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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16

by 철부지곰

사랑하는 아들에게


날이 무덥네. 삭발하니 시원하니? 땡볕에 있으면 오히려 더 뜨거울 것 같네. 머리카락이 갈라져 고민이라고 해서 신경 쓰여 자른 줄 알았는데, 너와 통화하고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어. 힘들어서 기숙 학원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퇴소를 원천 봉쇄하려고 삭발했다니. 6모를 잘 봐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탈출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줄은 몰랐어. 마음을 다잡기 위해 민머리를 선택한 너의 결단이 존경스럽다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초심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워. 엄마는 그동안 써온 글을 출판사에 투고했어. 좋아하는 책 몇 권을 꺼내 맨 뒷장에 적힌 메일 주소로 원고를 보냈지.


‘아마 내 글을 보자마자 깜짝 놀랄 것이다! 편집자가 당장 책을 내자고 연락하겠지?’라는 상상을 하며 전송했지. 며칠 후에 답장이 왔어.


“저희 출판사에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원하던 작품이네요. 당장 계약하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다음과 같았어.


“소중한 원고의 검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저희 출판사의 방향과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출간은 어렵겠습니다. 더 잘 맞는 출판사와 좋은 책을 출간하시길 바랍니다.”


그 후로 출판사를 가리지 않고 여러 곳에 메일을 보냈지. 무려 187군데에. 42개의 출판사로부터 회신을 받았어. 모두 비슷한 이유로 출간을 거절하는 메일이었지. 19개는 발송 실패, ‘읽지 않음’인 메일은 35개. 아마 한때 출판을 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겠지. 출판계의 어려운 상황도 이해됐어.


지금은 약간 기세가 꺾인 상태야. ‘전문가의 결정에는 이유가 있겠지, 부족한 역량에 비해 과한 기대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지인들은 좋은 원고인데 아깝다고 하는데, 그건 그저 듣기 좋은 격려의 말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고. 서점 매대에 놓인 빳빳하게 빛나는 표지를 들추어 읽으면 수많은 작가의 명문장에 감동과 질투, 감탄과 움츠러드는 마음이 동시에 들어.


하지만 누구 엄마인데! 포기할 수는 없지! 다시 본질로 돌아가기로 했어. 중국의 문학가이자 역사학자인 구양수(歐陽脩)는 그의 책 〈취옹정기(醉翁亭記)〉에서 명문가로서의 비법을 남겼어. 바로 다작(多讀), 다독(多作), 다상량(多商量)!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라는 의미지.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성공적인 것이라는 진리를 되새기며 다시 각오를 다잡아보려고!


머리카락이 너무 짧아서 우울해하던데.... 지금 머리카락 길이가 3mm인데 월평균 1cm씩 자라니 수능이 끝나도 총길이가 6~7cm 정도 될 것이라고. 생각보다 짧아서 엄마도 놀라긴 했어. 엄마는 배우 정해인이 드라마에서 밤톨처럼 깎아 단정하게 손질한 모습이 멋지던데. 너도 대학생 새내기의 풋풋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느껴질 듯!


학생들의 신청곡을 청소할 때나 자투리 시간에 틀어주는데, 어제는 유튜버 과나의 ‘대머리여서 좋은 점 30가지’를 들었어. 네 생각이 나서 집중해서 들었지.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어.


뭘 들고 있든지

꽤 하는 녀석 같아


웅크리고 집중하면

장인 같아


팔짱 끼고 노려보면

대가 같아

……

안 감아 닦아

시간을 아껴


머리 스타일 고민할

에너지를 아껴


동그랗게 빛나는

햇님 달님처럼


너의 마음 비춰주는

작은 웃음이 될게


너의 상상이 춤추는

작은 동산이 될게


30가지 장점 중에 몇 가지만 적었어. 가사처럼 대머리는 뭘 하든지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로 보이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아. 머리 스타일에 걸맞은 내공을 다지는 하루하루가 되길. 모자 착용 금지여서 새로 산 모자도 못 쓴다며. 어차피 깎아버린 것 당당하게 빛나길! 머리카락이 있든 없든, 넌 엄마의 태양이란다!


2025년 6월 12일 목요일

사랑하는 엄마가


PS. 이 노래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지. 지금 흘리는 너의 땀방울이 5개월 뒤 기쁨의 눈물로 거듭나길! 엄마도 다시 도전!


<답장>


엄마 나 힘들어. 주말에 나가서 쉬고 싶어. 선생님께 가족행사 있다고 하고 토요일에 데리러 와 줘. 허락 잘 안 해주니까 잘 말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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