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시간 외에는 안경을 끼고 살던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마도 열 번쯤은 새로운 안경을 맞추었을 것이다. 없는 살림에도 아이의 안경만큼은 때에 맞춰 새로 해 주고 싶었을 부모의 마음. 어린 시절의 안경값은 지금처럼 싸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두꺼워지는 안경알 탓에 압축에 압축을 거친 렌즈값은 날이 갈수록 비싸지기만 했다. 어릴 때는 고도근시로 가는 그 과정이 잘못된 것이라는 의심을 품지 못했다. 그저 당연하게 안경을 맞출 때면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잘 보이는 안경을 새로 했고, 그 안경을 1~2년 쓰고 나면 으레 적응이 되어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그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뒤늦게야 알았다. 하지만 모으고 아낀 돈으로 새로운 안경을 맞춰주던 엄마의 마음을 떠올리면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더라도 지나온 시간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아픔의 무게는 다르겠지만, 아이의 건강을 염려해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 온 부모의 선택 또한 그러하다. 그들은 정상적인 경로로 판매되는 상품을 믿고 구입했을 뿐, 살균제를 집어든 엄마의 마음은 오로지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가득했을 테니까.
그때, 그 누가 알았더라면 충분히 보이는 거리에서도 안경을 쓰고 있는 내게, 살균이 되리라 믿고 살균제가 든 가습기를 틀어 놓은 그들에게, 말해 주었을 것을... 자식을 아끼는 부모의 지난 선택이 고맙고 또 슬프다. 결국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지킬 수밖에 없다. 누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많은 이들이 사용한다고 해서 믿어서는 안 되는 일이 많이 있다.
내게는 안경을 쓰는 일이 그러했고, 시력을 간단히 레이저로 교정하려 했던 일이 그러했다. 안경점은 보이지 않는 불편을 덜어주는 곳이라기보다는 패션 소품으로써 매출을 올리는 곳이며, 안과는 아픈 눈을 치료해 주는 곳이 아닌 시력 교정술로 돈을 버는 미용 산업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나는 그런 안경점과 안과의 운영 목표에 부응하여 매년 안경을 갈아치우고 라식도 받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신중해 볼 요량이다. 모든 선택의 주체는 '나'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