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에게
지난번 네 답 글 잘 읽었어. 엄마에게 편지 잘 쓴다고 칭찬해 주니 어깨가 으쓱했어! 글 쓰는 수고도 알아주고(사실 편지 쓰는 데 서너 시간은 걸려). 어린이를 가르치는 어린이가 되길 바란다는 센스 있는 마지막 문장까지! 캬~역시 엄마 아들! 며칠 동안 네 답장을 여러 번 읽었어.
예전에 엄마가 글 쓰고 있으면, 숙제도 아니면서 왜 굳이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잖아. 사실 힘들기도 해. 쓰면서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 그런데 소설가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에서 이렇게 말했어.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 삶은 기억이다.”
엄마가 처음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의 원동력은 너였어. 네가 엄마의 삶을 나중에 알고 싶을 때가 있겠지. 그런데 그땐 기억을 잊을 수도 있고, 네 옆에서 직접 말해줄 수 없을지 모르지. 그래서 귀찮고 자신 없지만 글을 써보기로 용기 냈어. 독자가 단 한 명뿐이더라도 그게 너라면 충분하니까.
지금 너의 이야기도 틈날 때마다 기록해 봐. 너의 이야기는 너만 쓸 수 있으니까. 살면서 언제 문명과 떨어져 고립돼 지내보겠어. 원래 명문장은 감옥에서 나오는 법이지. 백범 김구의 <백범일지>나 신약 성경의 바울 서신처럼. 낙서 같은 글이어도 끼적이다 보면 네게 위로가 될 거야.
우리 가족은 모두 3월 첫 주를 무사히 보냈어. 엄마에게 진짜 새해는 3월부터야. 교사로서 25번째 3월을 맞이하는데도 설레고 긴장돼. 아이들과 학부모도 그렇겠지. 올해엔 6학년을 맡았어. 최고 학년이지만, 엄마 눈에는 귀여워. 너보다 훨씬 어려서인가 봐.
학기 초에는 교우 관계를 가장 신경 써.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한 명만 있어도 안심되고 재밌잖아. 그래서 첫 놀이시간에 유심히 관찰하지. 올해엔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가 띄엄띄엄 세 명 있더라. 그래서 같이 보드게임 하자고 불러 모았어. 그렇게 한 번 붙여주면 아이들은 금방 친해지거든.
둘러앉아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네게도 힘이 되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엄마도 수험 생활을 친구들 덕분에 즐겁게 지냈던 것처럼. 그런데 친구와 같이 산책하며 이야기도 나눈다고 해서 안심이야. 네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사 와서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잖아. 그때 이모가 그랬어. 너는 좋은 아이니까 좋은 친구를 만날 거라고.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알아본다고.
좋은 친구를 바라기 전에, 우선 나부터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드네. 하지만 좋은 사람이어도 서로 통하는 진실한 친구를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야. 오히려 행운에 가깝지. 유안진 작가의 수필 <지란지교를 꿈꾸며>에는 친구에 대한 이런 글이 있어.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은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은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 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지초(芝草)와 난초(蘭草)처럼 서로에게 맑고 소중한 벗을 만나길. 그리고 함께 그곳에서 진실한 우정을 나누길 바란다.
2025년 3월 10일 월요일
사랑하는 엄마가
PS. 이제 3일 후면 첫 휴가를 나오는구나! 보고 싶다.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네 손을 잡고 싶구나! 그날을 기다리며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