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구리작업실 Apr 11. 2024

#6. 화초를 보살피는 마음으로

 얼마 전 SNS에 올라온 친구 A의 게시글을 보았다.

내가 알기론 6마리의 고양이, 대형견 1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친구다. 그런데… 얼마 전 키우던 고양이 한 마리가 현관문이 열려있는 사이에 밖으로 나갔고, 고양이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고, 안타까운 마음이 몰려왔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상상을 하니, 마음이 더욱 좋지 않았다. 만약에, 고양이를 잃어버리는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집 나간 고양이를 찾아주는 고양이 탐정도 있다던데.

그 심정이 어떨까… 사실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안타깝고 초조하고 불안한 사건일 게 뻔했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지고, 먹먹하고, 불안하고, 어찌해야 하는지 , 머릿속이 막막할 것 같다.

막상 내 일이 된다면, 오히려 이성을 차리려고 가진애를 쓸지도 모르지만,,,  경험해보지 않은 이상 알 수가 없다. 그런 일이 없도록 문단속을 잘해야겠다는 다짐만 여러 번 되새길 뿐이다.


며칠이 지난 오늘, 문득 친구의 고양이 소식을 묻기 위해 문자를 보냈다. 평소에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라서 좀 뜬금없긴 했지만, 같은 반려인으로서 마음이 쓰였다.


나의 안부에 이런 내용의 답장이 왔다.


‘못 찾았어.’

…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그냥 인연이 여기까지. 찾으면 찾겠지’

‘그냥 거기까지인 거야’

‘괜찮아’

‘그냥 할 만큼 했다 생각해’

‘고마워’

‘힘든 날들이 지나간다’


친구의 답장을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차올라 혼자서 훌쩍거리곤 이내 콧물을 펭~하고 풀어냈다. 나 또한 다묘가정의 반려인으로써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깊은 슬픔을 마주했을 친구의 감정이 어떤 것 일지 짐작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지만, 어렴풋이 전해지는 슬픔에 더욱 마음이 아파왔다.

그래… 얼마나 힘들었을까.

갑자기 울리는 안부문자에 한마디로 말하기엔 너무 많은 심경들이 오고 갔을 테지. 친구의 덤덤하고, 체념한 듯한 글 속에서 먹먹하게 소리 없는 슬픔이 차올랐다.

이런 순간 가장 어려운 것이 위로의 말인 것 같다.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깊은 상심에 대해 어떤 마음을 전해야 할까. 늘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이 순간 나의 시각에서 나의 감정의 무게로 친구의 마음을 공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럽다.


잠시 후, 다른 친구에게 친구 A의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소식하나를 알게 되었다. 불과 며칠 전 친구 A가 키우던 다른 고양이 한 마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이었다.

아…. 세상에나…

나는 친구 A의 SNS에 들어가 최근 소식을 둘러보았다. 또 다른 고양이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장례를 치르고, 화장터 안에 곤히 잠들어있는 고양이를 보는 순간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냥 슬펐다. 마지막 모습이라는 것에. 불과 며칠사이에 두 마리의 반려묘가 떠나간 친구의 심정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그저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깊은곳이 저려오는 아픔이 전해진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선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남의 일 같지 않다. 그간 이별했던 순간들, 언젠간 떠나게 될 나의 반려묘들, 언젠간 떠나게 될 인연들.’

그 순간 그동안의 상실과 관련된 기억과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온 듯, 잔잔하고 묵직한 감정이 조용히 휘몰아치는 느낌이었다. 나는 조용히 카페 화장실로 들어가 눈물을 떨궈내고, 고인 감정을 시원하게 풀어내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곤 감정을 추스르며 하던 일에 다시 집중을 하고, 친구와의 대화도 가볍게 마무리 지었다.


예상치 못한 이별로 인한 슬픔.

