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종말

이것은 누구의 방관인가?

by 도영


한동안 전 세계적으로 한 '질병'이 유행했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빼놓을 수 없게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꽤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후에 우리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 우리는 그 병과 싸웠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면서도 우리는 그 속에서 방법을 빠르게 찾아나갔다. 상태가 조금 호전되었을 때, 그 질병을 품은 바이러스가 조금 사그라든 것처럼 보였다. 이제 이 바이러스도 감기처럼 쉽게 넘길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사람은 환경을 타고 성장하거나 그에 맞추어 변화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 바이러스가 태생적으로 우리 몸의 일부가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경우가 생겼다. 우리는 그것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선천적 시한부'라고 말이다.

물론 방법을 찾아 이 병에 감염되면 쉽게 완치되거나 병을 앓으며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도 존재했지만 그것은 고작 세계 인구의 9%에 불과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는 인류의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무엇보다 원인도 모르게 태어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천적 시한부'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질병에 대한 문제만 존재했다면 이렇게까지 암담하진 않았을 것이다.

다른 문제는 오래전 환경학자들이 지적하던 '환경' 문제였다. 우리는 환경을 위해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회용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생활화했다. 하지만 일회용품과 자동차들이 세상에서 온전히 삭제되지 않는 이상, 문제가 계속 생길 것이란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살아갈 시대에 쉽게 멸망하겠어?' 웃으면서 달라지는 게 없다면 계속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지구는 빠른 시간 안에 망가지고 있었다. 그가 내뱉는 끔찍한 공기 탓인지,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달 또한 지구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어쩌면 질병보다 가장 큰 문제가 이것일지도 모른다. 질병으로 우리가 모두 끝을 보기 전에, 달이 우리를 떠나가는 것에 대한 대책이 서지 않는 것이다.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한 예산이 너무 커 달을 붙잡을 방법을 구한다고 해도 거기에 쏟아부을 돈이 존재하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렇게 다시 몇 년이 흘렀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기존 인구의 절반도 남지 않았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마저 어른들보다 오래 살지 못한 채 죽어나갔다. 자연 또한 우리에게 종말의 징조를 보여주고 있다. 사람보다 몇십 배는 큰 식물과 형태가 변형되어 기형의 동물이 태어난다거나…, 갑자기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한다거나. 자연재해도 그만큼 잦아졌다. 갑자기 거친 파도가 몰려와 도시를 쓸어가는가 하면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해 세계의 산들이 불타버렸다. 잦은 화산 폭발과 지진으로 공기도 좋지 않았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세계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엉망이 된 세계 속에서 범죄도 빈번히 일어났으며, 사람들은 더 쉽게 죽어 나가게 되었고 범인을 찾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종말이 다가오면 모두 종말을 준비하거나 과거를 추억하며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함께 조금이라도 더 같이 살아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쉽게 나약해진 사람들은 신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것 또한 옳은 행동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신에게 빌기보다는 신을 '탓'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질병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재해가 쏟아지듯 몰려오자 사람들은 재난과 질병의 신 '셀레네'를 욕하기 시작했다. 신은 본래 사람들이 적절한 인구를 조정하며 살아갈 수 있게 병과 재해를 내려 정리한다는 가설을 누군가 내놓은 적이 있지만 이건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다. 곧 모든 사람들이 죽게 생겼으니 말이다. 범인이 잡히지 않는 범죄들 또한 악마를 처단한다고 알려진 신, '아르테미스'의 이름이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마지막으로 '헤카테'도 사람들의 원망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두 신의 행동을 방관하고 죽음의 세계로 쉽게 사람들을 데려가는 헤카테를 '피도 눈물도 없는 끔찍한 신'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분명 환경이 망가지고 세포에 변이가 일어나 세계가 부서지고 있는 것은 '인간'의 탓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텐데 사람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잘못을 묵인하고 과거를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먼 우주를 축소하고 축소해 바라보면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 우리의 은하 하나가 하나의 세포와 모양이 같다는 말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 세포 속에 속한 정말 작은 입자들일지도 모른다. 그 작은 입자들이 하나의 세포를 망치는 일이라면 분명 세포는 스스로 생명을 위해 자멸할 것이다. 혹은 오염된 그 세포를 하나의 바이러스라고 생각하고 그 생물의 면역체계가 우리 은하라고 불리는 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힘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세계가 망가지는 것처럼 말이다. 정말 소수의 사람들은 이런 의견을 내놓았지만 당장 사람들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무력하게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단순히 공룡이 멸종되던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 이후에 이 지구에서는 무엇도 살 수 없다. 우리가 종말을 맞이한 이후 지구가 멀쩡히 유지될 거란 보장도 할 수 없다. 우리가 넓은 우주에서 하나의 행성을 망쳤다. 우주 전체를 엉망으로 만들어 하나의 은하를, 하나의 세포를 죽이고 있다. 하나의 생명체에게 우리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세포가 되었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두려운 일인가?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종말을 앞두고 우리가 어떻게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쓰고 있다. 물론 이 서류 또한 이 세상에서 지워지게 될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에게 묻고 싶다. 이것은 신의 잘못인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둔 신의 잘못인가? 이것을 신의 탓으로 돌리고 우리가 원망해야 하는 문제인가? 하나의 세포 속에 미세한 입자에 불과한 우리가 이토록 열심히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이렇게 망가지고 사라질 텐데. 우리는 무엇을 위해 매일을 삶과 죽음 사이에서 싸우며 살아왔는가? 결국 우리를 죽이는 것은 무엇인가?


