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에게
첫 휴가를 보내고 다시 돌아가 지낼만하니? 휴가 때, 네가 한 달 만에 오는데 빈집이라 안타깝더라. 그래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미역국과 주꾸미볶음을 했지. 그리고 현관문 열면 딱 보이는 자리에 ‘환영합니다!’ 배너도 붙이고 출근했어. 너의 격한 감동을 기대하며 어땠냐고 물었는데, 웃겼다고. 그래, 눈물보다는 웃음이 낫지.
아들 온다고 시간을 다 비워뒀는데, 네 얼굴 보기도 힘들더라. 대학 다니는 친구, 재수하는 친구를 부지런히 만나고, 틈나면 피시방에 가고. 덕분에 엄빠가 오랜만에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냈네.
집에서는 샤워만 2시간인데, 학원에서는 매일 6시 20분에 일어나서 20분 만에 씻고 아침 먹으러 나간다니 참 신기하구나. 그곳에서의 좋은 습관이 집에 오면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놀라워. 집에서 재수하는 친구들이 이해 안 된다고 했지. 그러면 고3 때와 다를 게 없다고.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겠지만, 엄마도 네 생각에 동의해.
한자 배울 學 자의 뜻을 풀어보면, 공부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子 자 위에 �(배울 학) 자가 있어. 이 글자에는 �(깍지 낄 국)에 爻(사귈 효)와 冖(덮을 멱)이 들어있지. 즉, 친구와 함께 가둬놓아야 공부한다는 의미야. 지금처럼 휴대폰이나 인터넷이 없던 수천 년 전에도 속세를 떠나야만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나 봐.
네가 어릴 적에 같이 갔던 도산서원도 산속에 있었지. 앞에는 냇가가 흐르고, 주위가 조용해서 책을 볼 수밖에 없겠더라. 아니, 할 일이 공부밖에는 없는 천혜의 환경이었어. 네가 자기 전에 기숙사에서 읽고 싶다고 이번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주문했잖아. 책은 정말 갇혀있어야 보나 봐.
3박 4일이 지나고 데려다줄 때, 기숙 학원에 다다르니 넌 괴성을 질렀지. 그러면서 이 노래까지만 다 듣고 가고 싶다고. 참 애절하더라. 그래도 건강하게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여. 너는 보내고 돌아오면서, 며칠 있었는데 계속 있었던 것 같다고 아빠가 허전해했어.
그저께 첫 모의고사도 봤다고. 새로 선택한 과목도 있어 어려웠겠어. 결과는 아직 아쉽겠지만, 과목마다 잘한 점과 노력할 점을 스스로 분석하다니 훌륭해. 공부는 메타인지가 중요하지. 상위 0.1%의 학생들을 연구한 결과, 그들의 공통점은 높은 점수가 아니라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고 있는 것이었어. 이번에 영어는 조금씩 꾸준히 해서 올랐는데, 지구과학은 소홀히 해서 감을 잃었다고. 네가 예상했던 결과였다면, 엄마는 만족해. 방향은 맞으니 시간을 투자하길.
엄마는 어제 학부모 공개수업과 총회를 마쳤어. 6학년인데도 한 분 빼고 모두 참석하셨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손님이 많이 와야 잔칫날답지. 다행히 아이들도 부모님도 만족했어. 수업도 재미있고,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말씀해 주셔서 기분 좋았어. 나이 많은 담임에게 왜 불만이 없으시겠어. 그래도 긍정적으로 봐주시니 감사하지.
모처럼 예쁜 옷 입고, 무리했는지 오늘 열나고 두통이 오더라. 집에 오자마자 약 먹고 한숨 잤어. 일어나서 생강차 마시니 한결 낫네. 그래서 이렇게 편지도 쓴다. 너도 컨디션이 안 좋을 땐 푹 자고 쉬어. 긴 싸움에는 체력이 중요해. 그럼, 건강 잘 챙겨. 사랑한다.
2025년 3월 20일 목요일
사랑하는 엄마가
PS. 지난번에 고심하며 긴 답장을 쓰느라 영어 단어를 못 외워서 늦게 잤었다고. 앞으로는 간단히 생각나는 대로만 써줘. 엄마는 널 그리워하는 마음에 취미 삼아 쓰는 것이니. 네가 읽어주기만 해도 기쁘니까! 오늘 레이커스는 120대 108로 이겼어. 돈치치는 31, 9, 7, 47.6으로 활약했네. 매버릭스가 배 아프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