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은 그것을 쥐고 있는 자로 인해 왜곡된다.
아르테미스는 타락한 신이다.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내가 쓴 이 글을 발견한다면 부디 현실을 직시하고 타락한 신의 모습을, 현실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삭(朔)이 다가오자 달빛이 가장 아름답게 내려오던 이 마을, 월하(月下)에도 어둠이 내렸다. 나는 어쩌면 오늘 아르테미스의 손에 죽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적은 이 사실들을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 쓰기 시작한 이 수첩을 빛이 잘 드는 곳에 가지고 가려한다. 죽기 전의 나의 마지막 발악을 부디 누군가가 발견해 줄 수 있길 바란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죽기 직전까지도 휘이(暉離)에게 쫓기고 있으니 말이다. 바로 빛이 떠난다는 뜻을 가진 그 삭의 수호자! 초승달의 조력자인 휘이에게!
부디 횡설수설 적힌 이 글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우선 다시 말하자면 아르테미스는 타락한 신이다. 그 증거로 보름달인 그의 조력자 휘이를 언급할 수 있다. 휘이는 앞서 말했듯 초승의 조력자이자 삭의 수호자이다. 순리에 그대로 따라 삭의 수호자는 초승달의 조력자여야 하며, 상현의 수호자는 보름달의 조력자, 하현의 수호자는 그믐의 조력자인 것이 맞다. 태초의 신도 달의 순서에 맞추어 세 명의 신을 우리에게 내려주셨다. 하지만 아르테미스의 조력자는 '휘이'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애초에 아르테미스가 보상이 아닌 시작의 초승달의 신이었다면? 나는 그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아니, 이미 확신한 채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다른 이야기로 돌아가 살펴보면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고 신들을 믿고 있지만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은 본디 사람들이 잘 성장하고 스스로 미래를 꾸며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그는 우리를 단순히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제어까지 하려고 들고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신, 아르테미스가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가고 생을 마감하게 되기도 한다. 그는 우리들을 가지고 하나의 게임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우리들이 살아나가는 것을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들을 하나의 창작물로 볼뿐이다. 아르테미스는 본디 초승달의 신이었을 것이다. 사람들과 시작을 같이 하는 신, 사람들에게 첫 시작을 알려주는 신. 하지만 사람은 성장하면서 변한다. 그것은 신조차도 그럴 것이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손에서 자라던 인간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 자신의 멋대로 한다는 사실이 아르테미스에겐 충격과도 같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아르테미스는 인간들에게 일방적으로 배신을 느끼고 그들을 증오하기 시작한다. 그의 증오심은 자신의 멋대로 움직이지 않는 인형 같은 사람들을 세상에서 '삭제'시키는 방식으로 변질된다. 실제로 죄를 지어 처리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아닌 경우는 죄를 지었다는 신의 거짓말에 묻혀 폐기된다. 사람들은 아르테미스를 보고 타락한 인간들을 지워주는 영웅처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당장 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언제 이 세상에서 신의 눈 밖에 나게 되어 지워지게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본디 초승달이라 연한 빛을 내던 아르테미스는 타락했고 다시는 빛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삭의 형태로 변하였고, 그러면서 본인을 지킬 조력자, 삭의 수호자 '휘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 삭을 보고 사람들은 신의 눈속임에 속아 삭을 보름달로 착각하게 된다. 그렇게 사람들의 머리에는 자연스럽게 아르테미스가 '보름'의 신이라는 인식이 남게 되고 태어나면서 사람들의 면역력에도 영향을 끼치는 질병의 신 '셀리네'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시작의 '초승달'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게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르테미스를 미쳐버린 '신'으로 정의 내리기도 하지만, 타락한 신은 더 이상 신이 아니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곧 아르테미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단지 이 사실을 전부 알고 있고,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것이 신인가? 타락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 진정 신인가? 신이란 무엇인가? 신은 인간의 조력자이며, 창조주일 뿐이다. 그 사실이 그들의 뜻대로 우리가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 되진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내어준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일부분을, 전부를 제어하려고 드는 것은 모순적인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가? 키워준 것에 대한 보상이란 무엇인가? 우리를 만든 자에게는 그들의 계획 속에 만들어진 우리가 성장할 수 있게 돌봐주어야 할 의무가 존재한다. 의무에 보상이 있어야 하는가? 신의 말을 따르지 않고 내 길을 찾아 나서는 사람은 '잘못된 존재'인가? 사람들은 그저 삶을 살아가는 것뿐이다. 나 또한 그렇고. 그럼에도 그들의 생각에서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나는 세상에서 지워져야만 하는가?
뒤를 돌아보면 새까만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디서 들어본 듯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나를 쫓아온다. 보이지 않아도 그 어둠에 가려진 것이 어떤 모습인지 상상할 수 있다. 네 발 달린 짐승, 날카로운 송곳니, 뾰족 솟은 귀하며 네 발끝에 달린 날카로운 발톱. 그것이 바로 휘이의 모습일 것이다. 나는 그것의 먹잇감이 될 것이며, 이 세상에서 삭제될 것이다. 그에게 한 사람의 삶은 가치 없는 종잇조각 하나와 같은가? 단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존재는 그의 장난감, 인형 하나에 불과한가? 그가 우리의 시작을 책임졌다고 해서 그에게 우리가 그에 대한 보상을 주어야 할 이유도 없으며, 그가 원하는 대로만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 신은 우리에게 스스로 할 줄 아는 힘을 알려주셨으니, 나는 그것을 따를 뿐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줄 알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알기 때문에. 신은 차례로 우리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었던 세 어머니였으니, 나는 그 가르침을 받아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었을 뿐이다.
그들의 가르침을 가지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었던 내가 고작 이 사실을 온전히 알아가고 내 뜻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면, 다시 한번 더 신은 타락했다고 감히 말할 것이다. 이 죽음의 끝에서, 부디 이 수첩이 누군가의 손에 닿길 바라며. 나는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이 수첩을 들고 최대한 멀리 도망친다.
이 수첩을 발견한 누군가가 있다면, 당신도 신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부디,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길 바란다. 쉿, 어디서 그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당신 뒤에 있는 어둠을 조심하길 바란다. 그들에게 대항하는 것은 당신이 예의 없고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그 사실을 잊지 말고 신에게 대항하길 바란다. 분명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만들 수 있다. 신이 세상을 쥐고 있다면 그 세상을 당당히 뺏어 살아가기를, 부디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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