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여있던 비는 우리가 참아오던 ‘ ’였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았는데, 오래간만에 내린 비는 사람들에게 축복이자 기쁨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비가 그치지 않는다. 벌써 3개월째 비만 내리고 있다. 계절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다. 3개월 동안 같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고, 사람들은 추위에 떨며 외투를 꺼내 입었다. 비가 찬 바람에 날린다.
비가 멈추지 않으니 사람들도 유독 우울해하는 모습이었다. 한 달째 학자들이 말하던 대로 인구의 1%가 자살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쉽게 죽음을 택하니 남은 사람들도 우울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침체된 분위기였다. 아무리 기상을 예측하여 결과를 내놓아도 그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우리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비는 멈추지 않고 내렸다. 조금씩 내릴 때도 있고, 거세게 내릴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한순간도 비가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바다 앞에 지어진 집들은 조금씩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육지의 면적이 조금씩 줄어든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이대로 평생 비가 내린다면? 비가 계속 멈추지 않고 우리가 물에 잠겨버린다면?
일부 사람들은 이 현상을 '세계의 종말'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처음에는 반발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당장 죽는 사람과 이미 죽은 사람, 이제 곧 죽을 사람. 우리는 서로를 이렇게 나누기 시작했으며, 천천히 죽음을 준비했다. 유품 같은 건 준비하지도 않았다. 유서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 물에 잠겨 사라질 것이니까. 물론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 중 꼭 자살을 택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전부 물에 잠겨 사라질 테니, 스스로 물에 잠겨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을 하나, 둘 잃고 또 언제 죽을지 모를 스스로의 죽음을 준비하고 세상이 빗물에 잠기듯, 우울 속에 잠겼다.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우울을 품고, 비슷한 상황을 이야기하며, 같은 상처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함부로 정의 내려서는 안 되었고 섣불리 위로를 건네어도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 같이 병들었기에 내가 병들지 않기 위해 옆 사람의 상황을 정의 내렸고, 위로했다.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서로 위로를 하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인데, 다 같이 죽음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졌다. 결국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 걸까? 결국 이렇게 한순간에 망가질 존재였는데, 이렇게 약하고 또 약한 존재였는데.
이 상황 속에서 몇몇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바다 위로 스스로를 던지는 것이다. 그래, 차라리 모두 물에 잠길 거라면 물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그 아래로 가라앉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차가운 비를 맞고 배 위에서 얼어 죽었다. 간혹 배에서 뛰어내려 바다로 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파도가 요란하게 친다. 나는 파도가 나를 쓸어가 바다에 삼켜주길 바랐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센 만큼 파도도 심하게 일렁였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죽기도 했으니까.
시간이 갈수록 파도가 거세지는 것 같다. 나에게도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거겠지. 나는 가만히 나룻배 위에 누워 눈을 감았다. 몸 위로 떨어지는 비를 가만히 맞은 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파도에 배가 일렁여 곧 배에서 떨어질 것 같아도 나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종말을 맞이할 거라면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조금은, 아주 조금은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땐 이미 늦었다. 파도가 천천히 나를 집어삼킨다.
속상하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나도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태어나 이것저것 이뤄나가며 살아왔다. 그런데 고작 이 비가 그치지 않는다고 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이렇게 한순간에 다 끝나버리는 거야? 우울 속에서 버티며 살아온 내 삶을 이렇게 버려야만 하는 거야? 숨이 막혀온다. 코와 귀, 입으로 물이 들어와 죽을 것 같음에도 기침 하나 편히 내뱉지 못한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나약한 거야?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살아가면 되잖아? 물이 넘칠 것 같으면 그것을 퍼내어 말려버리면 되잖아? 오래 걸리더라도 다 같이 해내면 조금은 나아질 수도 있잖아? 계속되는 어둠 속에 묻혀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처럼 왜 쓰러지는 거야? 왜 물속에 잠겨서 다시 올라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한참을 물속으로 가라앉으면서 내뱉지도 못할 울음을 품었다. 축축하고 어두운 바다에 가라앉으면서 나는 잠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어. 나는 다 끝났어. 세상은 날 버렸고, 희망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막힌 숨을 겨우 내뱉으며 천천히 눈을 떠 주변을 바라본다. 나처럼 바다에 잠겨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중에서는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들도, 같이 헤엄쳐 다시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도, 나처럼 혼자 물속에 잠겨 힘겹게 숨을 내쉬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바닷속에서도 힘겹게 살아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내 생각이 전부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바다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었다. 우리의 우울이었으며, 우리의 눈물이었다. 바다에 묶여 있는 우울은 우리를 따라 하늘로 올라가 비가 되어 쏟아졌다. 그리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간 우리를 지난 우울에 가둔다.
