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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14

by 철부지곰

사랑하는 아들에게

휴가 보내고 나면 더 피곤할 텐데 잘 지내고 있니? 엄마는 요즘 잠을 늦게 자서 피로해. 네 동생 공부를 봐주고 있거든. 늘 알아서 하겠다고 하더니 통지표를 받고 충격받았나 봐. 원하면 오빠처럼 알려준다고 하니 엄마가 힘들 거라고 걱정하더라. 그때보다 더 늙어서 안 될 거라고. 네가 고등학생일 때에는 시험 기간이 정말 괴로웠어. 새벽 서너 시까지 옆에 있어 달라고 했었으니까. 어느 날, 옆반 선생님이 살며시 다가와 이렇게 묻기도 했지.


“김 선생님, 집에 우환이 있어요?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이런 오해를 살 정도였으니. 네 시험 기간이 끝나면 엄마가 더 기뻤어. 지금은 몸이 더 노쇠해졌으니 두렵기도 해. 그래도 해주겠다고 했어. 자식이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 주는 것은 부모로서 의무이자 특권이니까.


어제는 콘서트에 가려고 경희대에 갔었어. 잠이 부족해서 갈 땐 몸이 무거웠는데, 지하철에서 내려 풋풋한 대학생을 보니 밝은 에너지가 느껴졌어. 캠퍼스에서 조별 과제를 하는 대학생 틈에 앉아 시원한 음료도 마셨어. 그런데 교정이 넓어서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후문이 어디냐고 물어봤지.


“이 계단을 따라 쭉 올라가면 노천극장이 나올 거예요. 노천극장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면 좁은 골목이 나오는데 사다리 같은 것이 보이면 거기가 정경대학이고... 그 아래로 내려가면 후문인데... 제가 같이 가 드릴게요.”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보니 멀리서 온 학생 같았어. 그 학생도 처음엔 엄청 헤맸겠지. 우리 눈빛이 노천극장까지는 따라오는 것 같았는데 정경대학에서 길을 잃었었나 봐. 하지만 네 엄마가 그 정도는 아니잖니? 계단이 백 개는 족히 돼 보였는데 거길 같이 올라가 주겠다고 하다니. 순수한 선의가 고마웠지만 사양했지.


콘서트는 7시 반에 시작했어. 가수 윤하와 밴드 데이브레이크가 나왔어. 응원봉을 흔들며 신나게 즐겼지. 늦게까지 버틸 수 있는지 걱정했었는데 기우였어. 일어나서 노래도 따라 부르고 앙코르도 간절하게 외쳤지. 다 끝나니 10시가 넘었더라.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데 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어. 같이 공부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냐고. 집에 도착해 응원봉을 내려놓고 책을 폈지.


아, 이제 피곤이 몰려온다. 오른쪽 뒷목의 덜미가 뻐근해. 어깨까지 무지근한 걸 보니 응원봉을 세게 흔든 후유증인가 봐. 아파도 할 일은 해야지! 그런데 어제 들은 가수 윤하의 노래 ‘포인트 니모(Point Nemo)’가 맴도네. 포인트 니모(Point Nemo)는 지구상의 어떤 땅에서도 제일 먼바다 위의 지점이래. 가장 가까운 마을로 가려면 2,688km를 항해해야 하는 곳으로 수심은 약 3,500m. 인간이 고립될 수 있는 가장 외딴 장소로 고요한 바다에서도 가장 고요한 곳이지. 네가 지금 있는 곳이 심리적으로는 포인트 니모(Point Nemo) 일지도 몰라. 곡의 가사에 이런 부분이 있어.


마음을 좀 편히 먹어도 될걸

지금 아무도 없잖아

너의 나와 하늘과 바다 그뿐인걸

……

석양이 지는 하늘에 물들어

밤을 기다리는 낮

다시 태어나도 종착할 여기 포인트 니모에서

멀어져 가는 그때의 나와 그 곁에 너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


손에 쥐고 싶은 것

이뤄내고 싶은 것

그게 전부는 아냐


잊지 말아야 할 건

소중히 여겨야 할 건

사라지는 모든 것들과 사랑


세상의 기쁨을 이젠 모조리 다 알아봤으면 해

지나는 길목을 샅샅이 살피며 걸어갔으면 해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는 그 어느 날엔

소중했다 여겨주기를

사랑했다 확신하기를


지금은 그곳이 아마득하겠지만, 네가 어디에서든 소중한 기쁨과 확신에 찬 사랑을 느끼길 바란다.


2025년 5월 29일 목요일

사랑하는 엄마가


PS. 어제 콘서트에서 관객 모두 일어나 환호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서로의 팔로 허리를 감싼 아들과 엄마가 보이더라. 우리 아들 같았으면 부끄러워했을 텐데, 부러웠어. 푯값은 내가 낼 테니 다음에 같이 가자!


<답장>


아마 아들과 엄마가 아니지 않을까...? ㅋㅋㅋㅋ 나도 콘서트 가고 싶어

Ps. 나 삭발 고민 중이야 어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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