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그게 분명…

by 도영

갑자기 낸 이유 없는 휴가의 마지막 날, 푸른 바다가 잘 보이는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이곳은 산과 연결된 곳이라 절벽과도 같은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데,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 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오늘은 날씨가 좋음에도 평일이어서 사람이 드물었다. 마치 산과 바다가 전부 내 것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조용한 시간이었다. 그 조용한 시간에 취해 한참 그 절벽에 서서 바다를 바라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렇지, 그렇다고 이 세상에 사람이 존재하지 않은 채로 온전히 나 혼자인 것은 아니었지. 뒤를 돌아보니 나보다 나이가 훨씬 들어 보이는 보이는 한 남자가 서있었다. 잠시 눈이 마주친 찰나, 조금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봤더라…?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그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그 남자의 말에, 그의 목소리에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피어오른다. 아, 그래. 분명히 아는 얼굴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때의 감정은 분명… 사랑이었는데, 그렇게 믿었는데.

오늘은 내가 죽는 날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다가오기 시작하자 나는 더 빠른 걸음으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곧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처럼. 마침내 내가 절벽 아래로 떨어질 때 절벽의 끝에 서서 손을 뻗는 그의 손은 나를 밀친 손이었나, 나를 잡으려고 하던 손이었나. 절벽으로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도 그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날, 그땐 정말 따스한 겨울이었다. 그땐 몰랐어, 우리가 인연이 될 줄은. 하지만 점차 알게 되고 믿게 된 거야. '운명'이라는 것을, 인연은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 없는 무언가라는 것을. 처음 본 너는……,그렇게 인상이 깊었던 것은 아니었지.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존재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굳이 지나가는 모든 것에게 관심 가질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처음 자취방을 구해 입학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그 시기에 이사 오는 많은 사람들을 봤다. 다들 나랑 같은 학교를 다니는 학생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굳이 이사 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익히진 않았다.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굳이 이사를 왔다고 이웃들에게 무언가를 돌리는 것은 없어진 문화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얼굴을 볼 기회도 없었다.

이사 온 것도 약 한 달이 지나고 2월이 왔다. 입학할 시기가 다가오자 학교와 동네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둘러보고 싶어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옷을 껴입은 채 밖으로 나갈 때 같은 층에 살던 한 남자가 이곳에서 나가는 것을 봤다. 딱히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아, 언젠가 여기 이사 오는 걸 본 적 있는데 여기 사는구나. 그리고 그게 바로 '그'였다. 물론 그 이후로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그를 마주친 적은 한 번도 없다. 집에 들어가는 시간과 집에서 나오는 시간이 겹치지 않았으며,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것 같았지만 같은 과가 아니었으니 그 넓은 캠퍼스에서 몇 번 마주칠 기회가 생겨도 당연히 아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스쳐서 지나갈 뿐이었다. 그냥 딱 그 정도였다. 아, 이 학교에 다니는 건가? 아는 사람이 여기 있나? 단순한 물음들만 남아 지나갈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탈 없이 졸업을 했다. 어렵게 취직도 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회사를 다녔다. 입사한 지도 언 1년, 평소처럼 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다.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의 얼굴은 처음 보는 얼굴들도 있었고, 같은 버스를 늘 정해진 시간에 타다 보니 꽤 낯이 익은 사람들도 몇몇 존재했다. 하지만 그들과 나는 아는 사이가 아니다. 그저 버스에서 마주친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잖아. 바깥 풍경으로 시선을 돌려 이어폰을 꽂고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한 정류장에서 급하게 뛰어와 정류장 사이를 달리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묘하게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내가 확실히 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굳이 오래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게 '그'였음에도 나는 그 순간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정말 지루하다. 매일 하는 똑같은 일, 똑같은 식사,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 집에 갈 때 또 타는 똑같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정류장으로 걸어왔다. 버스를 타러 오는 사람들이 서있는 곳, 굳이 신경 쓸 필요 없다. 버스를 타는 타인이기도 하고, 내가 아는 얼굴이 아니었기에 핸드폰만 바라보고 들을 음악 목록을 뒤적거렸다. 그때 그 남자가 내 곁으로 가까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봤을 때, 그는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그의 아름다운 미소,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뻔한 대사. 그를 단번에 기억하지 못한 나로서는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모르는 사람 같은데, 혹시 사이비나 뭐 그런 건가? 경계의 눈초리로 그를 올려다봤다.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인지 그는 약간 당황한 기색을 띄우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새봄빌, 월하 대학교요. 거기 살고, 그 학교 나왔죠?"

