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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레이 Sep 19. 2021

지오디 오디션

《너 진짜 축구 싶냐?》

육아일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국민그룹 지오디.

나도 지오디 오디션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게 지오디는 파란 하늘, 하늘색 풍선이 아닌 운동장의 꿈, Ground Of Dream의 'G.O.D'다. 선배님들께는 죄송하지만, 이 '오글거리는' 이름은 나의 모교 일산 백석 고등학교 축구부의 팀명이다. 입학했을 때 백석고 축구부 지오디는 고등학교 동아리라고 믿기 힘들 만큼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 신입부원과 2, 3학년 선배, 졸업한 OB들까지 1명씩 묶는 '직속'이라는 제도로, 선후배 사이에 진짜 가족 같은 끈끈함을 만들어주었다. 또 점심시간, 저녁 시간에는 운동장 사용 스케줄을 짜서 학년별로 지오디 배 축구 리그와 1, 2, 3학년을 섞은 컵대회를 운영했다. 마치 EPL처럼.

이런 체계적인 운영과 뛰어난 실력으로 지오디 축구부는 두터운 신망과 인기를 유지했다. 그 덕분에 매년 3~4월에 진행되는 축구부 신입부원 오디션은 학교 전체의 관심이 집중되는 빅 이벤트였다.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초, 쉬는 시간마다 선배들이 교실로 들어와 동아리 홍보에 열을 올렸다. 예쁜 누나들과 잘생긴 형들이 있던 등산 하러 가지 않는 등산 동아리부터 교회 찬양 동아리, 만화 동아리, 과학 동아리에 합창부까지 각각의 방식으로 동아리를 알렸다. 짧게 돌아가면서 동아리에 대한 소개, 선발 방식들을 알려줬는데 아이들은 집중해서 들으면서 각자 지원할 동아리를 정했다. 하지만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오직 축구부, 지오디에 지원할 생각뿐이었으니까.


지오디는 신입 지원자들에게 1~3순위 희망 포지션을 받고, 팀을 나눠 오디션 매치를 진행했다. 따로 선발 기준이 공개되지 않았는데, 후에 들어보니 기본적인 실력부터 경기 중 보이는 매너, 팀플레이 등이 골고루 평가됐다. 백석고의 모든 축구인들이 보는 공개 오디션이었기 때문에 공정했고, 인맥 축구는 불가능했다.

오디션은 쉽지 않았다. 경쟁자들의 실력을 떠나, 운동장 스탠드와 화단을 가득 채운 수 백명의 선배들 앞에서 축구를 하는 일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평소 같으면 쉽게 처리했을 플레이에도 실수를 연발했고, 금세 호흡이 딸렸다. 더욱이 심사하는 지오디 멤버 중에는 중학교 때 시합에서 만난 선배들도 있어서 더 부담스러웠다.

1차, 2차 오디션을 마치고 최종 오디션 매치만을 남기고 있었을 때는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매점에서 마주친 선배들의 힘내라는 작은 위로 한 마디에 코 끝이 찡해질 정도였다. 그렇게 마지막 최종 오디션 매치도 끝났다. 1주일간 펼쳐진 3번의 오디션 매치를 마치고, 구령대 앞에 모여 2학년 주장 선배의 호명을 받고 마침내 지오디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큰 감흥이 없이 얼떨떨했던 기억.


오디션 매치에 대한 기억이라곤 운동장을 둘러싼 전교생들의 고함소리, 긴장감과 아드레날린으로 터질 듯하게 뛰던 심장소리뿐이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떨렸던 걸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정말 축구부에 들어가고 싶었나 보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 나는 지오디에 들어가기 위해 이 학교에 왔다'라는 생각이었을까.

그때의 오디션 경험 덕에 연예인을 꿈꾸는 연습생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오디션 경연 무대를 보고 있다면, 그들이 얼마나 간절한지, 얼마나 절박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서서 관객들을 바라보는지 알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분명 꿈을 좇는 것만으로도 빛나는 존재들인데, 괜스레 안쓰럽게 느껴진다.


오디션은 모두에게 기회를 주지만 전부 데려가지는 않는다. 너무도 현실적이고 차갑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그 차가운 오디션조차 너무도 소중하고, 감사한 기회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묵묵히 먼발치에서 오디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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