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에게
1박 2일의 짧은 휴가를 보내고 잘 지내고 있니? 할머니 칠순 잔치가 있다고 선생님께 거짓말해서 아들의 땡땡이 공범이 됐네. 그만큼 꺼내달라는 너의 메시지가 다급해 보였어. 우리 아들이 여태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없었는데, 얼마나 힘들면 이럴까, 하고 생각했지. 온 가족이 널 맞이하러 이천까지 갔으니, 가족 행사가 맞긴 하네.
평소 휴가보다 짧았지만, 아들이 술도 안 마시고 집에 있어서 엄마는 더 좋았어. 너와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고 목청껏 노래도 부르니 엄마도 스트레스가 풀렸어. 네 동생도 이번에 오빠가 와서 좋았대. 확실히 삭발하니까 샤워 시간이 짧아졌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네 머리를 하도 만져서 모르던 형들과도 친해졌다며. 엄마가 만져보니 감촉이 부드러워서 자꾸 손이 가더라. 대머리가 좋은 31번째 이유로 해도 되겠어. 엄마도 어제 머리카락을 자르니 훨씬 가볍고 시원해. 벌써 1cm나 자랐던데, 몇 달 지나면 제모습을 찾겠어.
네 동생이 오빠가 국어 공부 열심히 하라고 조언했다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어. 그래서 네게 국어 학원에 다녀야 하는지 물었지. 그런데 넌 이렇게 답했어.
‘문학책은 그냥 사서 억지로라도 읽으면 좋을 듯. 구운몽이나 춘향전 같은 것 읽으라 해. 수업 듣는 건 오히려 재미없어서 하기 싫어질 가능성이 높음. 독서는 예비 매삼비 이런 거 풀어보라 해.’
네 동생에게 얘기해 줬더니 오빠가 학습 컨설턴트 같다고 하더라. 자세히 알려줬다고 좋아했어. 오빠를 꽤 신뢰하는 것 같아. 전문가의 의견을 고려해서 국어 학원은 안 다니기로 했어. 그 대신 엄마랑 공부하겠다고 하는데, 꾸준히 잘해봐야지.
너를 만나기 전에는 걱정했었는데, 꾸준한 운동으로 다져진 허벅지 근육을 보고 마음이 놓였어. 엄마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을 전적으로 신뢰해. 운동을 하면 몸도 건강해지고, 정신도 또렷해지거든. 매일 꾸준히 팔 굽혀 펴기를 2개씩 할 수 있는 사람은 무슨 꿈이든 이룰 수 있대. 제한된 공간에서도 꾸준히 몸을 움직이는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며칠 전, 목사님께서 목장 심방을 오셨었어. 많은 분께서 자녀 문제로 고민 중이셨거든. 그래서 목사님께 어머니가 어떻게 키우셨는지 여쭈었지. 목사님은 학창 시절에 어머니께서 편찮으셔서 자신을 거의 방치하셨다고 하셨어. 그래서 나중에 커서 이야기하셨대. 사람들이 엄마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을 알면 놀란다고. 그런데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대.
“그땐 엄마가 몸과 마음이 너무 아팠어. 그래서 널 돌볼 기운이 없었어. 엄마는 너무 미안하고 속상해서 울면서 기도했어. 아들을 위해 매일 했어.”
아들을 훌륭히 키워낸 비결은 어머니의 기도였던 것이지. 그 말씀을 들으니 네 생각이 났어. 엄마도 몸이 부실하잖아. 네가 어릴 때 허리가 아파서 누워만 있던 때도 있었고. 팔에 통증이 심해서 장바구니도 네가 다 들어줬었잖아. 목사님 어머니와 아프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기도는 게을리하고 있어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 그래서 네가 오면 기도해 주기로 마음먹었지. 그래서 아침에 누워있던 네 머리맡에서 기도했는데 기억나니? 아마 잠결이라 못 들었을 수도 있으니 다시 적어줄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제게 사랑스러운 아들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아들이 힘든 재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이 피곤하고 쓰러질 때 주님을 찾게 해 주세요.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어 독수리처럼 날아올라, 다시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가 불안하거나 두려울 때, 주님 안에서 용기와 희망을 찾게 해 주세요.
재수 과정을 통해 주님과 더욱 인격적으로 만나고 가까워지길 바랍니다.
공부하는 기회를 기쁜 마음으로 누리며, 주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심을 깨닫게 해 주세요.
아들의 진로와 삶의 전부를 이끌어 주시는 것을 믿으며,
제가 아이의 짐을 나눌 수 있도록 건강과 지혜 주세요.
자녀 삼아주심을 감사드리며,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6월 19일 목요일
사랑하는 엄마가
PS. 힘들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언제든 얘기해. 거짓말 미리 생각해 둬야겠어ㅎㅎ 재수가 끝나도 고단하고 피곤할 때마다 와서 편하게 놀다 가면 좋겠어. 나중에 네가 독립해도 네 방은 꼭 마련해 둘게.
<답장>
나도 평소 휴가보다 집에 박혀있으니깐 더 편하고 좋았어ㅎㅎ. 동생한테 인정받는 내 친구가 은근히 부러웠는데 무려 그 녀석이 나를 신뢰한다니 뿌듯하고만.
내가 독립해도 방을 마련해 준다니 엄마답지 않게 사치스럽네ㅋㅋㅋ. 정말 그래준다면 너무 좋겠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