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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느끼는 언어의 장벽

영어 공부하자

by 한아 Mar 07. 2025

 처음 유럽으로 해외여행을 갔을 때, 입국심사대에서 묻는 말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해 입국 거부당하고 쫓겨나는 걱정을 했었다. 다행히 입국심사대에서 하는 말을 대부분 알아들었고, 실수는 했지만 무사히 물음에 대답하고 영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영어는 여행의 장벽이 되었지만,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생각 보다라고 표현한 것은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대부분의 식당이나 가게에서는 간단한 어휘와 바디랭귀지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디랭귀지의 힘을 알게 되었다. 영어 못해도 바디랭귀지만 있다면 문제없다 여겼다.  


 여행을 하면서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 요새는 워낙 어플이 잘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파파고, 구굴 등의 번역 어플로도 내가 원하는 바를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다. 사실 긴 대화가 필요한 경우가 거의 없어서 그러기도 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최근에 했던 여행지는 대부분 동남아, 일본 정도였다. 한국인이 워낙 많이 가는 곳이기에, 대부분의 안내에 한국어가 있었으며 심지어 직원들이 간단한 한국어도 구사할 수 있었다. 내가 영어를 못하는 만큼 그들도 잘하는 것이 아니어서 영어를 내뱉는데 부담감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언어가 여행의 중요 요소임을 잊고 지냈다.


 크로아티아 여행은 오랜만에 영어권 국가로의 여행이었다. 물론 크로아티아도 별도의 언어가 있지만, 유럽은 대부분 영어를 제2 외국어로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크로아티아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내가 만난 관광객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말이다. 거기서 나는 렉이 걸려버린 컴퓨터처럼 어버버 거리게 되었다. 

 두브로브니크 공항에 내려 픽업을 나온 숙소 사장님을 만난 순간부터 나는 버벅거렸다. 사장님은 당연히 기본적인 토크를 시작하셨다. 어디서 왔느냐, 어디를 여행할 계획이냐 등 말이다. 적당히 알아들은 거 같은데(적당히 말이다.) 말이 도저히 안 나왔다. “How are you”에 당연히 “I’m fine”이 나오는 것처럼 내 기분과 전혀 다른 그저 배운 말들만 할 수 있었다. 옆에서 친구는 궁금한 사항을 어떻게든 물어봤지만 나는 그저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애매한 언어 실력이었다. 아예 말을 못 알아듣냐 하면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정확하게 알아듣냐 하면 또 그 정도도 아니었다. 상대방이 천천히 나를 보며 말해주기만 기대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원래 궁금한 걸 물어보거나 하는 성격은 아니다. 이건 언어를 떠나 남에게 말을 걸거나 질문하는 것 자체를 잘 못하는 성격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예 질문을 못하는 바보는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질문을 하는 것은 많은 생각 끝에 할 수 있지만 이어지는 답변을 알아듣는 것도 급급했다. 또 다른 질문은 어려웠다. 간단한 의사소통 까지는 어떻게든 되는데 썩 석연치는 않았다.


 석연치 않다 느낀 건 언어 수준이 너무 짧고 간단하다는 것이다. 긴 문장을 구사하기보다는 간단한 문장, 단어로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그 말을 못 알아듣지는 않지만 대학까지 나왔는데 이런 식으로 밖에 영어를 못하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였다.


 그래, 자존심이 상했다. 일본어, 중국어, 태국어를 여행 중에 못 한다고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 그런데 영어는 그렇지 않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거의 20년 가까이 영어를 배웠는데 이렇게 밖에 못하는 것이 속상했다. 심지어 옆에 있는 친구보다 떨어지는 실력도 자존심에 금을 가게 하기 충분했다. 예상했지만, 내 영어 실력이 확연하게 보이는 것은 충격이었다. 영어 공부를 조금씩이라도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떨어지지 않는 입이 아쉬웠다. 나보다 잘 한단고 생각한 친구도 이번에 본인이 생각한 것만큼 영어가 안 나와서 속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이번에는 꼭 시작한다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엄청난 고급 어휘를 구사하는 걸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적당한 토크가 가능한 수준의 영어를 하고 싶다. 


 흐바르에서 머문 가족형 작은 호텔에서 호텔 사장님은 저녁 식사 시간에 손님들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식탁에는 정말 가볍게 음식에 대해 물어보고 떠났다. 그러나 우리 뒤에 있는 커플과는 거의 가족사까지 이야기했다. 생각이 많아졌다. 물론 우리가 그 호텔의 유일한 동양인이라 영어를 못한다고 여겼겠지만, 사실 사장님이 길게 머물었으면 그거는 그거대로 힘들었을 것이다. 여행에서 긴 대화는 필요 없다 여겼는데, 그  순간은 긴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 그 편안하고 가족 같은 호텔에서는 말이다. “This please” 가 아닌 좀 더 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정말 영어 공부는 평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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