도가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런던 도시 전체가 있는 큰 지도가 하나 있고 런던의 주요 관광지역(예를 들면 소호지역)의 골목길 등이 자세하게 수록된 지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 지도를 보면서 주요 관광지를 찾아가고,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지도를 보면서 다니는 것의 가장 큰 단점이라 하면 바로 내 위치를 알 수 없고, 내가 가는 이 길이 제대로 가는 길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은 구글지도가 내 위치를 표시해 주고,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그 방향을 알려주지만 종이 지도는 그런 것이 불가능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길을 참 많이 잃었다. 차라리 에펠탑처럼 유명하고 모든 사람이 그곳을 향해 가는 관광지는 찾기 쉽다. 하지만 작은 공원이라든가 아니면 여러 관광지가 뒤 섞여 있는 지역의 경우 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는 길치였다. 길을 일단 잃으면 처음 기준이 되었던 주요 스폿으로 돌아가 다시 길을 찾아 헤맸다. 매일 길을 헤매고 길을 찾는 일을 반복했다. 어느 날은 길을 잃고 아무리 찾아도 목적지를 찾기 어려울 때는 우리는 그냥 쿨하게 그곳을 포기하기도 했다. 숫기가 없고 영어가 짧아서 금발의 외국인에게 길을 물어볼 용기를 못 낸 것이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기대하지 않은 낯선 풍경을 보여주기도, 기대했던 풍경을 가져가 버리기도 하였다. 길 위에서 우리는 길을 잃으면 서로 탓을 하며 싸웠지만, 동시에 길을 잘 찾으면 내가 잘한 것이라며 자신을 치켜세웠다. 살면서 그렇게 많이 길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닌 것도, 헤맨 것도 처음이었다.


 스마트폰이 없다는 것은 또한 실시간으로 인터넷으로 검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있으면 관광지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찾아서 계획을 변경하고 식당을 찾아갈 수 있다. 기존의 여행 정보가 변경되어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없으면 그런 것들은 모두 불가능하다. 우리는 기존에 찾아놓은 정보, 들고 다니던 여행 책자에 의존했다. 갑자기 여행 정보가 바뀌거나, 관광지가 문이 닫았다면 대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숙소에 들어가면 공용 PC에서 최대한 다음날 일정의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그래, 그 당시 여행은 삽질이 좀 많았다. 길을 잃고 한참 헤매고 간 관광지가 문을 닫을 수도 있었고, 내가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갑자기 시간이 남아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다.


 여행의 순간은 그 종이에 메모하고 마음속에 깊게 간직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실시간으로 SNS에 공유할 수 없었다. 카톡으로 친구와 가족들에게 나의 여행 순간을 나눌 수 없었다. 그 대신에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내가 느끼는 것은 여행지에서 일기로 남겼다. 비싼 국제전화가 무서워 엄마랑 하루 한번 전화를 하고, 오늘 본 것들을 공유했다. 물론 숙소에 공용 PC가 있어서 블로그 등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 즉시 내 감정과 상태를 공유하는 것에는 시간차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느낀 이 순간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나만의 감정과 순간이었다.


  스마트폰 없이 하는 여행이 불편했지만, 오히려 그때의 낭만이 있었다. 지금처럼 구글지도 평점을 비교하면서 식당을 고르지 않았다. 물론 그 당시에도 당연히 유명한 식당을 미리 찾아두긴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식사는 그냥 보이는 가게로 들어가곤 했다. 식당 앞 메뉴판으로 대충 가격을 보고, 가격대가 괜찮으면 들어가서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골랐다. 그렇게 선택한 식당과 메뉴는 별로인 경우도 많았지만, 의외의 성공을 거둔 적도 많았다. 한 번은 가격대를 제대로 보지 않고 들어왔다가, 생각보다 메뉴 가격이 비싸 음식 하나만 주문해서 나눠먹기도 했다. 독일에 갔을 때는 영어메뉴판이 없어서 일단 Beer만 시켜놓고 한참 독일어 메뉴판을 연구하다가 적당한 가격대로 메뉴를 아무거나 시켜보기도 했다. 실시간으로 검색이 안 됐기에, 지금은 하지 않을 모험을 하곤 했다. 그때 갔던 식당이 어디였는지, 먹었던 음식이 어떤 것이었는지 전혀 기억에 남지 않지만, 그 순간 재미있었다는 감정은 기억에 남는다.

 SNS를 하지 못해서 사진에 지금보다 미련이 적었다. 지금처럼 좀 있어 보이는 곳에서 있어 보이게 찍고 싶다는 욕망이 적었다. 그래서 오히려 온전히 여행지에서 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지금 즐겁고 지금 좋은 순간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했다. 사진은 명소에서 한두 컷 정도면 충분했다. 사진보다는 노을 지는 블타바강가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면서 로맨틱한 분위기를 즐기고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는 것이 중요했다.(동생이랑 로맨틱한 분위기를 즐겨서 문제였지만..)  확실히 불편한 여행이지만, 여행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지금 나는 여행준비를 하면서 스마트폰을 옆에 끼고 있다. 준비부터 아마 가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스마트폰과 보조배터리만 있으면 여행지 어디에 떨어져도 내가 못 갈 곳은 없을 것이다. 다시 그때처럼 실컷 길을 잃고 헤매는 여행은 아마 이제는 못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이제 나에게도 추억의 여행이 돼버렸다.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 준다면, 아마 구석기시대 사람처럼 나를 생각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남동생과의 여행, 안 싸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