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에게
택배는 부쳤어. 내일이면 도착할 거야. 3일 전에 물티슈 보내달라고 했을 때 린스도 얘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요즘 박스 구하느라 바쁘네. 그래도 자주 보내니 포장이 능숙해졌어.
요즘엔 학부모 상담 기간이야. 오늘은 여섯 분을 상담했어. 짧으면 15분, 길면 45분 정도 걸리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어. 힘들긴 하지만, 학생들이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니 뿌듯해. 그리고 누가 그렇게 시간 내서 엄마를 보고 싶어 하겠니. 귀담아들어 주시니 감사하지.
아이에 대한 부모님의 고민은 다양해. 살이 쪄서, 살이 안 쪄서, 키가 작아서, 편식해서, 체력이 약해서, 친구와 문제가 생길까 봐 등. 너를 키워보니 지나면 별것 아니라는 것을 알아. 하지만 그때는 몰랐지. 네가 학원에서 레벨을 낮게 받아도, 넘어져 다쳐도 내 탓인 것 같아 괴로웠어. 이제는 괜찮아. 네게는 스스로 회복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
지난 2월에 개학맞이 강릉 여행을 갔었어. 혼자였기에 게스트 하우스에 묵었는데, 미국 미네소타에서 온 Josh라는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었어. 22세인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기술자라고 했어. 지금은 3개월 동안 아시아를 여행하는 중이라고. 네 생각이 나더라. 너도 나중에 자유롭고 넓게 청춘을 누리면 좋겠다고.
엄마도 Josh와 같은 나이였을 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었지. 그때 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이 인상적이었어. 팔각 모양으로 불룩 솟은 붉고 커다란 돔은 두오모라고 부르는 대성당의 상징이지. 4백만 개 이상의 벽돌로 만든 아름다운 이 돔은 필리오 브루넬레스키라는 위대한 예술가가 설계했어. 하지만 그의 성공 이전에 실패가 있었지.
1402년에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청동 문에 부조를 조각할 사람을 뽑는 공모전이 열렸어. 브루넬레스키는 최종후보에까지 올랐지만, 조각가 기베르티에게 패배했어. 기베르티의 작품은 미켈란젤로로부터 “천국의 입구처럼 너무 아름다워서 그 앞에 계속 서 있고 싶다”라는 평가를 받아 ‘천국의 문’이라고 불렸지.
브루넬레스키는 실망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어. 로마로 건너가 고대 건축을 연구한 뒤,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대성당 돔의 설계안 공모전에 도전했지. 그리고 기베르티도 참여했던 이 대회에서 당당히 당선돼. 그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법으로, 아무도 완성하지 못했던 작품을 완성했어. 최초의 팔각형 돔인 이 작품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프로젝트야.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큰 석조 돔인 그의 작품은 실패 후 재도전한 덕분이었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 돔은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로 연인들의 명소가 됐어.
피렌체의 두오모에, 너랑 오르고 싶어. 그때 나는, 평소에 없는 용기를 그러모아 말했다. 나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하는 사랑의 고백이었으므로.
피렌체의 두오모에는 꼭 이 사람과 같이 오르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쥰세이는, 너무도 쥰세이답게 주저 없이 약속해 주었다.
좋아, 10년 뒤 5월……. 내내, 쥰세이와 함께일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인생은 다른 곳에서 시작됐지만, 반드시 같은 장소에서 끝날 거라고.
-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 중에서
스무 살이었던 소설 속 주인공은 10년 뒤, 이곳에서 낭만적으로 재회하지. 비록 엄마는 절친과 두오모를 올랐지만, 넌 미래의 그녀와 함께 따듯하고도 찬란한 이 성당을 오르길 바란다.
2025년 3월 26일 수요일 사랑하는 엄마가
PS. 그녀와 가기 전에 수능 끝나고 엄마와 답사해도 좋겠다. 그렇지?ㅎㅎ
<답장>
ㅋㅋㅋㅋㅋ 잘 읽었어요 미래의 그녀 ㅋㅋㅋㅋ
항상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