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에게
이제 5월이구나! 지난주에 휴가 나왔을 때 재수생에게 4월은 힘들다고 했는데, 이제는 좀 괜찮니? 그래도 4월 모의고사에서 성적이 올랐다니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네! 네가 기뻐하는 모습 보니 엄마도 기분이 좋았어!
네가 재수 시작할 때, 엄마가 "결과를 떠나 최선을 다하면 된다, 재수 기간이 네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면 족하다",라고 했었잖아. 그런데 막상 점수가 오르고, 원하는 목표에 가까워지니 신나더라. 다음 달 학원비와 교재비 결제하는 게 아깝지 않았어.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해.
선택 과목을 두 개나 바꿔서 내심 걱정했었어. 그런데 이번 성적 보니 방향을 잘 잡은 것 같아. 이제 하던 대로 나아가면 되겠어.
이번 휴가 때 같이 영화 ‘승부’를 봤잖아. 엄마는 내내 네 생각을 했어. 어린 이창호는 고향을 떠나 스승 조훈현의 집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에서 가족과 헤어지지. 그 장면에서 처음 기숙 학원에 들여보내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났어. 그런데 벌써 두 달이 지났네.
영화 ‘승부’에서 스승 조훈현은 긴 대국 시간을 홀로 버텨야 하는 이창호에게 이렇게 조언해.
“평정심을 잃는 순간 바둑은 거기서 끝이야.”
그리고 마음이 흔들리면 익숙하고 편안했던 기억을 떠올리라고 덧붙여. 이창호는 어릴 적 머물렀던 아버지의 시계방에 앉아 있는 자신을 생각하며 대국에 집중할 수 있었지.
세계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던 36세의 조훈현은 14세의 어린 이창호에게 패한 후 충격에 휩싸였어. 하지만 절치부심한 끝에 5년 뒤 다시 승리를 거두지. 그리고 70세가 넘은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바둑계 살아있는 전설로 존재해. 그는 저서 「고수의 생각법」에서 이렇게 말했어.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 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 준다.”
바둑의 신, 조훈현도 질 때가 있었겠지. 하지만 실패에 주저앉지 않고 다시 한 수 한 수 그려보며 각오를 다졌어. 이겼을 때도 자만과 흥분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강화할 부분을 곱씹으며 겸손하고 차분하게 검토했다니. 역시 고수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한 번 본 시험지는 또 들여다보기 싫잖아. 특히 망친 시험지는 구겨 버리곤 했었는데, 엄마도 반성이 되더라.
앞으로 여러 차례의 시험을 치를 텐데, 바둑 고수의 비법을 본받아 수능 고수로 거듭나길 바란다.
2025년 5월 5일 월요일
사랑하는 엄마가
PS. 네게 가장 편안한 기억은 무엇일까? 수능 날 필요할지도 모르니, 지금 미리 생각해 둬.
<답장>
편안한 기억이라.... 고민되네 생각해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