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와 바람
등대와 바람
나는 종종 내 삶이 바람 같았다고 생각한다. 계획 없이 흘러가듯, 눈앞에 놓인 선택지를 따라 이어온 날들이 많았다. 학업도, 꿈도, 직업도 거대한 설계보다는 그때그때 다가온 기회를 따라갔으니까. 그래서 내 삶은 자유로웠고, 때로는 가볍게 흘러가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뒤돌아보면, 나는 또 등대를 좇으며 살아온 사람이기도 했다. 주체적이라는 이름으로 나만의 목표와 개성을 만들고, 그 빛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 애썼다. 남들보다 특별히 빛나지는 않았지만, 그 등대를 바라보며 정박하려 노력했던 건 사실이다. 바람 속에 있을 때는 등대를 비웃었고, 등대를 향해 항해할 때는 바람을 하찮게 여겼다. 나는 늘 둘을 번갈아 정답으로 여기며 살았던 것 같다.
등대와 바람 둘 중 하나만 정답이어야 했다.
등대는 언제나 그 자리에 고정돼 있었다. 나에게 다가오지도 않고, 길을 대신 내어주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제 빛을 비추며 “여기 있다”는 사실만 알려주었다. 그 빛은 분명 위안이 되었지만, 동시에 불안의 근원이기도 했다. 아무리 가까워진 것 같아도, 늘 도달하지 못한 거리감이 남아 있었으니까. 다른 이들은 점점 먼 등대로 나아가고 있었고, 나는 늘 초조했다.
반면 바람은 늘 내 옆에 있었다. 바람은 내게 선택지를 묻지 않고, 그저 다른 길로 데려다주었다. 예기치 않은 풍경, 새로운 배움이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바람은 자유롭기에 두려움도 함께 있었다. 나를 앞으로 밀어주는 게 아니라, 뒤로 끌어내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따라붙었다.
그냥 걸었던 길 그 자체가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등대는 내게 방향을 주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바라보기만 하면 길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은 스스로 걸어야 했고, 그 고단함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바람은 내게 관용을 주었다. 내가 택하지 않았던 길로 이끌며, 보지 못했던 풍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바람은 따라야만 길이 되고, 거스르면 언제나 맞바람이 된다.
나는 그렇게 등대를 바라보며 한 걸음을 내딛기도 하고, 바람에 몸을 싣고 흘러가기도 했다. 돌아보면 중요한 건 어느 쪽을 따랐는지가 아니었다. 결국 남는 건 내 발걸음이 새긴 길, 그 길 위에 겹겹이 남은 내 삶의 흔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