그런 날이 있다. 세상 밖으로 나와 잘 살다가도 한없이 나쁜 상황들이 쏟아져 다시 과거로 끌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 내 세상은 전부 젖어 있는 것 같고, 이 우울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 우울 속으로 더 깊게 들어가 다시는 나오고 싶지 않은 날. 맞아, 왜 물속에 잠겨서 다시 올라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 결국 우리는 땅을 밟고 함께 살아가는데. 어쩌면 비가 그치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물속에 잠겨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사람들을 도와 함께 물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어두운 물이 종종 우리의 발목을 붙잡아 올라가기 힘들었지만 우리는 두렵지 않았다. 세상에서 지워지고 다시 희망을 갖지 못한 채 죽어가는 것만큼 두려운 것이 또 있을까? 함께 미래를 그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 어둠보다 두렵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우울을 품고, 비슷한 상황을 이야기하며, 같은 상처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함부로 정의 내려서는 안 되었고 섣불리 위로를 건네어도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 같이 병들었기에 내가 병들지 않기 위해 옆 사람의 상황을 정의 내렸고, 위로했다.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착각 속에 살았다. 다른 사람이 주는 위로가 언젠가는 미래를 기대하는 희망이 되고 또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묶여있던 비는 우리가 쌓아온 눈물이자, 우울이었다. 그 비를 쏟아내면 다시는 그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착각했다. 오히려 쏟아내고 나면 그곳을 마음껏 헤엄쳐 다른 방식으로 또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비가 그치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가 희망을 갖지 않아서, 미래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음을 알았다.
내일을 더 이상 기대하지 못하게 된 우리에게 햇빛은 오래 내리지 않았고, 우리를 더 깊은 어둠으로 끌고 내려갔다. 가끔씩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반갑게 맞이할 줄 모르고 불평했다. 그렇게 우리는 비를 참고 또 참았다. 속에 눌려 묶인 비는 쌓이고 쌓여 결국 쏟아졌고, 우리는 그 속에서 더 오래 나오지 못했다.
힘겹게 수면 위로 올라간 우리의 머리 위로 따스한 햇살이 쏟아진다. 살아있다는 것은 체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죽음이라는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으로 달려 나가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만들어 온 삶이었다. 비가 쏟아지면 온전히 그 비를 받아내고 다시 햇살을 기다리는 것이 삶이었다. 마냥 비를 묶는다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기쁨을 느낄 수 있고, 슬픔도 느낄 수 있는 약한 존재니까. 울고 나면 웃는 날도 오니까. 웃는 날이 있으면 우는 날이 있는 것처럼.
그날 이후 우리는, 나는 더 이상 눈물을 참지 않았다. 쏟아지면 쏟아지는 대로 그 비를 온전히 맞고 하루를 보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이상할 정도로 행복했던 내 삶 위에 우울이 쏟아지고 난 후 다가온 행복이 얼마나 더 값진지 알게 되었으니까.
내일은 비가 올 것 같아 우산을 샀다. 조용히 우산을 쓰고 빗소리를 들으며 내일을 기다리기 위해.
비가 내린다. 잠시나마 따스했던 날들이 비가 오니까 다시 춥게 느껴졌다. 추워지니 다시 무기력해지는 기분이 들어 종종 우울했다. 나는 우울에 잠길 때마다 마치 평생 우울할 것처럼 자책을 하고 극단적인 생각을 하곤 하는데, 또 금세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기도 했다. 마치 비 온 뒤에 햇빛이 비쳐오듯이. 한때는 왜 이렇게 우울한 날이 있어야 하냐며 불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은 기쁜 감정만 느끼지 않는다. 우울한 감정이 있기 때문에 기쁘고 행복한 감정이 더 큰 즐거움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마치 행복하고 기쁜 감정이 있어서 슬프고 우울한 감정이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