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에게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참 좋더라. 그래서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가볍게 집을 나왔어. 그런데 버스가 곧 도착이어서 냅다 뛰었지. 그러다 철퍼덕 넘어졌어. 중거리 육상 선수의 출발 동작에서 길바닥에 대(大) 자로 뻗는데 0.68초 정도 걸린 것 같아. 그런데 그 순간이 16컷짜리 만화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해.
오른발이 느슨해진 왼쪽 운동화 끈에 걸렸어. 그래서 두 발이 비스듬히 하나로 묶여 몸통이 우상향을 그리며 날아올랐어. 하지만 비상은 짧고, 부상은 컸지. 금세 중심을 잃고 왼 무릎과 왼쪽 팔꿈치로 낙하했어. 바지가 찢어질 정도로 충격이 컸지. 그런데 떨어지는 순간에도 생각했어.
‘버스! 버스! 버스를 타야 해! 이번에 놓치면 21분이야. 그러면 지각이야!’
날렵하면서도 무게를 분산해 압력을 낮춘 과학적인 착지 덕분인지 관절은 멀쩡했어. 빠르게 되감기 하듯 벌떡 일어나 다시 뛰었지. 그리고 여유 있게 탑승했어. 운동화 끈을 다시 동여매려는데 바지에 구멍이 났더라. 교실에서 바짓단을 걷어 올리니 백 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의 벌건 상처가 보였어. 소매도 팔뚝까지 걷으니 오백 원짜리 빨갛게 피맺힌 동전이 드러났지.
연고랑 반창고를 꺼내는데 마침 옆 반 선생님이 들어왔어. 보자마자 엄마는 우는 소리를 냈지. 이러저러해서 이 모양이 됐다고. 그러니까 아주 아프겠다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밴드를 붙여주셨어. 혼자서도 할 수 있었지만, 왠지 마음이 놓이더라. 그 순간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나 봐. 지금 생각하면 민망해. 그 선생님은 엄마보다 스무 살 정도 어리거든. 엄마뻘 되는데 아기처럼 엄살을 부린 것이니. 다음에 맛있는 것 사줘야겠어.
어젠 이전에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께 부재중 전화가 왔더라. 확인하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었지. 약간 숨이 찬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어. 조금 전에 놀라고 당황스러운 일이 생겨 가슴이 두근거렸대. 그래서 누구에게든 말해야 했다고. 그때 엄마가 떠올랐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하셨어. 그분의 평소 목소리를 확인하고 안심하며 통화를 마쳤어.
어른들도 쓰리고 눈물 날 때가 있어. 그럴 때 곁을 지켜주는 이는 소중해. 시인 서택준은 타인의 상처를 이렇게 위로했어.
<강물이 우는 방법>
서택준
네가 우는 것은 내게 어떤 폭풍우보다 소란한 일
잔잔한 강마저 수많은 모랫돌에 물결이 찢기고 아무는데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찢기고 다시 아물까.
너의 울음을 멎게 할 순 없지만 우리 같이 흐르자.
머지않았어, 저기 앞이
바로 바다야.
울지 마, 곧 바다야.
바다라는 목적지를 잊지 않고 강물이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덕분이지. ‘나’와 ‘너’가 ‘우리’로 함께 흐를 때, 고통 속에서도 오래 뻗어갈 수 있어.
이제 입소한 지 두 달이네. 너와 떨어져 있지만, 엄마에게는 최고 사양의 블루투스 이어폰이 내장돼 있단다. 주 성능은 너의 한숨과 신음 감지! 나만 있냐고? 아니, 너한테도 있어. 어디에 있냐고? 윗도리를 들춰봐. 그래, 거기. 우리는 배꼽이라고 부르지만, 자세히 봐. 입술을 오므린 모양이잖아. 그게 사실은 입이었어. 엄마에게만 말하는 입. 그 입은 네 온몸과 마음을 모두 모아 엄마에게 전달해. 그래서 몸의 정중앙에 박혀 있는 거야. 처음엔 유선이었는데 무선으로 변신했어. 진짜야. 그러니 언제든 말만 해!
2025년 4월 16일 수요일
사랑하는 엄마가
PS. 아! 들린다, 들려. 김치 두루치기 먹고 싶다고? 알았어, 모레 휴가 때 해 놓을게!
<답장>
김치두루치기 좋다! 오늘 난 4월 모의고사쳤어. 결과는 낼 가서 말해줄게. 설렌다 숨이 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