친구 A의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 마음 안에 담긴 시간들과 감정들이 어떤 식으로든 남아 지금을 살아가는 친구에게 또 하나의 삶의 의미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맺어진 인연들과 연결된 감정들이 화분에 심어진 화초의 뿌리처럼 수없이 많은 잔뿌리들을 내린다. 화초의 가느다란 잔뿌리들은 서로서로 복잡한 관계를 맺고, 서로 이어가며 영양분을 전달해 화초가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잔뿌리들이 지나치게 많아져 화분 속을 꽉 매우게 되면, 화초는 결국 제 색을 내지 못하고 이내 시들시들 해진다.


이러한 잔뿌리들이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우리 내면의 감정들이란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감정들도 다양한 관계 속에서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서로 연관되어 살아간다. 너무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다. 이런 삶의 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뿌리옆에는 수많은 잔감정들이 자라난다. 그것이 우리를 살아가게도 하고,  시들하게도 만들고, 때로는 성장을 멈추게 한다. 마음의 잔뿌리들이 지나치게 많아짐을 스스로가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깊은 슬픔에 빠지거나, 우울해지거나, 무기력해지거나, 숨이 안쉬어지거나.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차오르거나, 나란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고,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거나, 툭하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사소한 것에 불같이 화가 나거나, 쉽게 짜증이 나거나, 소소한 즐거움과 기쁨을 모르고 살아가거나,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두렵거나, 지금 나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를 모르거나, 나는 물론 타인과의 소통을 피하거나, 어려울 때, 어떤 감정을 더 이상 못 느끼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면, 겉으로 쉽사리 보이지 않는 마음은 점점 더 시들시들 병들어 간다.


마음속 잔뿌리들이 꽉 들어차기 전에 알아차리고 잘라내는 시도를 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너무 깊은 우물에 빠진 경우엔 그 또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평소에 조금씩이라도 나의 마음에 대해 가볍게 글로 끄적이거나,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사진으로 남겨보는 방법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 아주 진지하게 깊이있게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가볍게 가볍게 시작해 보는 것을 추천 한다. 이런 시간을 갖다 보면 처음엔 어렵고 어색할지 몰라도 점차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내면의 감정들이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알아차리게 된다면 나를 시들게 만드는 불필요한 잔뿌리들을 적당한 때에 미련 없이 잘라낼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내가 키우는 화초들은 봄이나 가을철에 분갈이를 해준다. 귀찮다고 시기를 놓쳐버리면, 잘 자라다가도 어김없이 시들시들해지거나 병들어 버린다.


적당한 때에 애지중지 키워온 화초가 다치지 않도록 화분에서 조심스럽게 꺼내어 필요이상으로 많아진 잔뿌리들을 적당하게 쳐주고, 아쉬움 없이 똑똑 잘라내야 한다. 잘라낸 잔뿌리들은 미련 없이 깨끗하게 버린다. 다시 화분의 맨 아래에는 거름망을 깔아 흙이 마구 새어나가는 것을 막아줘야 한다. 그리고 물 빠짐이 잘 되도록 화분의 5/1 정도를 굵은 흙으로 먼저 채워주고, 그다음 새로운 흙과 기존의 흙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1/3정도 채워준다. 그 위로 적당하게 다듬어진 화초를 손으로 지지해 세운다. 화초 주변으로 흙을 골고루 채워가며 흔들리지 않도록 심어준다. 물론 영양분이 많은 새로운 흙으로 채워주는 것을 추천한다.


오늘 친구와의 짧고 담담한 대화 속에서 그간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수는 없었다. ‘담담하면서도 체념한 듯, 감정이 숨어있는 대화 속에는 그간 경험했을 감정의 잔뿌리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잘리고, 상처가 났다가 다시 아물고, 또다시 자라고 있겠지’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키우던 화초가 더 단단하고 유연하게 자랄 수 있도록 적당한 때에 분갈이를 해주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때에 따라 속깊이 들여다보고 다듬어주며 새로운 흙으로 채워주는 보살핌이 필요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화초를 보살피는 마음으로 살아가야지















이전 05화 #5. 제주도가 나에게 주는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