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글쓰기 노동자의 일상기록(5)
숙취로 괴롭던 어느날 아침이었다. 무심코 TV를 틀었다가 ‘싱어게인4’가 시작했다는 걸 알았다. 이미 상당 분량이 진행 중이었다. 이번 시즌은 어떤지 간 좀 볼까 하고 시작했다가 그날까지 방영된 모든 회차를 다 보고 말았다. 회당 두 시간이 넘는 분량이니 꼬박 열 시간 이상을 소파에 누워 싱어게인을 봤다. 마침 집사람이 하루 종일 집을 비운 날이라 마음 놓고 눈물을 찔끔거릴 수 있어 좋았다.
나는 ‘예능’을 믿지 않는다. 적어도 그것이 ‘대본과 편집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본다. 리얼버라이어티(Reality Variety)는 ‘리얼’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리얼처럼 보이게 만들어진 버라이어티쇼(Variety Show)라는 의미다. 쇼의 출연자들은 PD와 방송작가가 만들어낸 세계에 속한 캐릭터에 불과하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불편할 때가 있고, 이해가 안 갈 때도 생긴다. 그 '리얼'이 오디션이라는 경쟁의 형태를 띤다면 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을 꽤 좋아한다. 유사 콘텐츠들과 구별되는 몇 가지 차별점 때문이다. 첫째, 이 프로그램에서는 심사위원이 출연자들을 나무라지 않는다. 둘째, 탈락이 결정되는 순간 이름을 불러준다. 그저 노래하는 게 좋아서 그것을 멈추지 않고 해온 ‘무명’ 혹은 ‘잊혀진’ 가수에게는 한 번 이상의 공연과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적잖은 보상이 된다.
음악은 시간예술이다. 원칙적으로 노래는 그것을 부르는 순간에만 존재하고, 소비하는 관객이 눈앞에 있어야 한다. 작가는 독자가 눈앞에 없어도 외롭지 않지만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관객이 보여야 보상과 위로를 받고, 동기를 얻는다. 작가는 글을 써놓고 독자를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가수는 노래를 불러놓고 관객을 기다릴 수 없다.
나는 눈물이 많은 사람인데, 눈물 쏟아지는 포인트가 어디인지 몰라 곤란할 때가 간혹 있다.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한 출연자가 나오는 장면에서 예기치 않게 눈물을 흘렸다. 지금은 월드스타가 된 한 배우의 데뷔작 OST를 불렀다고 본인을 소개한 그는 눈가에 물기가 흥건한 채로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 이 곡으로 TV 출연이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공연을 보고 또 들으며, 울음소리가 새어 나올 정도로 통곡을 했다. 뭐가 그리 북받쳐서 서럽게 울었느냐 묻는다면 대답해줄 말이 별로 없다. 대부분의 이유는 아마도 숙취였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관객 없이 홀로 노래해온, 아니면 그렇게 노래할 여유조차 좀처럼 내기 어려웠던 나이 든 가수에 대한 안쓰러움이 약간, 아주 약간 보태졌겠지.
글쓰기 노동자에게 독자 없는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에 원고료를 지불하는 클라이언트는 없다. 언젠가 나이 차 많이 나는 까마득한 후배가 내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선배님은 왜 등단을 하지 않으셨나요? 그게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거였냐, 라고 되물으면서 이렇게 대답해줬다.
“지금 돈이 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는데 등단을 해서 뭐에 쓰겠냐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 그런데도 돈이 되든, 그렇지 않든 글을 쓰지 않고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어. 등단은 그런 사람들이 하는 거지.”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그래서 알 수 있다. 아마 싱어게인 시즌4에 출연한 46호 가수도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글을 써야 살 수 있는 사람처럼 노래를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 그러니까 아무도 노래를 해 달라 찾아주지 않고, 이리저리 삶에 치이는 가운데서도 마이크를 놓을 수 없었던 거겠지. 그런 사람은 어떻게든 노래를 불러야 한다.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작가가 아니고 글쓰기 노동자다. 글을 써서 밥을 먹는다. 밥을 먹기 위해 더 편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다른 직업으로 갈아탈 용의가 있다. 그래서 작가가 아니고 글쓰기 노동자다.
다만 그런 것은 있다. 글쓰기가 아니고 다른 일을 해서 밥을 먹게 되더라도 놀 때는 글을 쓸 거 같다.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들고, 무언가를 사거나 팔고 할 시간에 나는 글을 써서 돈을 번다. 하지만 그들이 골프를 하고, 야구를 보면서 놀 시간에 나는 글을 쓰면서 논다. 정확하게는 골프는 하지 않고, 야구는 가끔 보지만, 글도 쓰면서 논다. 글은 내가 가장 선호하는 놀이도구다.
나는 언제 일하고, 언제 노는가. 예전에는 명확했던 이 구분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을 느낀다. 온라인 연재글을 쓰거나, 시나 소설을 쓸 때는 둘 다인 것 같다. 놀이와 노동의 경계가 옅어져가고 있다. 그렇게 지겹던 글쓰기가 요즘은 조금 즐겁다.
지날 때는 먼 길을 도는 것 같은데 도착지에서 보면 그 길로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풍경이 아름다웠다거나,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았다거나, 멋진 사람을 마주쳤다거나 해서. 길 위에서 생긴 일들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지금 되돌아보니 그 길들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결국 어딘가에 도착하겠지만, 지나치고 있는 이 길들을 조금 더 즐기고 싶다. 우연히 발견하고, 우연히 깨달으면서.
글을 써서 다행이다. 노래처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다른 일이었으면 적잖이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Sing Again’보다는 ‘Write Again’이 훨씬 더 쉽다. 가수에게 무대에서 부르지 않는 모든 노래는 연습이다. 하지만 글 쓰는 사람에게는 책상 앞에만 앉으면 모든 게 실전이고 실황이다. 그래서 다행이다.
46호 가수는 2라운드에 진출했다. 그가 2라운드에서 아들 뻘되는 젊은 참가자와 듀엣을 할 때 나는 더 크게 소리를 내 눈물을 뺐다. 3라운드 진출에 실패했을 때서야 그의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1967년생 이후종이다. 그의 Sing Again은 어쩌면 지금부터가 시작일지도 모른다.
숙취는 저녁이 다돼서야 가라앉았다. 잠시 눈을 붙였다 새벽에 잠에서 깨 책상 앞에 앉았다.
나는 쓴다. Write Again. 쓰면서 살고, 쓰면서 논다.
#싱어게인 #이후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