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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12

by 철부지곰

사랑하는 아들에게


잘 지내니?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와서 쌀쌀하네.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렴. 며칠 전에는 날이 좋아 한강을 달렸어. 너를 낳고 나서 처음이었어. 그래서 느리게 조깅했어. 처음에는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하다 보니 8km 정도를 뛰었어. 한번 발동이 걸리니 계속 움직이게 되더라. 2할의 강바람과 8할의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덕분이었어.


러너스 하이는 달릴 때 처음에는 숨이 차고 힘들다가도 사점(dead point)을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이 가뿐해지고 희열을 느끼는 현상이야. 장시간의 유산소 운동을 할 때 나타나는데, 러너스 하이에 도달하면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endorphin)이 분비된다니 참 신기해.


그런데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남을 도울 때도 일어난다고 해. 요즘 도덕 시간에 봉사에 대해 수업하는데, ‘헬퍼스 하이(Helper’s High)’에 대해 이야기했어. 미국의 내과 의사 앨런 룩스는 남을 도울 때 신체적, 정서적 포만감을 느끼는 효과를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에 빗대어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고 칭했어. 실제로 평소에 봉사하는 사람은 일반인보다 건강할 확률이 10배라고 해. 선행을 하면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줄고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가 감소해 면역력을 높이기 때문이래. 엔도르핀도 3배 이상 증가한다니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이라는 말이 맞네.


엄마가 작년에 다문화 대안학교에서 봉사했었잖아. 그런데 그때 수업한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었어. 몸이 아팠었는데도, 활짝 웃고 있었기 때문이지. 사진 속 엄마는 아무 걱정도 근심도 없어 보였어. 올해에는 부천에 있는 지역 청소년 센터에 가고 있어. 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지. 퇴근하고 먼 길을 가야 해서 갈 때는 에너지 고갈 상태야. 그런데 신기하게도 돌아올 때는 날아갈 듯 신나더라고. ‘헬퍼스 하이(Helper’s High)’ 덕분인가 봐. 음엔 함께 시장체험을 가기로 했는데 벌써 기대돼.


지금 너도 수능이라는 도착지를 향해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중이네. 지금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에 도달했을까? 며칠 전에 통화할 때 드냐고 물었었는데 그냥 잘 지낸다고 하는 것을 보니 궤도에 오른 것 같아. 엔도르핀이 팍팍 나와서 지치지 않고, 건강하게 완주하면 좋겠다. 네 목표를 이룬 후에는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도 느껴보길. 나중에 봉사하면서 같이 오래오래 행복해지자.


2025년 5월 9일 금요일

사랑하는 엄마가


PS. 어제 어버이날에 못 받은 카네이션은 내년에 제대로 받겠다. 엄마를 돕는 것이 너를 돕는 것이란다!


<답장>


러너스 하이는 아직 아닌듯. 힘드냐고 물어볼때는 몇주 혹은 몇달을 돌아보는데 그땐 이미 힘든 기억들이 보람으로 승화돼서 힘들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아. 사실 하루 혹은 한시간 단위로 힘드냐 물어본다면 계속 죽을꺼 같다고 할거같거든 ㅋㅋㅋㅋ. 아마 수능날까지 러너스 하이에는 도달하기 힘들겠지만 그게 오히려 맞다고 봐. 반복적인 공부보단 계속 어려운걸 하려고 부딪쳐야 실력이 오른대:)


Ps. 카네이션은 진짜 꽃으로 주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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