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ul 여진 May 07. 2024

진짜 엄마가 나타났다.

   9살, 10살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겨울이었다. 사진 속에 보이는 그대로 겨울 점퍼를 입고 있고,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오빠와 바꿔 입은 그 점퍼다. 그 점퍼를 입고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엄마를 찾아 나섰었는데, 엄마가 찾아왔다. 분명한 건 은진이와 오빠가 엄마를 찾아 나섰던 그날 이후에 찾아온 것은 맞다.


   은진이는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었고, 학교 마치면 늘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질 무렵에나 오는 오빠가 느닷없이 할머니에게 은진이를 데리고 가야 한다며 다급히 은진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영문은 모르지만 장사 안 하고 어딘가로 가는 것 자체로 기분이 좋아서, 마냥 신나서 오빠 뒤만 보며 따라갔더니, 골목길에 어떤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둘을 보며 웃으며 다가왔다. 오빠는 이미 알고 있는 듯 웃으며 달려가더니 "데리고 왔어요!" 자랑하듯 말했다.


   "은진아, 엄마야. 알아보겠어? 이 분은 외삼촌이야" 엄마가 은진이에게 다정하게 눈높이를 맞추고 앉아 말을 거는데, 낯설고 어안이 벙벙한 은진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쑥스러워한다. 사실 그때 감정은 쑥스러운 감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낯설고 어색하고 두려운 감정에 가까웠다고 할까. 어쨌든 좋은 감정으로 기억하진 않는다.

낯설어하는 은진이의  손을 잡고 문방구를 향해 장난감을 사고, 돈가스 집에 가서 돈가스를 먹고, 미용실에 가서 은진이의 결정권 없이 커트를 시켰다. 그때 처음으로 돈가스와 수프를 먹어 봤다.

가난했던 은진이에겐 최상급 뷔페 레스토랑에 간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라, 그날 기억 중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게 '잘 사는 집안 아이'처럼 느껴지게 해 줬던 돈가스 매장 사장님과 그 매장의 분위기, 그리고 그때 먹은 '수프'다.


   저녁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은진이는 오빠만큼 편하게 웃지도 못했고, 오빠처럼 자연스럽게 '엄마'라고 부르지도 못했다. 왜인지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죄짓는 기분도 들었고, 그냥 그 상황이 굉장히 불편했다. 그럼에도 헤어지기 전에는 또 아쉬웠고 슬펐던 것 같다. '수프'가 너무 맛있어서였을까 엄마와 외삼촌과 보낸 시간보다 수프 맛이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8시가 넘어 집으로 들어갔던 것 같은데, 갑자기 동생을 데리고 나가선 밤이 다 되어서야 들어오니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큰 오빠까지 걱정반 노여움 반으로 기다린 듯 보였다.

장난감은 어디서 났냐는 물음에 은진이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고, 오빠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둘러 댔다. 한참을 추궁한 끝에 결국 오빠는 엄마가 찾아왔었다 이실직고하게 됐다.

오빠가 가장 먼저 엄마와 외삼촌을 만났고, 셋이서 이미 점심도 먹고 여기저기 둘러보며 놀다가 은진이는 어디 있냐는 물음에 "찾아올게!" 하고선 그렇게 은진이를 데려가게 된 거였다. 할머니는 그때부터 은진이를 유독 더 싫어했다.


   여전히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은진이가 완전한 외탁이라 엄마 얼굴을 빼닮아서가 아닐까 지레 짐작 해본다. 어찌 되었건 그날 이후 꽤 오래도록 엄마에게 전화가 왔었다. 은진이나 오빠가 받지 않는 날은 끊어 버리고, 그렇게 거의 중학생이 다 되어 갈 때까지 오빠와 연락을 주고받다가, 어쩌다 걸렸는진 모르겠지만 아버지에게 걸려서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는 불호령이 떨어지고 , 이사를 가고 전화번호를 바꾸게 되면서 다시 연이 끊겼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연락이 끊겼다고 생각했는데 은진이 모르게 오빠는 계속 엄마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