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혹시 사람 죽여본 사람 있어?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by 도영

막상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 우선 확실한 사실만 말하자면 있잖아… 내가 사람을 죽였어. 아주 작은 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작은 바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 마음엔 폭풍이 되어 있었어. 정말 처음에 나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어. 이 작은 변화가 나한테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 줄 몰랐거든. 정말 사소한 변화였단 말이야.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야….

나는 지극히 우울하고 평범한 사람이었어. 이제 무의식의 깊은 곳에 가두어버린 끔찍한 기억도 떠올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었지. 사실 살아갈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 말했잖아, 지극히 우울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뭐 하여튼 머릿속 깊은 곳에 들어 있는 기억이 정말 삭제된 것일까? 문득문득 조각이 떠오르는데, 그 조각만으로도 끔찍했어. 머릿속 어딘가에 있는 기억들의 파편이 종종 올라와 나를 괴롭혔거든. 그때, 그냥 그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어. 아까 말했듯 이건 정말 나에게 나타난 사소한 변화였단 말이야. 기억의 파편이 하나씩 올라오는 것. 그냥 작은 울림이라고 생각했어, 지나가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에서 오는 바람이라고 생각했지. 근데 문제는 내 생각이 바뀌면서부터 시작됐어. 그 기억의 파편들이 아무리 떠올라도 꿈에서 조금 마주하다가 깨면 잊는 정도였거든? 근데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살아갈 의지가 없는 내가, 그 기억의 파편을 온전히 잡아서 퍼즐을 맞추면 살아갈 이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은 생각 말이야.


내가 살아갈 의지를 잃었다면, 그 기억이라는 퍼즐을 완성하면 살아갈 의지가 생길 거라는 추측은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에 가까워졌어. 꿈에서 올라와 마주한 조각들을 힘겹게 기억해 내서 잡아보면 어쩐지 그때의 나는, 행복해 보였거든. 분명히 살아있는 나였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그렇게 살아갈 의지가 없던 나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기억의 조각들을 붙잡아갔어.


그리고 어떻게 되었냐고? 난 행복한 내가 서있던 장소에 대해 떠올릴 수 있게 되었어. 내 집에서 차를 타고 적어도 6시간은 더 걸릴 거리였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장소로 향했어. 그곳으로 가면 다른 기억의 조각들도 금방 찾아서 맞출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지.


그곳은 어둡고 축축한,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된 지하 동굴이었어. 바다와 가까운 동굴은 입구부터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어. 어쩐지 희열이 들더라고. 그래서 나는 주춤하지 않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어. 입구부터 펼쳐져 있는 것은 피 냄새가 어디서 왔는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게 해 주더라. 여러 해양생물들과 사람의 시체, 신체, 장기들이었어. 분명 역겨운 것들인데 이상하게 구역질이 올라오진 않더라. 역시 기억 속에 있었던 걸지도 몰라. 익숙한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나는 익숙하게 동굴 속에서 길을 헤매지 않고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갔어.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어떤 제단 같은 곳이었는데, 바닥에 피로 그린 해괴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어. 맞아, 저건 분명… 내가 그렸던 거야. 마법진의 중앙에는 몇몇의 남자 시체가 놓여 있었어. 맞아, 그랬어. 여기 있는 사람의 시체, 신체, 장기는 전부 남성의 것이었어. 나는 기억의 파편을 맞춰 하나씩 떠올릴 수 있게 됐어.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우울한 여성이었어. 이렇게 여성이 차별받는 세상에서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나는 살아갈 생각뿐이었어. 근데 사실 살아갈 의지가 확실했던 건 아니었어. 말했잖아, 지극히 평범하고 우울한 여성이었다고.


사람이라는 게 참 재밌더라. 힘이 들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를 찾게 돼. 나 역시 그랬어. 나는 친구를 사귀거나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아, 그런 병든 행동은 하지 않았어. 서로에게 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 내가 의지할 곳이라고 찾은 것이 바로 '종교'였어. 어느 날 책에서 읽어본 적이 있거든. 그분께서는 우리들에게 평등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내려줄 거라고. 그게 누군가가 쓴 단순한 창작물, 어디서 흘러들어온 신화든 상관없었어. 나에게는 그 글이 법전이 되었고, 나는 그분을 섬기게 되었거든.


그분은 형태가 없어서 우리처럼 신체나 장기가 없다고 해. 그래서 그런 것들을 제물로 가져다 바치면서 그분께 기도를 올릴 수 있다고 하더라고. 아, 그분은 본인의 신체와 장기를 바쳐서 우리를 창조하셨대. 정말 멋진 분 아니니? 나는 감사한 마음에 제물을 바치기로 결정했어. 그래, 마법진 위에 올려진 저 남성들 말이야! 신을 섬기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비윤리적인 일이라고? 걱정 마, 내가 죽인 자들은 사람으로서 가치가 없는 자들이었거든. 내가 제물로 사용한 남자들 중에서는 범죄자도 있었고, 나를 여성이라고 무시하던 학교 선배도 있었어. 지나가다가 봤던 어린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늙은 남성도 있었지. 신체나 장기를 가지고 저렇게 살 바엔 차라리 그 신체랑 장기들을 그분께서 받아가는 것이 더 낫잖아?


