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좀 소원해진 브런치에 다시금 글을 써보려고 줄 없는 노트를 꺼냈다. 손가락이 좀 불편해서인지 펜을 쥐고 쓰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쉬운 과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노트북에 쓰고 지우는 것보다 마음이 편하다. 쓱쓱 썼다 지웠다 하며, 좀 지저분한 흔적이 남아 있는 생각들을 다시 정리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쓰지 않는 동안에도 마음 한구석엔 ‘글을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난날의 글쓰기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친언니의 소개로 알게 된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오, 그런 게 있구나. 나도 한번 써볼까…?‘ 였다. 그다음은 ’ 나에게 글 쓰는 재주가 있을까…? 글이란 건 표현력도 풍부하고 지식도 많아야 잘 쓸 수 있는 것 아닐까’ ‘내가 글을 쓴다면 어떤 주제로 어떻게 써야 하지..?‘에 대한 생각들이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브런치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었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내 글을 보게 될 텐데 ‘나의 글을 읽어 줄 것인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앞서 가곤 했다. 하지만 아무런 답이 내려지지 않았다.
생각을 전환시켜 보기로 했다. ‘글쓰기 실력이 부족한 내가 진심을 담아 글을 쓰고, 그 글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지. 그리고 나의 글이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더 망설이지 말고 어디 한 번 써보자.
브런치에 연재한 [덕을 쌓은 고양이]의 주인공 ‘미덕이와의 만남‘을 주제로 첫 글을 써내려 갔다. 미덕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과 그때의 공기 생각 느낌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환기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담아보려고 했다. 역시나 첫 시작이 쉽지 않았지만, 글로 쓰기 전보다 선명해지는 기억과 마음들이 그때로 돌아간 듯 생생해지곤 했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또 읽으며 여러번 고쳐가며 글을 썼다. 한 편의 글을 쓰고 나서 작가 신청을 하면 되는 줄 알았고,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동구리작업실 작가라고? 생경하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작가라는 단어 하나가 더 붙었을 뿐인데 ‘작가’에 걸맞은 글쓰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경험하지 못한 묘한 책임감이 올라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 소재들과 호기로운 마음 앞엔 뚜렷한 길과 답이 없는 ‘줄 없는 노트’ 같은 텅 빈 여백이 놓여 있었다.
나는 글을 써보기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북카페를 찾아갔다. 그곳에 앉아 있노라면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타닥타닥 타자 소리, 샤락 책장 넘기는 소리들이 서로 어우러져 들려온다. 나는 창밖의 나무와 풀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내 앞에 펼쳐둔 텅 빈 화면을 바라본다. 낯설기만 한 글쓰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창 밖의 허공으로 시선을 돌린다. ’ 나의 진솔한 이야기가 잘 전달되는 글을 쓰고 싶다… 잘 읽히고 마음 따뜻해지는 글을 쓰고 싶다. 하… 시작도 하기 전에 은근히 욕심이 많은 건가’ 하며 내 마음을 알아챈다. 그리곤 몇 발자국 앞서나간 ‘욕심’이란 녀석을 슬며시 끌어당겨 보았다.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에 대한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보았다.
지금의 글을 쓰는 의미
브런치를 시작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았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려 한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 중에 하나는 소소하지만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글로 남겨 오래도록 추억하기 위함이었다. 또 하나는 예전의 나란 사람을 다시 만나고, 지금의 나를 바라보고, 앞으로의 나를 상상해 보기 위함이었다.
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때로는 가슴이 뜨거워져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고, 다시금 몽글몽글한 마음으로 그때의 순간들로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그 시간 속에서 진심이었던 나를 발견하고, 지금의 내가 되어 되새겨 보기도 했다.
