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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레이 Sep 19. 2021

에펠탑 앞에 가면

《너 진짜 축구 싶냐?》

살다 보면 용기 내지 못한 것을 평생 후회하는 일이 있다. 고백하지 못했던 첫사랑, 주저하다 놓친 눈앞의 연예인과의 인증샷, 뛰지 못한 번지점프까지. 실은 눈 딱 감고 5초만 용기를 냈다면 바뀌었을 순간들인데, 그때는 왜 그렇게 용기내기 힘들었을까.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는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들과 파리지앵들이 눕거나 앉아서 와인과 차를 마시는 잔디밭이 있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조금 더 걸어가면 족히 180cm는 될 것 같은 이름 모를 키 큰 꽃들이 빽빽하고 가지런히 정돈되어있다. 여행객들이 예쁜 정원으로 여기고 넘어갈 이 안에는 작은 축구장이 하나 있다. 나도 자전거를 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우연히 알게 된 곳이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는 내 또래쯤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너무 끼고 싶었다. 파리에서 파리지앵들과 함께하는 축구라니 멋지잖아. 하지만 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별의별 걱정과 불안들이 마음속에 피어났다.

'어떡하지, 껴 달라고 말이나 해볼까?'

'혹시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면 어쩌지?'

'내 영어를 알아듣기는 할까?'

한참 동안 그들을 구경하며 고민했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하면 너네는 다 끝이야! 한국인의 매운맛 좀 보여줄까? 두유 노우 지성팍?!'을 수없이 외쳤지만 결국 용기 내지 못했다. 웬 동양인 하나가 간절한 표정으로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는 게 의아했던지 그중 한 녀석이 나를 보며 말을 걸었다. 하지만 쑥스러움인지 부끄러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던 나는 자전거를 끌고 이내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여행을 마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그날 일은 잊히지 않고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용기 내지 못해 에펠탑 앞에서 축구하는 경험을 놓쳐버린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때는 유럽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 대학교 4학년이 됐다. 열심히 아르바이트하며 모아둔 돈으로 졸업 전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여러 길 중에서 내가 선택한 순례자의 길은 프랑스의 '생장'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스페인 땅 끝까지 걷게 되는 코스였다. 가장 보편적인 코스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파리에 한 번 더 가보고 싶었다.

비행기로 14시간을 날아 5년 만에 다시 파리를 찾았다. 밤늦게 도착한 나는 숙소로 이동해 짐도 풀지 않은 채 씻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서울 따릉이 같은 파리 시내의 공유 자전거를 빌려서 파리 구석구석을 돌았다. 지금은 화재로 인한 재건 작업 중인 노트르담 성당을 지나,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서 몇 시간 동안 앉아 모네의 그림과 관람객들을 구경했다. 미술관을 나와서는 정원에 놓인 초록색 의자에 앉아 낮잠을 잤다.


마지막으로 에펠탑에 갔다. 여전히 잔디밭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도 가득했다. 여전히 축구장은 관광객들의 시야 밖에 있었다. 텅 비어있던 축구장에는 얼마 안 가서 흑인부터 백인, 아랍인에 어린이와 어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다시 한번 축구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두 번 다시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용기를 냈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나도 축구에 껴줄래?"

"뭐라고? 나 영어 잘 못해..."

"음... 나도 너희랑 같이 뛰어도 될까?"


나보다 영어를 못하던 프랑스인 친구와 바디 랭귀지를 섞어가며 대화를 했고, 마침내 무리에 섞여 축구를 하게 됐다. 등산화를 신고 있어 뛰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My ball!", "Pass me!"를 외치며 아시아인의 축구 실력(?)을 뽐냈다. 한 시간 가량 땀을 흘리고,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함께 뛴 친구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악수를 나누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같은 장소였지만, 5년 전과는 전혀 다른 감정에 만감이 교차했다. 묻혀 있던 후회와 아쉬움도 모두 사라졌다.


그 후로 다시 5년의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그날의 축구 경기가 생생히 떠오른다. 그건 아마 에펠탑이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오랫동안 후회했던 일을 바로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엇인들 어떠랴. 작은 용기를 낸 덕분에 나는 파리가 더 좋아졌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 더 얻을 수 있었다.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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