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불빛에 취해 나는, ….
날이 추워 밤엔 더더욱 밖에 나가는 일이 줄어들었다. 집에 있으면서 하는 일이라곤 글쎄, 추워서 집 안에서조차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또 쉽게 잠들지도 못하는 밤, 멍하게 앉아 있다가 새로운 취미가 하나 생기게 되었다. 그건 바로 베란다로 보이는 야경을 바라보는 일이다.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꽤 고층에 산다. 그러다 보니 밤에 베란다 밖을 바라보면 도시의 불빛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쁘게 움직이는 자동차의 빛, 아직 꺼지지 않은 건물의 빛, 늦은 시간을 밝혀주는 가로등의 빛, 멀리 보이는 등대가 힘차게 내는 빛…. 태양은 졌지만 요새는 워낙 빛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니 밤이 되어도 그다지 깜깜하지 않다. 많은 빛들이 별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종종 그 빛들을 보며 멍 때린다. 그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종종 차를 마시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땐 펑펑 울기도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빛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여러모로 마음이 편했다. 종종 쓸데없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저 차는 어디로 가는 걸까? 저 건물은 무슨 건물이지? 저쪽은 교회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항상 똑같았던 시간도 금방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매일 아침, 밤에 그 불빛들을 볼 생각에 하루를 더 열심히 보냈다. 뭐든 열심히 하면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기도 하니 말이다.
다음날이 휴일인 날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하루를 잘 마감하고 집에 돌아와 평소처럼 샤워를 하고 베란다로 향했다. 어느새 베란다에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도 생겼다. 날이 추우니 담요도 하나 두르고서 나는 의자에 앉아 베란다 밖을 바라봤다. 내일은 쉬는 날이기도 하니 어쩐지 오늘은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맥주를 한 캔 꺼내와 마시기 시작했다. 여전한 불빛들이 나를 반겨주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돌아와도 그 자리에서 반짝반짝, 계속 빛나는 불빛들이 아름다웠다.
이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정해놓고 우울해지거나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그곳에 가곤 했는데 일상이 바빠지면서 몸이 피곤해지니 어디 한 번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 나에게 이렇게 베란다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잔, 두 잔. 술을 넘길수록 괜히 눈물이 차올랐다. 나 지금까지 뭐 하고 살아왔더라? 뭐가 그렇게 바쁘고 힘들어서 이런 풍경들을 눈에 담을 여유가 없었더라? 그러고 있다 보니 괜히 오늘은 밖에 나가서 그 불빛들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맥주 한 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마스크도 쓰고, 따뜻한 목도리도 잘 두르고 두꺼운 양말에 털이 달린 신발, 겨울에 입고 다니는 털 점퍼까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고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는 것은 역시 길목마다 보이는 가로등 불빛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다가 내가 가로등을 올려다보게 되니 좀 기분이 묘했다. 목적지 없이 가만히 가로등이 이어진 길을 따라 걸었다. 꽤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이 몇몇 다니는 게 가로등 아래로 흔들려 보인다. 이제야 퇴근을 하는 사람도 있고, 간단하게 무언가 사러 편의점으로 향하는 사람도 있고, 밤거리를 걷기 위해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어둡고 추운 길을 걸어가고 있었구나. 나는 계속해서 가로등 불빛을 따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둠을 밝히며 앞으로 나아가는 자동차 불빛들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목적지가 어딘지 알 수 없는 자동차 불빛들을 따라 걷다 보니 주변에는 불 켜진 건물들이 보인다. 건물의 불빛은 꺼진 층도 있었고, 켜진 층도 있었다. 꼭 테트리스 블록 같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친다. 늦은 시간이라 불이 완전히 꺼져있는 어두운 건물도 많았지만 드문드문 그렇게 켜진 건물이 몇 개씩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계속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면서 바라본 이 불빛들을 가까이에서 보니 더 밝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 날인데도 불구하고 저 빛들이 마치 불이라도 되는 듯 따스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밝은 불빛들 사이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나는, 정말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없이 차가웠던 나는 따스함에 취해 동네를 벗어나 번화가까지 걸어 나왔다. 늦은 시간이라 가게들도 거의 문을 닫았지만 드문드문 열린 곳이 보인다. 집으로 향하는 건지, 술을 마신 건지 무리 지어 걸어가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다시 시린 기분이 든다. 이곳에는 불빛이 드물어서 그렇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까? 걸어갈수록 더 추워진다. 날이 추우니 당연한 소리기도 하겠지만 몸이 점점 움츠러들었다. 이제 이 번화가를 지나가면… 구석진 곳, 버려진 항구,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해안가가 나온다. 모래사장도 잘 깔린 자갈도 없는 길 끝에 바로 보이는 바다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곳에는 버려진 등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 등대는 이제 빛을 내지 않지만 나는 그 빛을 본 적이 있다. 매일 밤, 베란다에서 그 빛을 바라봤었는데. 이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고 난 후로는 이곳을 폐쇄하고 등대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 등대는 늘 빛을 내고 있었고, 그 빛이 내가 서있는 육지 쪽을 비출 때 나는 등대 불빛에 취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불빛에 취해 나는…….
"야, 그거 들었어? 그 바닷가 귀신. 어제 철이가 오토바이 타고 배달 나가면서 지나가다가 봤대. 놀라서 기절하는 줄 알았단다."
"에이, 진짜야? 그 월하 등대 귀신 나온다는 소리가 아직도 나오는 거 보니 진짜 있나…? 개 소름 돋아."
시간은 참 많이 흘렀다. 한 여성이 월하 광역시 외곽 바닷가에 투신을 한 것도 1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추운 겨울이 되면 꺼진 등대를 바라보고 서있다가 바다에 몸을 던지는 귀신을 본 적 있다는 사람들의 말이 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그곳을 월하 등대 귀신, 바닷가 귀신이라고 불렀다. 그는 자신이 죽은 것도 모른 채 매일같이 추운 날이면 그곳을 나서는 듯했다.
그 불빛에 취해 나는, 죽었다. 하지만 죽지 못했다. 내가 바라보며 걸었던 불빛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불빛들을 계속 눈에 담고 싶어서, 쉽게 떠나질 못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매일, 기억을 지우고 다시 또 걷고 걸을 것이다. 다시 그 길을 걸어 내 하루를 마감할 것이다.
안녕, 따스한 불빛. 안녕, 차가운 겨울. 안녕, 눈물 나게 시린 바다의 품.
가끔 베란다로 멀리 보이는 바다와 도시 불빛들을 바라보곤 한다. 한참 소재가 안 떠올라 고민이었는데 불빛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난 것이 최근 즐겨보는 '괴담'들이었다. 많은 괴담이나 귀신 이야기를 접했지만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몰라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자살하는 귀신의 이야기들이었다. 그것을 담아 헤카테 유니버스 세계관 속 다양한 사람들 중 하나로 표현하게 되어 나온 글이다. 죽음에 닿은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죽음에 닿았을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닿았다고 하더라도 전부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그 모습들이 담긴 것이 '헤카테 단편: 각기 다른 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