"아……, 네."

그 말들을 듣고 나서야 스쳐 지나간 얼굴들을 몇몇 떠올려보다가 그 속에서 그의 얼굴을 찾았다. 딱히 말 한마디 해본 적 없는 사이였기에 이렇게 아는 척하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그는 생각 이상으로 친화력이 좋아서 출근길과 퇴근길에 마주칠 때마다 말을 걸고 친한 척을 해댔는데, 말은 또 어찌나 많던지 기가 다 빨리는 기분이었다.

그는 나와 같은 회사의 다른 부서에 최근에 입사를 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그 부서의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다. 나랑 동갑이기도 하고, 입맛도 비슷해서 가끔 같이 식사를 하는 날도 늘었다. 업무 시간을 제외하고 그와 붙어 다니게 되자 회사 안에는 우리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길게 길게 퍼져 우리 두 사람의 귀에 자연스럽게 들어올 정도라면 얼마나 많이 퍼지고 왜곡되었을까? 하루는 그와 휴일을 앞두고 맥주를 마시면서 우리 얘기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도대체 왜 그런 소문을 만드는 거야?"

"어지간히 할 일도 없나 봐, 그런 거라도 만들어서 누구 얘기 하나라도 더 하고 싶은가 보지."

"그래도 좀 너무한 거 아냐? 입에 담을 말이 있고, 아닌 게 있지. 소문을 만들어도 그딴 식으로 만드냐?"

"됐어, 너무 열 내지 마. 그래도 어느 정도 사실인 것도 있잖아?"

"그건 그렇지."

내가 한숨을 내쉬며 잔을 들자 그는 잔을 한 번, 나를 한 번 보고 웃어 보였다. 잔을 내려놓고 잠시 그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이제는 깊게 고민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그는 참 다정한 존재, 분명 내 옆에 있는데도 이상하게 갖고 싶어지는 존재였다.

"왜 그렇게 쳐다봐? 취했어? 가자, 집에 바래다줄게.”

"아니. 아직 마시지도 않았거든? 있잖아, 이왕 그 사람들이 우리 얘기로 재밌어하는데, 더 재밌게 해 줄까?"

"응? 무슨 소리야?"

"우리 같이 살자."

갑작스러운 내 말에 그는 당황했고, 며칠을 대답을 미뤘지만 우리는 결국 동거를 시작했다. 우리는 친구처럼 연인처럼, 또 때로는 가족처럼 함께 살았다. 가끔은 맞지 않는 것들이 생겨 싸우기도 하고, 몇 번을 헤어지길 다짐했지만 너무 익숙해진 우리는 서로를 쉽게 끊어내지 못했다. 나는 가끔 그와 내가 운명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돌고 돌아도 결국 다시 어이 지는 인연이 아닐까, 그는 어쩌면 지루한 내 일상에 신이 주는 선물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나는 그 선물을 받기엔 너무 부족한 사람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하고 있는 일들이 버겁고 힘들다고 느껴지고 내가 그에게 짜증을 내는 날이 늘어났고, 그 생각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한없이 나를 이해해 주고 수긍해 주던 그가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기 시작했는데, 나는 점차 그를 경계하고 내 것을 챙기게 됐다. 그도 내 모습에 지치기 시작했고, 우리는 다른 연인들처럼 헤어졌다.


