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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10

by 철부지곰


사랑하는 아들에게


어제는 비가 종일 내리더니, 오늘은 하늘빛이 바닷물처럼 푸르고, 햇살이 눈 부시네. 휴가 마치고 학원으로 복귀하는 네 마음도 흐렸다 맑아졌을 것 같아. 엄마도 그저께 퇴근하고 빈방을 보니 울적했는데, 이제 나아졌어.


한 달 만에 집에 온 네가 반갑기는 했는데, 첫 번째만큼 눈물 나게 설레지는 않더라. 걱정보다는 안심돼서 그랬나 봐. 첫 아이였던 네가 엄마에게 가장 벅찬 감동을 줬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감정이지.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날마다 새로운 날이지. 아침마다 따끈한 물을 마시면서 하늘을 마주해. 그리고 혈관을 타고 온기가 퍼지면서 몸속의 모든 구멍에 수분이 차오르면서 열리는 감각에 집중해. 동시에 어제와 다른 하늘을 보면서 새로운 오늘을 인식하지. 감각적으로 오늘을 시작하는 일종의 의식이야.


네가 그랬지. 4월이 재수생에게 힘든 시기라고. 아마 첫 마음이 조금은 느슨해졌기 때문일 거야. 매일 의식적으로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긴 시간을 버티기 힘들지. 분명 오늘은 어제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면 첫 마음처럼 새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래서 늘 맑은 것보다는 비도 오고, 눈도 오는 궂은 날씨가 필요한 것 같아.


너도 매일의 새 마음을 인식하는 너만의 의식을 정해봐. 아주 간단하고 일상적인 행동도 좋아.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미국 무용계의 여왕’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무용가 트와일라 타프는 정상에 오른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어.


“아침 5시 반, 택시의 문을 여는 순간입니다.”


그녀가 50년간 매일 해온 일, 택시를 타서 문을 여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자기 몸에 발동을 걸어 영혼을 깨어나게 하는 의식이었던 것이지. 뜨거운 물이 오랫동안 열기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 매일 커피포트의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시동을 걸어야 해.


너의 첫 마음을 응원하며, 정채봉 시인의 시 '첫 마음'의 한 부분을 들려줄게.


<첫 마음>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

언제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2025년 4월 23일 수요일

사랑하는 엄마가


PS. 엄마의 다친 무릎과 팔꿈치는 이제 많이 나았어. 밴드를 붙여도 진물이 흘러 불편했는데, 이제 옷이 젖을 정도는 아니야. 매일의 변화가 정말 피부로 느껴져. 덕분에 무릎을 구부릴 수 있고, 씻을 수 있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도 축구할 때 조심해!


<답장>


좋은글 고마워요

난 방금 처음으로 보건실에서 한시간 자다왔어 몸살이 어제부터 조금씩 있어서 공부를 할라해도 집중이 안되서 참다가 다녀왔어. 심한건 아니라서 잘 자다보면 낫겠지 일단 타이레널 먹음. 이따가 레이커스 경기 결과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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