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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이란 것이 있다면

by 소소산

살면서 119에 다 전화를 해 볼 줄이야.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 질병관리청에 문의해 보니, 119에서 유선 상담이 가능하다고 했다. 첫 번째 수신자는 담당 부서에 연결해 준다고 했다. 두 번째 수신자는 의사 확인 후, 알려준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안약은 더 이상 넣지 마시고, 내일 병원에 가 보세요." 전화를 끊자마자, 일요일에도 진료 가능한 안과 목록이 수신되었다.


병원은 다 문을 닫은 토요일 저녁. 낮에 다녀온 병원에서 의사는 각막염이라고 하며, 실명까지 할 수 있다고 크게 겁을 주었다. 눈이 꺼끌하다며 집 앞 안과에 다니다, 일주일 만에 역 앞에 있는 안과에서 다시 약을 처방받은 엄마. 엄마는 새 안약을 대여섯 번 넣은 후, 새빨간 눈으로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빨간색을 보는 것은 참 공포스럽다.


안약 이름을 검색해 보고, 약에 동봉된 설명서를 검색해 보니 부작용 현상이란다. 그래도 의사가 약을 넣어서 염증을 없애야 한다고 했는데... 결국 물어본 곳은 119였고, 안약을 넣지 않자 눈물이 멈추고 눈의 색깔이 조금씩 돌아왔다. 엄마의 눈은 결국 며칠 후, 완치되었다. 그녀가 빨개진 눈으로 눈물을 흘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인터넷을 뒤져 어쭙잖은 진단을 하는 것뿐이었다.


가끔씩 다른 공부를,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며 가장 자주 드는 감정은 역시 의사가 되었더라면 부모가 아플 때 덜 두렵지 않았을까, 부모에게 든든한 의지가 되었겠지 하는 아쉬움이다. 다음 생이란 것이 있다면, 의사가 되고 싶다. 겁이 많은 엄마를 안심시키고 다독일 수 있는 다정한 평생의 주치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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