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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Breasts Jul 12. 2024

5. 별은 내 가슴에 아닌 암은 내 가슴에.

part1-암은 내 가슴에...

내 오른쪽 가슴의 별, 별은 내 가슴에 아닌 암은 내 가슴에.



1997년,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겐 어쩌면 아득히 먼 옛날 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4050에게는 심리적으로 가까운 시간. 지금은 정말 별이 되어 버린 배우 최진실, 안재욱 주연의 “별은 내 가슴에는” 당시 한국을 드라마로 강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드라마의 제목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다.     

 

 “별은 내 가슴에...”      


당시의 나는 21살의 활짝 피기 시작한 여대생이었고 세상은 낭만적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았다. 그다지 큰 실패도 없었고, 큰 실연도 없었고 낮엔 친구들과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거나 포켓볼을 치러 다니고 남자 친구도 만나고 공부는 시험 때만 하는, 그냥 평범하고 게으르고 겉모습 꾸미기와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시하던 여대생이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도 그런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공과목을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고 도서관에 처박혀 스펙을 쌓지도 않았지만 겉모습 꾸미는 게 나쁜 것도 아닐 것이고 당시는 어렸으니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시하던 게 그 나이에 당연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순수했고 세상 물정 몰랐고 사랑과 나의 인생 또한 “별은 내 가슴에” 같은 드라마처럼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2023년 암이 내 가슴에 있다는 통보를 받은 후 나는 자꾸 “암은 내 가슴에”라는 짧은 문장이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별은 어디로 갔으며 암은 언제 내 가슴으로 들어왔을까?      


 인생은 아름다운 드라마도 아니었지만 그것은 나만의 일이 아니고 현실이므로 그 시절의 회한은 회한일 뿐이라고 생각해도 정말 피하고 싶었던 “암”이라는 것이 결국은 내게도 생겼다고 생각하니 나의 인생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흘러왔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한 직장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을 일했다. 퇴사 전까지 23년 6개월이니 한 곳에서 엉덩이 붙이고 일어나지 않은 셈이다. 그로 인해 매년 직장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해서 유방촬영은 빼놓지 않고 받아왔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미세석회화 소견이 보이고 그것은 한국 여성이 치밀 유방이 많은 편에 늦은 결혼과 모유수유를 하지 않은 여성에게서 나타나므로 초음파를 권한다는 똑같은 진단을 받아왔다. 매년 복사한 듯 같은 결과였고, 초음파를 받고 모양이 좋지 않은 물혹들이 있다고 해서 전부 조직검사를 받았으나 다행히 모두 양성이었다. 그 후, 나는 내 유방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믿고 확신했다. 그 조직들이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무지했던 것이고 그만큼 관심도 없었던 것이었다. 아니면, 내게는 암이라는 것은 절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있었을 것이다.      


 위암 말기로 엄마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 누구도 제발 암은 걸리지 않기만을 바랐다. 말기 암으로 환자 본인이 어떤 고통을 겪었고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되었지만 엄마의 부재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 “암”이라는 단어조차도 회피하고 싶었다.      


 게다가 유방암은 정말 피하고 싶었던 암이었다. 이제는 오십세가 더 가까운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오십은 이전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유방이 완전한 여성의 상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사회 통념이라는 것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유형의 인간이므로 그렇다 할지라도 유방암에 걸려 유방을 제거하는 불운만큼은 제발 나의 인생에 있어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고, 하늘에서 그 정도는 피할 길을 내주실 것이라고 알 수 없이 확신하고 있었다.      


 유방암은 자가 검진으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해 본 적이 없었다. 암 덩어리가 만져지는 기절초풍 할 일이 생기는 일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였을까? 유방암 자가 검진이라는 행위 자체가 꺼려졌다. 그러나 나의 유방암은 아이러니하게도 우연한 자가 검진으로 인해 발견되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한동안 지속이 되었던 기간이었고, 그로 인해 체중이 4킬로 그람이 빠졌고 살이 빠진 김에 오래간만에 맞이한 20대의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부단히 애쓰고 운동을 했다. 몸은 날씬해졌지만 한 때는 글래머라는 말도 들었던 나의 가슴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작고 탄력도 떨어져 보였다. 그래도 나는 마른 몸이 더 편했고 만족도가 높아 작아진 가슴엔 그렇게 아쉬움이 있지는 않았다. 지방층이 많이 빠진 나의 가슴은 피부와 유방 조직 층이 가까워졌던 것 같다. 내 예상으로는 그렇다. 너무 쉽게 살짝 스치듯 긁었던 오른쪽 유방의 우측 맨 끝에서 완두콩 같은 알갱이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유였을 것이다. 지방층이 더 두꺼웠더라면, 4킬로 그램이 빠지지 않았더라면 절대 만져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방암은 절대 피하고 싶었으면서도 유방암 자가 검진은 하지도 않았으나 뜻밖의 상황에서 유방암 자가 검진이 되어 버려 스스로 발각되어 버린 내 가슴 안의 별이 아닌 작은 암 덩어리. 너는 왜 별이 아니라 암이 되었던 것일까? 별이 암으로 바뀔 만큼 내가 살아온 세월이 사실은 엉망이었던 것은 아닐까? 내 삶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잘못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일이 내게 생긴 것일까? 이런 근거 없는 생각들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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