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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온 Jun 05. 2024

옷장

#13/28 짧은 글 에세이_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

  안에 너무 많은 옷들이 가득하다. 그 속을 빼곡히 채워 옷이라는 나무가 가득한 숲을 형성했다.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숲이었다. 




 처음엔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위칸에는 상의만, 아래칸에는 하의만 걸어놨다. 

그러다 점점 옷이 많아지더니 수납함과 스탠딩 옷걸이, 벽걸이형 옷걸이 등 내가 수납하지 못하는 걸 다른 옷걸이들이 도와줬다. 그렇게 한 번 내가 머물고 있는 방 주인이 옷들을 정리할 때쯤 그의 선택에서 소외되는 옷들이 그의 손에 들려나갔다. 입혀지는 줄 알고 나간 옷들도 있으려나. 그날 나갔던 옷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한결 숨 쉬기 편해졌다. 옷들이 옷가게처럼 색 별로 정렬 됐다. 하지만 그 상태는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색별로 정리해 봐야 평소에 그렇게 정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또다시 중구난방에 여기저기 공간이 부족해 쫓겨난 옷가지들이 조화롭지 못한 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런 상태가 자연스럽단 듯이.


 방 주인한테는 동생이 있는데 평소 옷을 사지 않는 그의 동생은 형의 옷을 자주 입는다. 어느 날 형의 옷들로 꽉 채워진 내 앞에서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다가 문득 내 상태가 지금 당장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보였나 보다. 고민하다 말고 침대 위에서 충전되고 있던 핸드폰을 충전기에서 빼내고 형에게 전화를 했다. 언제 오는지, 집에 오면 옷장 정리를 같이 하자는 내용의 통화였다. 

 별안간 시작된 옷장 정리는 6촌 누나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방 주인의 예정 없는 큰 주말행사였다. 마지막 정리 이후 다시 정리하기까지 한참이 지났다. 정확한 기간은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다시 정리 안 한 상태로 곧 돌아갈 것을 예상한다. 그렇지만 어찌 됐든 다시 숨쉬기 편한 상태로 만들어준다는 것에 감사했다. 3시간 정도 흐르고 나서야 얼추 정리가 마무리 됐다. 

형의 체력도 마무리 돼 보였다. 정리라는 도화선에 불을 붙인 동생은 약속이 있다고 4시 20분에 나가버렸고 나머지 40분은 형 혼자서 정리했다. 그는 뿌듯함에 미소를 짓고는 이내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나도 정리되어 뿌듯하다. 슬램덩크에서 강백호와 서태웅이 하이파이브를 하는 명장면이 생각난다. 방 주인과 같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지만 손이 없는 관계로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그 이후에 놀랍게도 정리가 잘 되고 있긴 하다. 물론 색별로 모아서 하는 정리는 다소 어렵긴 하다만 최대한 그 형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방 주인의 노력이 보인다. 다행히도 금방 예전처럼 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나름의 심각성을 느꼈던 건지 아니면 그동안 읽었던 자기 계발서에서 정리를 잘하라는 문장들을 많이 봐와서 습관처럼 그렇게 된 건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사실 제일 문제가 됐던 옷장만 정리가 유지 됐을 뿐이지 

옷들은 여전히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롱패딩이나 롱코트는 항상 걸려 있는 벽걸이형 옷걸이에 그대로 걸려 있다. 방만 보면 밖이 여름인지 겨울인지 구분이 안된다. 어쩔 수 없다. 작디작은 집에 옷들의 숲이 이미 무성하거늘, 매해 버리고 있지만 새로 사기도 하니까 어쩔 수 없다. 


 밖에 나갈 때는 깔끔하게 나가려는 그는 주름이 진 셔츠를 스팀다리미로 다려 입고 나간다. 옷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걸려 있는 셔츠들도, 가끔 옷장 안에서도 빼곡하게 걸려있는 바지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밀린 채로 꺼내지기를 기다리며 잔뜩 주름이 지기도 하는데 시간이 없으면 그냥 입고 나간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그는 그리 완벽하거나 꼼꼼한 스타일은 아니다. 하다만 느낌의 자기 관리로 적당히 깔끔해 보이기만 할 뿐. 혹여나 사람들이 옷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까봐 운동으로 몸을 열심히 가꿔 주름이 눈에 잘 보이는 부분들은 더 커진 몸으로 팽팽하게 펴보지만 단시간 내에 드라마틱하게 커져서 기대하는 만큼 팽팽한 옷으로 보이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옷은 사람을 나타내는 명함이다. 그런 명함들을 보관하고 있는 건 내 역할이다. 자체적으로 스타일러 기능이 있는 옷장이고 싶은데 그런 스마트한 기능이 없어서 아쉽다. 

내가 있는 거라고는 거울과 가방걸이 겸 모자걸이다. 모자걸이에는 모자 대신 목걸이가 가방과 함께 걸려있다. 여름만 되면 귓가에서 웽웽거릴 모기를 막아줄 모기장 텐트도 보관하고 있다. 

나름 있을 건 다 있다고 생각한다. 스타일러 따위가 나랑 결합되어 있는 집이 신기한 거지 대부분 없지 않은가. 나는 내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애써 아쉬움은 장점으로 잊으려 노력한다.)


 며칠 전 방 주인이 여름맞이 옷을 사 왔다. 아직 쇼핑백에서 꺼내지 않은 채 내 앞에 두었다. 반팔만 6벌인데 사실 내 안에 반발은 많이 없다. 다 따로 보관한다. 그는 내 안에 비싼 반팔이나 평소 마음에 들어 하는 반팔을 옷걸이에 걸어놨다. 옷장이든 어디든 옷걸이로 옷을 걸어두는 게 아니라면 쭈글쭈글 주름이 잡히고 마는데 여름엔 얇은 반팔 하나만 입기 때문에 주름이 잡히면 바로 티가 난다는 그도 충분히 경험하여 알고 있다.

 

 그가 출근할 때마다 다림질하고 나가기에는 그렇게 부지런해 보이지 않는다. 아마 그가 더 잘 알 것이다. 그렇기에 나름 고민이 되어 보인다. 이미 꽉 차있는 옷을 다시 한번 꺼내서 정리해야 하는지 아니면 주름 지지 않게 접는 방법을 고안해야 하는지 정답 없는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돈 열심히 벌어서 얼른 옷장이 큰 집으로 이사가 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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