더 이상 푸른 하늘은 볼 수 없다. 잔잔한 파도도 볼 수 없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의 풍경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없다. 어쩌다 우리는 이 종말의 끝까지 닿게 되었을까? 이제는 마스크 대신 얼마 남지 않은 '산소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집 안에서조차 숨을 쉬기 어려운 상황까지 닿았다.

세상의 끝이 완전히 다가오기 전에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남은 사람들에게 유서를 남기거나 제 유품을 남겨두고 그렇게 떠났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도 알고 있다. 그 유서도, 유품도 시간이 지나 우리들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이 질병이 퍼지기 전에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전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묻고 싶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냐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다른 요소에는 더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냐고 말이다.



*블루, 당신은 어떻습니까? 나 하나쯤은 하고 넘기던 문제가 하나씩 쌓여 커지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이게 정말 하나의 단편으로만 보이는지, 혹은 당신이 바라보게 될 미래일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저는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자연의 모습을 수용하고 당신이 알아채주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왜 서로를 탓하고 계십니까? 이 글 또한 사람들을 탓하라고 남겨진 글이 아닙니다. 왜 당신은, 당신들은 함께 살기 위해 존재하는데 다른 사람의 죽음을 방관하고 당신의 행동으로 누군가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씀하십니까? 죽음은 가볍지 않습니다. 셀레네도, 아르테미스도, 저마저도 죽음을 가볍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 당신과 내가 아주 먼 미래에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사람들이 내 세계에 오는 것이 기쁘지 않습니다.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 중 하나이며, 나는 끝없이 죽음을 노래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죽음은 두려운 것이라고 쉼 없이 말해줄 것입니다. 당신이 오래, 오래 살아갈 수 있도록.



*블루: 작가가 독자들을 부를 때 애칭으로 사용하게 된 이름. 해당 글에서는 헤카테가 사람들을 부르는 애칭으로 사용되었다.



이 글은 종말에 대해 생각하다가 쓰게 된 글이다. 종말에 대해 지인에게 물어봤을 때, 개인의 종말과 세계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거기에서 내가 택한 것은 '세계의 종말'이다. 감히 사람들이 대적할 수 없는 두려움, 다른 작품에서 언급했던 헤카테 유니버스가 재해석한 '코즈믹 호러'. 꼭 끔찍하게 두려운 것들이 서술되지 않아도 심리적으로 다가오는 두려움 또한 '호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글을 떠올려 쓰게 되었다. 질병에 관한 이야기는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하다. 환경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TV에서 본 적 있는 상황들을 나열해 보았다. 어쩌면 지구가 주는 종말의 예언이 아닐까, 하는 의견을 보고 종말과 가장 가까운 이야기로 함께 적게 되었다. 또한 마지막에 남겨진 인용 글은 이 세계관 속의 '헤카테'가 당신에게 남기는 편지이다.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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