먼저 변한 것은 나였는데, 왜 후회도 내 몫일까? 회사에서 종종 마주치는 일이 있었지만 우리는 더 이상 서로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같은 부서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려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하루를 겨우 살아가는데, 너는 참 잘 지내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하나씩 태웠다.

이상하게 자꾸 잊히지가 않아. 모든 것을 태워도 속이 시원하지 않았기에, 나는 아직 남아있는 흔적들을 찾아댔다. 그게 바로 나와 함께 추억을 만들어 나간 '그' 자체였다. 그저 너와 함께 했던 추억을 전부 태워버리고 싶었을 뿐이야, 그러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질 것 같았어. 너와 함께 했던 그 지루함에서 벗어나 다른 지루함을 느낄 수 있을 줄 알았어. 불에 타면서 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도망가기 바빴어. 무서워서, 문득 내가 저지른 일이 어떤 일인지 머리에 그려지기 시작해서. 멀리, 아주 멀리 도망갔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나는 결국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었고, 아무렇지 않게 내 집으로 돌아와 삶을 살아냈다.

그때의 나는 네가 행복한 게 싫었어. 나 없이 잘 사는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았어. 다시 너와 감정을 나누고 싶지도 않았지만, 네가 나를 찾았으면 했어. 내 잘못이야. 나는 너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야. 그저 갖고 싶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장난감처럼 너를 버렸을 뿐이었어. 너는 장난감이 아닌데, 너는 인형이 아닌데. 너를 장난감처럼, 인형처럼 취급했어. 내가 필요할 때만 찾았어. 너를 버려뒀어.


지루하지만 어딘가 불안해진 내 삶, 네가 정말 내 눈에서 영영 사라진 삶. 한동안 정말 힘들었음에도 나는 점차 그를 잊어갔다. 그러다 다시 급히 휴가를 내게 된 이유는 같이 일하는 부서의 한 사람의 물음 때문이었다.

"근데 요새는 서준이 얘기 안 하시네요? 왜 있잖아요. 학교 근처에 살던 애. 회사에서 똑같은 애를 다시 만나서 매번 챙겨주시다가 집에 데려가서 같이 산다고 하셨잖아요. 한동안 예쁘다고 엄청 자랑하시더니, 요새 통 말을 안 하시길래 무슨 일 있나 싶어서."

서준, 내가 그에게 처음으로 붙여준 이름. 언젠가 꿈에서 들은 적 있던 익숙한 이름을 따와서 내가 네게 붙여준 이름. 잊고 있었던 너의 이름.

나는 대답을 회피하고 급하게 휴가를 냈다. 집에 틀어박혀 나가지 않았다. 갑자기 낸 이유 없는 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잊고 있었던 그와의 추억이 떠올라 괴로웠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한 번도 가지 않았던 해안공원. 그래, 오늘 향했던 그곳. 문득 그곳에 가고 싶어졌다.

나는 푸른 바다가 잘 보이는 그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이곳은 산과 연결된 곳이라 절벽과도 같은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데,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 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오늘은 날씨가 좋음에도 평일이어서 사람이 드물었다. 마치 산과 바다가 전부 내 것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조용한 시간이었다. 그 조용한 시간에 취해 한참 그 절벽에 서서 바다를 바라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렇지, 그렇다고 이 세상에 사람이 존재하지 않은 채로 온전히 나 혼자인 것은 아니었지. 뒤를 돌아보니 나보다 나이가 훨씬 들어 보이는 보이는 한 남자가 서있었다. 잠시 눈이 마주친 찰나, 조금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봤더라…?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그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그 남자의 말에, 그의 목소리에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피어오른다. 아, 그래. 분명히 아는 얼굴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때의 감정은 분명…사랑이었는데, 그렇게 믿었는데. 나는 분명 너를 버리고 불에 태웠어. 근데 왜….

