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정월대보름이 다가온다. 보통 정월대보름은 첫해의 시작에 뜨는 보름달로 사람들은 대부분 가장 큰 달이 뜨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해를 시작하면서 크게 뜬 보름달을 바라보며 보름달의 신, 아르테미스에게 제사를 지내는 행사를 진행한다. 올해도 탈 없이 잘 지내게 해달라고 신에게 띄우는 오랜 풍습이었다. 하지만 그 제사가 망가진 것도 벌써 3년 전의 이야기였다. 3년 전에는 정월대보름 때 달이 지구에서 가장 먼 순간으로 '대보름'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풍습을 지우지 않고 달이 떠오르는 시간에 맞춰 제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우리는 '보름'을 볼 수 없었다. 우리의 눈앞에는 남색 빛의 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들, 그 사이에 떠있는 '까만 달'이었다. 마치 '삭월(朔月)'과 같아 보였지만 다른 점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삭과는 다르게 까맣게, 저기 달이 확실히 있다는 것이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는 저것이 달임을 쉽게 알 수 있었고, 그것은 분명 '까맣게' 변해 있었다.
그저 까만 달이 뜨는 것이 전부였다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놀라며 다음 해부터 제사를 안 지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까만 달은 단순한 이상 현상이 아니었다.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다. 존재 자체로도 우리에게 끔찍한 재앙과 같은 존재였다. 까만 달이 뜨면 어디선가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그 형태를 찾아보려고 해도 달처럼 까만 존재라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빛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빛을 집어삼키곤 했는데, 빛을 집어삼킨 곳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사람들이 전부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죽임을 당했다는 점이다. 그 이후로 두려움에 떨며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작년까지 같은 일이 반복되자 다들 정월대보름이 되면 집 밖을 나가지도, 집에 불을 켜지도 않으며 죽은 듯이 지내곤 했다. 그렇게 올해도 어김없이 두려운 정월대보름이 다가오고 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조용하게 지낼 그날을 대비하고 있었다. 올해도 그렇게 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까만 달을 바라보며 정월대보름을 보내게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죽이는 그 끔찍한 '괴물'을 잡아 없애버리자고. 어쨌든 그 끔찍한 괴물은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하면 물리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생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의견에 동의했고, 우리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빛이 있는 곳'에 들러 사람들을 죽인다. 우리는 빛으로 그것을 유인시켜 뒤를 치기로 했다. 간단한 문제지만,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 우리는 마을의 가장 어두운 숲, 그곳에 빛을 만들어 놓고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정월대보름 낮까지도 모두 긴장한 채로 준비하기 바빴다. 우리는 서로 깊게 얘기하지 않았고, 그저 서로를 보고 믿음의 의미로 웃음을 띨 뿐이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니까. 함께하면서 많은 것을 이겨냈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떤 재앙이 닥쳐와도 결국 우리는 다시 일어설 방법을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질병도 오랜 연구 끝에 치료법을 찾았고, 수많은 이상 현상도 원인을 찾아내 새로운 시도로 이어 위기를 기회로 극복했다. 여전히 살아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우리'가 있고, 우리는 오랜 시간 끝내지 못한 이 싸움도 이겨낼 것이다. 대게 재앙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우리는 셀레네의 배움을 받고, 아르테미스의 지혜를 받으며, 헤카테의 성숙을 받으며 살아냈으니까. 이번에도 우리는 이겨낼 것이다.
달이 뜨고, 밤이 온다. 우리는 준비한 대로 움직였고 곧 그것의 울음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긴장했지만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온기를 느꼈다. 그 온기로 우리는 곁에 아직 함께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점차 빛을 찾아 끔찍한 네 발로 걸어 숲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긴장한 채 그것을 쫓았다. 마침내 그것이 빛에 닿아 그 모습을 보였을 때, 우리는 그것을 향해 들고 온 무기들을 겨누었다. 그것의 모습은… 까만 네 발의 짐승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여우일까, 늑대일까, 또 다른 무언가였을까? 눈조차 존재하지 않은 채 까만 형태만 띠고 있는 그것이 입을 쩍쩍 벌리자 끈적한 것들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살아있는 무언가가 빛 근처에 존재하지 않자 그것은 단단히 화가 난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사람들의 인기척을 들었는지 우리를 돌아본다. 우리는 긴장한 채 그것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총을 쏘고, 활을 쏘고, 칼을 휘두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했다. 그것은 저항할 틈도 없이 유리처럼 부서졌다. 깨지고 망가져 바닥에 흩어졌다. 생각보다 쉬운 일에 우리는 안도했고, 금세 기뻐했다. 두려움이 우릴 삼켰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우리가 또 해낸 것이다.
우리는 종종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고 숨곤 한다. 우리는 오늘을 기억하며 앞으로 계속 많은 것들을 이겨낼 것이다. 두려움에 잡아먹히지 않은 채.
하늘을 바라보니 여전히 까만 달이 떠있다. 그리고 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달이 가장 가까워 크게 뜨는 날이라고 알려진 정월대보름, 애초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달은 더 이상 밝게 빛나지 않았다. 신 아르테미스는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까만 달, 그 끔찍한 괴물이 전부 그의 일부였다. 우리는 방황한 채 서로의 따뜻한 손을 감싸 잡았다. 그리고 결국, 다시 시작될지도 모를 끔찍한 재앙을 피해 온기를 나누자고 마음먹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이 따뜻함을 기억하기 위해 서로의 몸에 불을 붙였다. 결국 두려움은 우리를 또다시 잡아먹을 것이다. 우리는 안다. 결코 우리는 이겨낼 수 없을 것이란 것을. 우리는 다시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끔찍한 괴물은 다음 단편 '휘이(輝離)'에 나올 휘이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빛에 모아 죽여나갔던 것은 활을 사용하는 아르테미스이다. 사람들은 결국 함께 살아나가기 때문에 함께 많은 것을 이겨내고 두려움을 극복해 나간다. 하지만 결국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것 또한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결국 두려움에 쉽게 잡아먹히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주춤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결국 약하다. 이길 수 없는 끔찍한 공포에 결국 또 망가질 것이다. 그들이 무언가를 이겼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언젠가 또다시 같거나 더 강한 것들이 생겨 그들을 망치러 올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헤어 나오지 못하는 순간이 생긴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결국 약하기 때문에, 이겨내더라도 결국 과거의 두려움에 다시 발목을 잡혀 끌려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대게 이겨냈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의 기억은 그렇게 쉽게 잊히는 것이 아니다. 극복이 아니라 잠시 지우는 것뿐, 사람은 결국 자신이 두려워했던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