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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8

by 철부지곰

사랑하는 아들에게


오늘은 궁금해할지 모르겠지만, 너의 유일한 2촌인 여동생의 근황을 알려줄게.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잘 지내고 있어. 아침마다 알아서 일어나서 씻고 학교에 가. 올해부터 학원이 많아지고 늦게 끝나는데도,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면 신기해. 피곤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괜찮대. 오빠가 깨워도 안 일어나고, 지각했던 게 이상하대. 참 신기해. 강한 체력을 타고났나 봐.


지난주 목요일에는 자고 있는데, 동생이 급히 엄마를 깨우는 거야. 놀라서 일어나 보니 출근 30분 전! 서둘러 씻고 간신히 지각을 면했어. 진짜 큰일 날뻔했지. 그리고 며칠 뒤, 동생이 자다가 깼는데 엄마가 또 침대에 있더래. 그래서 놀라서 깨우려다가 옆에 아빠도 있는 걸 보고 주말인 걸 깨달았대. 그래서 안심했다고. 무의식 중에 엄마를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지.


중학교보다 등교 시간도 빨라졌는데, 선도부까지 하느라 다른 아이들보다 더 일찍 등교해. 여기엔 사연이 있어. 학교에서 봉사 시간을 30시간이나 인정해 주는 활동을 모집했대. 그래서 개꿀이라고 생각하고 냉큼 이름을 적었는데, 이상하게 다른 애들은 이름을 적지 않더래. 알고 보니 그게 선도부였다고! 덕분에 아침마다 20분씩 교문 앞에서 캠페인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 언제 구경 한번 가야겠어.


만우절에 동생이 모의고사 1등급 받았다고 거짓말했었잖아. 동생이 몇 점을 받든 상관없을 줄 알았는데, 기분이 엄청 좋았다니! 역시 오빠! 같이 있을 땐 앙숙이어도 가족은 한 편인가 봐.


며칠 전에 찰리 맥커시의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라는 책을 읽었어. 작가는 우정에 관한 책이라는데, 엄마는 이 부분에서 너희 생각이 나더라.


“우린 내일 일을 몰라.” 말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게 있다면 그건 지금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거야.”

“먹구름이 몰려오면……. ……그래도 계속 가는 거야.”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가 닥쳐오면 ……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랑하는 것에 집중해.”

“이 폭풍우도 지나갈 거야.”


- 찰리 맥커시의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중에서


먹구름 속에 있을 때, 엄마는 너희 눈 속에 있는 무지개를 봤어. 작지만 선명하게 웃고 있는 무지개.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 너희에게 집중했기에 폭풍우에 시선을 뺏기지 않을 수 있었어.


지난 주말에는 원주 할머니께서 손질한 인삼과 채소, 직접 담그신 된장과 청국장을 보내주셨어. 그리고 오늘은 수원 할머니께서 열무김치, 멸치볶음, 과일을 한 보따리 보내셨네. 힘드신데 뭘 이렇게 많이 보내셨냐고 하면 늘 이렇게 말씀하셔.


“뭐 지지부지한 게 먹을 것도 읎어. 축 처져 다 죽어가다가도 새끼들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나. 에미는 원래 그런 겨.”


다음 주에 휴가 오면 같이 맛있게 먹자. 네가 잘 먹으면 할머니들께서 최고로 기뻐하실 거야.


2025년 4월 10일 목요일

사랑하는 엄마가


PS. 이제 엄마가 무지개가 되어줄 차례야.


<답장>


동생 선도부하는구나 �

엄마가 나에게 무지개이기에 지금 이렇게 공부에만 시선집중 할 수 있는것 아니겠습니꽈 지금처럼 쭉 무지개로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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