그는 그날 죽지 않았다. 이 공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하게 입을 열고 웃는 모습, 그렇게 버리고 떠났음에도 꼬리를 치며 내게 한 걸음씩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가 반가운 마음에 내게 가까이 다가올수록 나는 더 빠른 걸음으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곧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처럼. 마침내 내가 절벽 아래로 떨어질 때 절벽의 끝에 서서 손을 뻗는 그의 손은 나를 밀친 손이었나, 나를 잡으려고 하던 손이었나. 절벽으로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도 그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주인에게 버려져 혼자 떠돌던 너는 우연히 다시 만난 내가 버스에 타는 걸 보고 버스를 따라왔고, 매일 내 출근길과 퇴근길에 함께 했어. 나는 너를 입양하기로 결정했고, 버림받아서 외로웠던 너도 혼자 살아서 외로웠던 너는 나와 행복하게 잘 지냈지. 내 첫 반려동물, 내 가족, 내 친구, 내 작은 강아지.

버림받아 슬퍼했던 네게 또 같은 상처를 주고 끔찍한 짓까지 저질렀는데도 그을린 상처를 가지고 다시 만난 내게 꼬리를 흔들면서 다가오는 너는, 참으로… 그래, 어쩌면 나는 벌을 받나 봐. 결국 다시 다가와 준 너를, 한동안 내 행동에 나를 피해 다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거리를 떠돌던 네게 더 큰 죄를 지었던 나는 지금 너를 다시 만남으로써 벌을 받나 봐.

그럼에도 떨어지는 나를 보고 안절부절 망설이던 네가 내 품으로 몸을 던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채 나는 이 세상에서 지워진다. 결국 너를 품에 안고 이 세상에서 너와 함께 죽음을 향해 걸어가게 되는구나. 미안해, 사랑해. 나의 강아지, 나의 소중한….




여자는 책을 덮고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줬다.

"어때, 조금 슬픈 이야기지? 저 여자는 강아지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는데도 강아지는 그 여자가 자신의 주인이었다고 꼬리를 치고 죽음도 함께해 주었단다."

이미 곤히 잠든 아이에게 이 이야기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여자는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사실 그 강아지가 살아있었던 게 아니야. 그저 여자가 본 환상이란다. 여자가 절벽 아래로 떨어질 때 여자 품에 안긴 것은 강아지가 아니라 사실 아르테미스의 화살이었어. 그는 죄를 지어 벌을 받게 된 거란다."

가해자가 잊는다고 해서 지워지는 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어떤 방법으로든 벌을 받게 되어 있음을. 버려진 여우가 결국 매구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버려진 강아지는 결국 괴물이 되어 그 사람을 집어삼킬 것이다. 여자는 느리게 눈을 감으며 잠시 손을 모아 기도했다. 아르테미스님, 인간의 이기적인 행동을 부디 용서하지 말아 주세요. 다시는 제 죄를 잊지 않겠습니다.


여자는 기도를 마치고 아이를 바라봤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 너에게 나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될게. 여자는 잠든 아이를 보기만 하는 것도 잠시, 조심스레 입을 연다.


"근데 아가…,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니?"


여자는 잠들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아이의 대답을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흐느끼며 다시 말을 이어갈 뿐이다.

"… 미안해, 서준아. 엄마가 이번엔 널 혼자 두지 않을게. 잘 자렴, 사랑해."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흔한 말 같지 않은가? 우리는 살면서 정말 어디서 마주친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존재한다. 와, 여기서도 다 보네요? 이 글은 원래 우연히 마주친 한 여성과 남성의 이야기였다. 바로 남자의 저 흔해빠진 대사를 내뱉는 모습부터 시작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연이란 참 신기하지 않은가?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그게 어떤 관계로 끊기든, 이어지든 간에. 하지만 쓰다 보니 단순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이야기는 아니게 되었다. 역시 나는 마냥 행복한 이야기를 담아 쓸 수 있는 문체를 가진 것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 쓰다 보니 떠오른 글들로 장르가 바뀌게 되었다. 사람과, 강아지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 어쩌면 그냥 생물과 생물의 환생으로 돌고 도는 이어진 인연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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