단순히 의지할 곳을 찾던 나는, 어쩌면 존재하지도 않을 신을 만들었고 그것은 나에게 전부가 되어버렸어. 앞서 말했듯 나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망설이지 않게 됐어. 이 작은 변화가 나한테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 줄 몰랐거든. 정말 사소한 변화였거든. 아,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져.


그런 내가, 이 기억을 왜 끔찍하다고 생각하고 왜 기억 속에 가두었는지 알아? 판도라의 상자를 열 듯 이곳으로 발걸음을 돌린 나는 모든 기억의 조각을 맞출 수 있었어. 이 기억의 끝에서의 나는, 결국 절망에 빠지거든. 나는 이 짓을 홀로 30년을 해왔어. 그러면서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거든. 나는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의 주변에 있는 남자들을 모두 제물로 사용했어. 주변인의 죽음에 슬퍼하던 그에게 위로를 건네며 가까워질 수 있었지. 정말 행복했어. 제물을 바치면서 그분을 섬기니 그분께서 이런 인연도 만들어주시는구나. 나는 은혜를 받고 있구나, 생각했지.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예상하고 있지? 맞아, 그에게 내가 그분을 섬기고 섬기면서 했던 모든 행동을 들키게 됐어. 그는 내가 미쳤다고 했어. 존재하지 않을 것을 믿으며, 사람을 죽이는 범죄를 저지른다고. 내 앞에서 소리치고 울었어. 그리고 내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며 네가 믿는 것이 정말로 실존한다면 이 상황에선 어떤 은혜를 받을 수 있냐고 믿었어. 나는 그냥 시련이라고 답했어. 내 신앙심을 시험하는 시련이라고. 그니까, 너도 이 상황을 금방 이해하고 나를 믿어줄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했어. 그리고 내 앞에서 자살했지. 아냐, 이건 자살이 아니야. 명백히 타살이었어. 내가, 내가 죽였어. 내가 사람을 죽였어.


그때부터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았어. 나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목숨을 끊었어. 나 때문이야. 문득 신을 원망하게 됐어. 이런 게 시련이라면 도대체 왜 살아가야 하냐고 물으며 울었어.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지 않았어. 당연한 일이었지. 그러고 보면 나는 한 번도 그분의 목소리를, 응답이 돌아오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 한 번도, 그분의 존재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어. 진짜 존재하긴 해? 의심을 하기 시작하니까 내 세상이 전부 무너지는 것 같았어. 내가 저지른 모든 일들이 끔찍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손이 떨렸어. 결국 그도 죽었잖아. 내가 사랑했던, 너도 죽었잖아. 나는 울면서도 달리고 또 달리고, 걷고 또 걷고. 한참 긴 시간을 아무 생각 없이 걸었어. 그리고 쓰러졌을 땐, 그 기억들을 전부 무의식 속으로 가둔 후였지.


종교를 갖는 게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내가 무엇을 하든 전부 그분이 내려주신 은혜라고 생각했고, 나쁜 일이 생기면 시련이라고 칭하고 넘기면 되는 일이었어. 내 잘못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었어. 나한텐 도피처라고 생각했거든. 맞아, 나에게 종교는 도피처였어. 하지만 결국 그가 죽었고, 나는 홀로 남았어. 그분은 존재하지 않았고, 내가 그를 죽인 거나 다름없었어. 내가, 내가 사람을 죽였어. 아주 작은 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작은 바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 마음엔 폭풍이 되어 있었어. 정말 처음에 나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어. 이 작은 변화가 나한테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 줄 몰랐거든. 정말 사소한 변화였단 말이야.


결국 모든 것은 내 잘못이었고, 내가 저지른 일이었어. 내 잘못은 전부라고 말하게 되었어. 도피처라는 것은, 그냥 끝없이 도망가는 미련스러운 짓을 하기 위해 만드는 핑계라는 것을 알았어. 그것을 조금 빨리 알았더라면,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건강한 사람으로 살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어.




가끔 그런 스토리를 마주하곤 한다. 죄를 지었지만 이 모든 것은 신이나 보이지 않는 존재가 시킨 일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 자신의 죄를 덮고 싶었을 뿐이라고. 결국 망가지고 피폐해지고 엉망이 된 그의 뇌에서 나온 발상일 뿐이라고. 이 글에 담긴 주인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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