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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트 하는 20대 며느리

그들에게는 낭만일 수도 있는

by 블루랜턴

찰. 찰. 찰. 찰.

찰. 찰. 찰. 찰.


며느리가 지하에서 줄넘기로 바닥을 치는 소리다.

아들은 그 옆에서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리며 푸우.. 푸우.. 장단을 맞춘다.

둘은 홈트레이닝 중이다.


이 소리를 들으며 나는 1층 주방에서 저녁밥을 짓는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시설 좋은 피트니스 센터가 있지만 그곳의 멤버십을 사는 대신 며느리는 덤벨 세트를 샀다. 퇴근하면 곧장 쫄쫄이 레깅스로 갈아입고 지하로 내려가 저녁 먹기 전까지 땀 흘리며 운동한다.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호사를 부리고도 싶고 사치를 누리고도 싶을 텐데, 건강을 위해 쓰는 돈이 호사도 아니고 사치도 아니건만 그녀는 집에서 홈트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하긴, 운동이란 것이 '하느냐'가 관건이지, '어디냐'가 주목적은 아닐 게다.


홈 트레이닝은 모름지기 운동도 하고, 돈도 아끼고, 오고 가는 시간도 아끼고, 일석에 삼조를 얻는 꽤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짠돌이 아들과 결을 같이 하며 며느리까지 덩달아 짠순이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사준 바벨을 기반으로 아들이 무게가 다른 바벨을 더 사고, 자전거를 사고, 최근 요가매트와 덤벨세트까지 사면서 우리 집 지하는 아예 저들의 홈 짐이 되었다. 나도 산책과 스트레칭처럼 돈 안 드는 운동을 하고 있으니 이런 행태를 고무적이라며 추앙하는 바인데, 간혹 젊은 부부의 궁상처럼 보일 때는 내 마음이 짠해지는 것이다.


나의 친애하는 며느리는 저 유명한 브랜드 운동복도 사지 않는다. 결혼 전에 입었던 검정 레깅스를 그대로 입고서 얼굴이 벌개지도록 식식거리며 운동한다. 사주겠다고 해도 무엇 하나 덥석 사지 않는다. 내가 버리려고 내놓은 낡은 책장을 가져다가 책을 꽂고, 오래 쓴 누런 휴지통을 가져다가 화장실 쓰레기통으로 사용한다. 시집와서 그녀가 새로 산 물건은 일할 때 쓰는 오피스 책상과 의자가 전부다.


며느리가 저를 위해 그나마 한 가지 사치하는 것은(사실 사치라고 할 수도 없지만) 일주일에 한 번 스타벅스 음료를 마시는 것이다.


그렇게 아끼는 돈으로 뭘 할래? 물으니, 집부터 사겠다고 한다. 계속 내 집에 눌러 살 계획은 아닌가 보다. 해서 입 꾹 다물고 나도 그들의 절약을 존중하기로 한다.


'방 빼!'라며 내가 눈치 준 적은 없다만 저들도 합가살이가 불편할 테니, 나도 붙잡지 않는다. 다만, 자린고비형 무조건 절약으로 혹여 사는 즐거움을 잃을까 걱정인 까닭이다. 낭만 없는 인생처럼 척박한 것이 또 있을까! 부디 낭만을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가만... 이 정도의 절약은 어쩌면 젊은 부부에겐 낭만일 수도 있지 않을까? 둘이 일 끝내고 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호흡을 맞춰가며 운동하고 땀 흘리는 그 시간은 그 나름대로의 낭만이 될 수도 있을 터이니, 괜히 또 나 혼자 오지랖 떨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젊으면 젊은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낭만은 있는 법이고, 무엇으로든 나보다 현명한 아이들인데 내가 왜 그들 걱정을 하고 있나?

오로지 담배 하나에 삶의 모든 낭만을 곯아 박는 내 남편도 감당을 못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평소에 긍정적이고 밝고 검소한 딸로 키워준 그녀의 친정 부모에게 감사는 해야겠다.

'Thank You So Much~~~'라고.




대문사진 : Pixabay로부터 입수된 janoazs 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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