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에게
긴 휴가를 보내고 너도 엄마도 다시 일상이네. 엄마는 너와 함께 야구장에 가서 좋았어. 무더웠지만 양 팀의 뜨거운 응원이 특히 인상적이었지. 자리를 잘못 잡아서 상대 팀인 두산에 온통 둘러싸여 처음엔 난감했어. 다들 조용할 때 삼성을 외치는 것도 눈치 보이고. 주변 함성은 너무 시끄럽고. 그래도 맞은편에 앉은 우리 팀 모습이 광각으로 잘 보이긴 하더라. 파란 물결이 절도 있고 멋졌어.
겨우 1점 차여서 역전을 기대했는데, 8회 말에 상대 팀의 적시타로 우리 팀이 5대 0으로 졌잖아. 그 순간 잠실이 쓸려갈 듯 환호성이 대단했지. 그렇게 모두가 일어나 얼싸안고 기뻐할 때 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 있었지. 그리고 이렇게 말했잖아.
“나 빼고 모두 시험을 잘 본 것 같은 기분이야.”
그 모습이 작년에 수능을 보고 집에 왔을 때 네 표정과 비슷하더라. 시험이 쉬워서 친구들은 잘 봤다고 좋아했는데, 넌 아니었으니.
삼성 성적 말고 네 성적이나 신경 쓰라고 했는데, 6월 모의고사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게 됐다니 대견하다! 사실 기숙학원 등록금이 상당하잖아. 처음 기숙학원에 갔을 때, 돈도 많이 드는데 공부하게 해 줘서 고맙다던 네 말이 뭉클했었어. 장학금은 그동안 네가 얼마나 자신을 절제하면서 집중해 왔는지 보여주는 증거야. 정말 자랑스럽다. 장학금을 받든 안 받든 네가 열심히 공부하기만 하면 엄마는 행복하다고 했지만, 그래도 어깨춤이 절로 나더라.
하지만 공짜라고 편한 마음먹지 않게 기도해 달라는 너의 메시지에 아차 싶었어.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장학금은 ‘공짜 혜택’이 아니야. 이 학생의 비전을 보고 투자하겠다는 학원의 의지와 더 나은 결과를 바란다는 기대의 표시지.
엄마도 고등학생 때 노량진에 있는 입시학원을 무료로 다닌 적이 있었어. 따로 차편까지 제공해 줘서 수원에서 서울까지 편하게 이동했지. 학교에서 학원 봉고차를 탈 때,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어. 하지만 부담도 따랐지. 시험 결과 또한 관심의 대상이었으니까. 시험을 못 봐도 학원비를 토해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거운 투명 왕관을 쓴 기분이었어. 장학생 선발은 아이돌 오디션 또는 축구선수의 이적료 같은 것이지.
“당신의 잠재 능력을 보고 우리 소속사(구단)에서 투자하겠습니다!”
그러니 로또 당첨처럼 마냥 기분 좋은 공짜가 아니야. 공짜 기회를 얼마나 값지게 만들지는 너의 태도와 노력에 달려있어. 미국의 대통령 케네디는 1963년 밴더빌트대학교(Vanderbilt Univ.) 특별 강연에서 이렇게 강조했어.
“Our privileges can be no greater than our obligations.”
특권이 커지면 의무도 커진다는 뜻이지. 그러니 가벼이 여기지 말고, 돈 내고 다녔을 때처럼, 아니 그때보다 더 책임감을 느끼고 공부하길 바라. 이제 우리 집만의 수험생이 아니라, 수천 명을 대표하는 00 학원의 대표선수니까.
이제 수능이 반도 안 남았는데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네가 이렇게 말했지.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
아주 좋은 자세야. 무엇에 집중할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게 최고야. 사람의 생각은 핑곗거리로 흐르게 마련이거든. 네 마음이 나태해지지 않도록 기도할게.
2025년 7월 8일 화요일
사랑하는 엄마가
PS. 굳은 학원비는 따로 잘 모아 놓을게. 쌓이는 돈만큼 실력도 쌓이길!
<답장>
마음 다잡기에 좋은 글이네ㅎㅎ. 학원비 모아서 유럽여행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