그런데 열정에 움직였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덜컥거리기 시작했다. 정해진 요일에 독자와의 약속을(나와의 약속이기도 한) 지키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럴만한 마음의 여백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글의 소재가 아니었다.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 무겁게 느껴졌다. 글 쓰는 시간도 누릴 수 없다는 생각에 줄 없는 노트의 여백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려 버렸다. 이런 마음 상태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어둡고 무거운 마음을 털어내고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나의 마음과 상황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다. 언젠가 또 이런 시간이 찾아오겠지만, 지나고 보니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텅 비어 있는 노트에 다시금 글을 쓴다. 내 마음을 털어보고 주워 담아 보듬어주고 싶어 져 다시 글을 써본다. 나처럼 글 쓰는 재주가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왜 글을 쓰고 싶은지 (글을 쓰는 이유와 동기), 글을 통해 무엇을 기록하고 싶은지, 나를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찾아가다 보면, 내 안의 생각이 트이고 마음의 길이 열리면서 글의 방향이 서서히 잡혀가지 않을까. 글 안에 쓰이는 어휘들이 쉽거나 평범하거나 혹은 어렵거나 그 정도와는 상관없이 나의 진심과 있는 그대로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다 보면, 스스로 내 글이 좋아지고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도 함께 올라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렇게 글쓰기에 대한 마음을 다시 다잡고 꾸준히 쓰다 보면 점점 더 유연하고 자유로운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지난날 글쓰기의 의미
지난날 나의 글쓰기는 주로 과제를 위한 것이었다. 심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미술심리치료학을 배우면서 ‘나를 찾기 위한 분석적인 글쓰기’를 주로 해야 했다. 시작도 과정도 끝도 쉽지 않은 글쓰기였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해야 했는데, 결국 ‘나로부터 시작’ 해야 하는 글쓰기였다. 그때에도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지만, 나에 대해 세부적으로 깊이 있게 다가가야 하는 글쓰기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찾아가며, 나에 대한 갈증을 해소’ 해 주었던 것 같다. 스스로를 탐색하고 분석하며 성찰하는 과정은 그만큼 나에게 솔직해져야 하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어디까지, 얼마나? 솔직해져야 하는 걸까. 내가 몰랐던 혹은 차마 꺼내고 싶지 않았던 내면까지 들여다보는 것이 두렵고 어색했지만, 알고 싶었다. 나에 대해서. 그 시절 내가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조금 두려운 마음도 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나에게 집중해 있던 시간들이라 좀 낯간지러운 모습들이 드러나 있을 것 같아서다. 어쩌면 ‘어이구~ 이렇게까지 나를 생각했었구나. 열심히도 살았네’ 하며 기특한 마음으로 어루만져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미술치료사가 되었고 발달 및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동, 청소년들을 만나게 되었다. 미술치료를 받는 이유는 만나는 내담자들만큼이나 다양했다. 그들의 다양한 케이스를 ‘치료 일지’에 작성해야 했다. 센터에서 필요한 기본 서류형식에 맞춰 짧게 요약해서 적어야 하는 그야말로 형식적인 글쓰기였다. 물론 치료를 위해선 치료 목적, 방향, 계획 등의 수립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것을 문서화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이런 형식적인 ‘일지’가 작은 걸림돌이 되었다. 치료일지에 내담자가 보이는 비언어적인 표현들과, 언어적인 표현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록하다 보면 정해진 칸을 넘어가기 일쑤였다. 내 손가락이 아플지언정 내가 보고 관찰한 그들의 행동과 변화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내 기억력이 썩 좋지 않은 이유도 포함. 물론 치료계획을 세우고 수업을 준비하기에도 늘 빠듯한 시간들이었다. 좁은 칸 안에 깨알 같은 글씨로 꾸역꾸역 써 내려간 기록에는 없는 시간도 쪼개어 힘들게 작성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나와 함께하는 그들의 변화를 위한 기록이었기 때문에. 이때의 글쓰기는 ‘나’에서 ‘타인’으로 초점이 바뀐 글쓰기였다. 주관적인 내가 아닌 객관적인 시각으로 타인을 바라봐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부모 상담을 할 때에도 내가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듣고 바라보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했다. 때때로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도 최대한 치료사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이입하지 않고,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글쓰기를 해야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온전한 객관적 글쓰기가 가능할까 싶다.
지난날 글쓰기의 의미를 생각하다 보니 글쓰기 능력과는 별개로 주관적인 글과 객관적인 글을 경험해 본 것을 알게 되었다. 글 쓰는 것에 대해 어렵게 생각했던 내가 ‘자의든 타의든’ 쓰는 활동을 간간이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지금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아주 조금 자신감이 올라가는 중이다.
줄 없는 노트에 글을 씁니다.
나는 ‘줄 있는 노트’보다 ‘줄 없는 노트’를 좋아한다. 그 이유는 정해진 줄(혹은 칸)에 맞춰 써 내려가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고, 노트에 줄이 없으면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원하는 방향으로 구성하는데 도움이 된다. 생각을 꺼내어 그리거나 끄적이거나 마구 지울 수 있는 자유로움이 주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진다.
때론 보이지 않는 줄에 맞춰 또박또박 쓰려해도 한쪽으로 기울어져 춤을 추는 글씨들을 보면 마음이 언짢긴 하지만. 그럼에도 텅 비어 있는 여백 위에 나의 의지로 하나씩 새겨지는 흔적들이 나름의 방향을 잡아가고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좋다.
나의 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백지에서 시작해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글쓰기가 막막하면서도, 나라는 사람을 거쳐 하나씩 흔적이 새겨지는 과정에 매력을 느낀다.
유머라곤 별로 없고 진지한 성향이라 재미없고 무거운 글쓰기가 되진 않을까 걱정한 적도 있었다. 뭐 어쩌겠는가. 어쩔 수 없이 나라는 사람이 드러나는 글이 되겠지. ’때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글, 무겁지만 담담한 글, 따스운 마음을 나누고 싶은 글’ 어떤 글이 될지 모르지만, 나를 가볍게 꺼내어 쓰고 싶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본다.
글 쓰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고,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글 쓰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몰입해 보고 싶다. 무엇을 어떻게 쓰든 글에 담긴 의미는 곧 나의 의미와 가치가 될 테니, 소중히 다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