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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7

by 철부지곰

사랑하는 아들에게


어제는 만우절이었잖아. 예전에는 엄마가 만우절에 진심이었지. 학생들에게 외국에 있는 학교로 발령이 나서 떠나야 한다고 거짓말한 적도 있었어. 긴가민가하는 아이들에게 가정통신문까지 만들어서 나눠주니까 진짜로 믿더라. 우는 아이들도 있었어. 들킬까 봐 뒤돌아 웃었는데, 아이들은 들썩이는 어깨를 보고 선생님도 운다고 생각했었지. 졸업하고 나서도 그때 기억이 난다고 이야기하더라. 추억 만들어 주느라 엄마가 고생했지.


그런데 한 아이가 담임선생님이 떠난다고 울면서 부모님께 전화한 적이 있었어. 그 후로 그만뒀어. 역시 재미있을수록 위험해. 이제는 가벼운 거짓말로 보내.


“얘들아, 오늘 급식에 치킨, 피자, 돈가스 나온대.”

“진짜요?”

“아니, 만우절”


어제는 요정도. 양호하지? 이제 엄마도 철들었나 봐. 아이들은 담임인 내게는 복수를 못 하고, 교과 시간에 만우절 이벤트를 위한 계획을 세웠어. 자리를 바꾸고, 다른 교과서를 펴는 귀여운 수준의 장난이었지. 물론 나도 모른척하며 아이들을 도와줬어. 그렇게 우리끼리 눈짓을 하며 다른 선생님을 속이니 재밌더라. 만우절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학생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기분 좋은 장난이 통할 때 즐거워. 그만큼 서로 마음이 촘촘하면서도 나슨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니까.


네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는다고 해서 엄마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 있어. 책에 노인과 소년의 이런 대화가 나와.


“먹을 건 있나요?” 소년이 물었다.

“노란 쌀밥이랑 생선 요리가 한 냄비 있단다. 좀 먹겠니?”

“아뇨, 집에 가서 먹을래요. 불 좀 피워드릴까요?”

“아니다. 나중에 내가 피우마. 그냥 찬밥을 먹어도 되고.”

“투망 가져가도 돼요?”

“물론이지.”

사실 투망은 없었다. 소년은 그걸 언제 팔았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 꾸며낸 대화를 매일 되풀이했다. 노란 쌀밥과 생선이 든 냄비도 없었고, 이것 역시 소년은 알고 있었다.

- <노인과 바다> 중에서


노인과 소년은 서로 믿고 사랑해. 그래서 매일 농담을 주고받는 것이지. 엄마가 바라는 사제관계야. 깊은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따듯하고 유쾌한 장난이 자연스러운 사이. 물론 너와도 그렇게 지내고 싶어. 아무리 심각하고 괴로워도 가볍게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유머의 힘이지. 네가 유머를 잃은 순간에 엄마가 네 곁에 있길 바라.


너도 어릴 땐 엄마 장난에 울기도 했었는데, 이젠 꽤 능숙해졌더라. 만우절인데 그냥 지나가면 서운하잖아. 그래서 동생은 모의고사 1등급을 받고, 아빠는 임원으로 승진했다고 어제 거짓말했는데, 모르는 여자애한테 쪽지 받았다고 응수하다니. 역시 그동안 훈련한 보람이 있네!

2025년 4월 2일 수요일 사랑하는 엄마가


PS. 지난번 편지에 엄마와 두오모 성당에 가자고 물었는데 답이 없구나. 그래, 쪽지 준 여학생과 가렴. 누군지는 모르지만 둘 다 재수 대박 나길.


<답장>


사실 첨에 동생이 1등급 받았다니깐 잠깐 5초동안은 진짜인줄 알았어 ㅋㅋ 막상 동생이 1등급 받았다 생각하니깐 안그럴줄 알았는데 기분이 엄청 좋더라 ㅎㅎ

아빠 승진에서 거짓말인걸 바로 눈치챘지. 쪽지는 내가 딱히 거짓말칠게 없어서 짜내서 나온 생각이었어ㅋㅋㅋ

그래서 동생은 몇점이야?


Ps. 어제 느낀건데 기숙온 이후로 항상 양치할때마다 잇몸 구석구석이 헐어있어서 아팠거든. 그래서 잇몸을 보니까 엄마처럼 많이 내려앉아있어 보이더라. 유전적인거 같은데 병원가봐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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