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차박 1편
사랑하는 아들에게
엄마는 그저께 개학해서 힘차게 2학기를 시작했어! 방학이 보름 남짓으로 짧았지만, 휴가 나온 아들과 영화를 봐서 좋았어. 방학 동안 가족과 여행도 가고, 지인과 근교 나들이도 다녀왔지. 하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을 꼽으라면 처음으로 엄마 혼자 차박 다녀온 것!
차를 널찍한 SUV로 바꾸고 네 식구가 같이 은하수 보러 강릉 안반데기에 갔었지. 그게 벌써 4년 전이구나. 처음이자 마지막 차박이었네. 엄마는 차박용품도 사서 본격적으로 다니고 싶었는데, 네 아빠가 불편하고 귀찮은 것은 질색이어서 차크닉 정도에 만족했지. 그러다 문득 혼자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 가봐서 마땅치 않으면 게스트 하우스에 가는 대안을 염두에 두고.
목적지는 강원도 고성으로 정하고, 해수욕장 근처 차박지를 몇 군데 찾아뒀지. 혼자여서 두려웠지만 그래서 더 기대하며 출발했지. 고막 남친의 노래를 들으며 두 시간 반 정도 달리니 바다가 보였어. 차박 첫 번째 후보지인 고성 천진해변에는 화창한 날씨 덕분인지 사람이 정말 많더라. 바닷가에 즐비한 파라솔 아래 알록달록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 서핑하는 젊은이로 주차는커녕 바닷물에도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어.
한적한 곳을 찾아 북쪽으로 향했지.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며 좋은 자리를 물색했어. 가다가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면 아무 데나 차를 세우고 감상했지. 그런데 맑은 날씨가 차박에는 적이었어. 강한 햇볕으로 차 안은 바깥보다 훨씬 더웠기 때문이지. 아야진 해변을 여유롭게 거닐어도 봤지만, 끈적이는 땀에 달라붙은 모래가 차 안까지 따라왔어. 모기처럼 모래도 참 끈질기더라
그렇게 쏘다니니 배가 고팠어. 그래서 눈에 보이는 아무 식당에 들어갔지. 그런데 밥이 다 떨어졌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가려는데, 혼자 왔냐고 물으셨어. 밥 한 공기는 된다고 해서 자리에 앉았어. 역사적인 첫 메뉴로 뭘 먹을지 고르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더라. 1인분 주문이 가능한 게 딱 하나였거든. 불길한 마음에 근처 게스트 하우스를 검색하며 섭국을 먹었지.
뜨끈하고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다시 북으로 향했어. 여러 해수욕장을 거쳐 봉수대 해수욕장에 다다랐어. 깨끗한 화장실, 운영 중인 샤워장, 익숙한 편의점 그리고 파도 소리까지! 이곳은 완벽한 차박지였어! 게다가 근처 오토 캠핑장에는 가족 단위 휴가객이 있으니, 안전도 보장이었지. 기쁜 마음으로 주차 후, 2열과 3열을 평탄화하고 돗자리와 요가 매트를 깔았어. 이렇게 5성급 리조트보다 멋진(이때까지는 이렇게 생각했어.) 오션뷰의 아늑한 공간이 탄생했지. 게스트하우스 따위 플랜 B는 필요 없었어. 이제 성공적 차박지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지.
1. 에어컨 완비 식당에서 시원한 물회를 먹는다.
2. 샤워를 한다.
3. 편의점에서 달빛 아래 맥주를 마신다.
4. 음악을 들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기를 읽는다.
5. 낭만적이며 완벽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6. 내일 일출을 본다.
계획은 여기까지!
우선 물회! 물회! 물회가 정말 먹고 싶었어. 엄마가 평소 음식에 둔하잖아. 맛집에 줄 서는 것도 번거로워하고. 근데 이날은 편리와 타협하고 싶지 않았어. 횟집은 송지호해수욕장에 밀집해 있었어. 차와 거리는 1km. 걷기에는 좀 멀었지만, 물회만 먹을 수 있다면 기꺼이 갈 수 있었어! 후끈하게 데워진 습한 도로를 혼자 걸어갈 때, 시원한 에어컨을 상상하며 힘을 냈지.
그런데 어떻게 됐을까? 엄마는 물회를 먹었을까? 잠은 잘 잤을까?
내일 출근해야 해서 오늘은 여기까지!
2025년 8월 20일 수요일
사랑하는 엄마가
PS. 뒷이야기 궁금하다고 공부 안 하고 딴생각하면 안 된다.
어찌 됐든 이렇게 무사 귀환해서 글 쓰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답장>
그저께 모의고사 보기 전날 밤 잠들면서 가족이랑 갔던 여행들을 회상했었는데 차박이 왠진 모르겠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 마침 글에 차박 얘기가 있어서 신기하면서도 아련하고 그르네. 차 안에서 동생이 아이유 노래 듣던 거도 기억나고 엄마 아빠랑 별자리 앱 깔아서 베텔기우스 같은 별 찾았던 거도 기억났어.
뒷 이야기 궁금해 빨리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