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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치한 작가 Jun 30. 2024

책임감. 정말 중요하면서 무거운 단어.

책임감이라는 글자가 스스로 무겁게 받아들여진다면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본 말. '책임져.'


'네가 책임져.' 초등학교 때, 중ㆍ고등학교 때 장난치면서 정말 가볍게 많이 했던 말이다. 만약 어떤 행동을 해서 안 좋은 결과가 나타나면 혼날 거 네가 다 뒤집어써라는 의미로 쓰였다. 

어렸을 때 친구와 같이 있으면 짓궂고 하고 싶고 약간 선을 넘는 장난인데 왠지 걸릴 것 같지 않는 장난을 했을 때 만약 적발되거나 쉬운 말로 걸렸을 때, 친구들과 같이 한 행동이지만 그 순간 피하고 싶어 한 사람에게 몰아버리고 도망치는 그런 해프닝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가끔 앞서 말한 행동들이 생각난다. 

그때 꼭 했던 말이 '네가 책임져. 난 몰라.' 하고 뒤로 빠졌던 그 시절이 여전히 기억난다.  


어른이 되면서 정말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단어' 책임' 


나도 두 아이의 부모가 되면서 그리고 부모가 되기 전에도 '책임'이라는 단어는 그 무게감이 어마어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부여받은 일에 대해 책임감 있게 하려고 노력한다. 성공을 위해 아니면 실패를 하더라도 적은 피해를 입기 위해 상당수 고민을 하고 만약 뭔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다 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오히려 그게 편하다. 남 탓을 해봤자 아무 소용없고 솔직히 본인만 힘들다. 

또한 아이들의 부모로서 이 아이들을 필히 책임져야만 한다. 나의 목표는 단 하나다. 이 아이들이 대한민국에서 몸과 마음이 정말 건강한 어른이 되어 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스스로의 공부, 연구 그리고 나 스스로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여전히 멈출 수가 없다. 내 심장이 멈추기 전까지 지속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안 보더라도 내가 뱉은 그 말을 책임지기 위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어른으로서 책임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필히 알려줘야 하고 몸소 보여줘야 한다. 

책임의 무게를 이르게 깨닫는다면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다


나이가 들면서도 책임의 무게를 진정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마치 책임지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내면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꽤나 있다. 다른 사람을 책임진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의 성장과 앞날에 대한 상당한 일정 부분에 대한 도움을 줘야만 한다. 그래야지 책임을 진다는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직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 책임감은 거대해야 되고 무한한 책임감으로 무장해야만 한다. 그래야 그 조직이 산다. 어떤 조직이든 회사가 망하지 않으면 잘 돌아간다. 그러나 진정으로 잘 돌아가려고 하면 책임감 있는 사람이 상위에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은 부하직원의 좋은 일에 공감하고 안 좋은 일에는 진심으로 위로를 하며 생활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해서 성과가 만약 없다고 하더라도 사람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진정으로 직원들을 위한다면 책임감이 가벼워서는 안 된다.  

책임감에 대해 어른과 젊은이가 비례하지 않는다. 젊은 사람도 그 책임감에 대한 깊이를 깨닫는다면 나이가 많은 어른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은 책임감 없는 사람이다. 


착하고 말 잘 듣고 하라는 것 잘하고 나쁜 말로 비위 잘 맞춰주는 사람, 이 사회에 정말 많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책임감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내 생각에 책임감 있는 사람들은 말 잘 듣고 하라는 것 아무 말 없이 잘하지 않는다. 필히 하라는 것, 지시하는 것이 부당할 수 있기에 그렇지 않은 경우를 가끔 본다. 나는 그것이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냥 위에서 하라고 

하는 것 하는 사람은 무책임할 수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을 별로 원치 않는다. 

동물을 버리고 가는 사람은 어떠한 나쁜짓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동물을 버리고 가거나 애매한 이유로 오랜 기간 동안 놓고 가는 사람들을 절대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사람의 탈을 쓴 동물이라고 나 스스로 결론짓는다. 

내 주변에 동물을 키우다 내 생각에 버리고 가는 사람이 몇 있다. 그 사람 말로는 잠깐 놓고 갈까 하고 한 달 넘게 찾으러 오지 않는다. 그건 솔직히 버리고 간 것이 아닌가. 정말 사람도 아니다. 그럴 바에는 동물을 왜 키웠나. 본인 만족에 의해서? 아니면 주변에 뭔가 보여주려고? 

나는 동물을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도 내 아내가 동물을 좋아하기에 단 한 번도 이 동물가족을 며칠간이라도 잘 맡겨놓지 않는다. 그냥 내가 아니면 우리 가족이 오랜 기간 여행이나 기타 집을 비우는 기간이 적거나 거의 없다. 우리 집에 같이 사는 식구가 아닌가. 

동물을 잘 쓰다듬지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오랜 기간 따로 떨어뜨려놓지 않는데 본인들이 좋아서 키운 동물들을 한 두 달 놓고 간다는 핑계로 데러 가지 않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 입양을 시킨다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사람의 탈을 쓴 악마까지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사람의 도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꽤나 많고 나의 마음을 가끔 힘들게 한다. 


나는 무한한 책임감을 지닌 사람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책임감의 무게에 대한 것은 대화를 통하다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아직 희망을 가지는 부분은 이런 책임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내 주변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것이 나를 직장에서 행복하게 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직위가 높은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을 잘 느낄 수 없어 나는 아쉬울 뿐이다. 머릿속의 책임이라는 지식에서 벗어나 진정 가슴으로 느끼는 그런 책임 있는 행동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뿐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많은 이들이 진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야 개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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