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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ul 여진 May 02. 2024

무일푼으로 서울에 있는 엄마를 찾겠다고 나선 남매.

   은진이가 9살, 10살쯤이었을 거다. 두 살 터울 오빠와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던 어느 날. 갑자기 엄마를 보러 가자며 길을 나섰다. 누가 먼저 엄마 이야길 꺼냈는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빠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은진이의 손을 잡고 대문 밖을 나서던 장면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버지 장롱에 항상 낡은 아로나민 깡통이 있었고, 거긴 인감도장이랑 통장 그리고 오래된 옛날 신분증과 낡은 지폐 한 장이 있었다.

우리나라 돈은 확실히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한문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5라고 적힌 숫자가 선명히 기억나고 그게 얼마짜리인진 여전히 모른다.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옛날 돈을 은행에 가져가면 현재 돈과 바꿔주기도 하고, 때론 더 비싸게 쳐준다며 오빠는 그 지폐를 들고 위풍당당하게 집을 나섰다.

그러나 은행 앞에 도착하자마자 위풍당당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곤 은진이에게 떠 넘긴다. 사실 늘 그랬다. 여우 같은 놈이라 어른들 앞에선 현명하고 지혜로운 척하면서 영락없는 그냥 애였다는 걸 너무 많이 봐와서 그 태도가 놀랍지도 않았다.


   그러나 은진이는 낯가림이 심했고, 사람들 앞에선 주눅이 들어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아이였으니 싫다고 못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자꾸 떠 넘기니 부담이 되고 무서워서 눈물이 덜컥 쏟아졌다.

은행 앞에서 사람들 보는데 갑자기 동생이 엉엉 울어대니 은진이 손을 잡고 부리나케 도망가듯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로 30분이면 세 번이나 돌 수 있는 거리지만, 쪼그마한 아이 둘에겐 제법 먼 거리를 돌아다닌 셈이다. 걷고 걷고 그냥 골목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돈이 있을 턱 없었으니 종일 쫄쫄 굶은 상태였다. 청룡동에서 구서동이 되는 거리까지 갔다가 길을 모른 채 골목을 따라 걸었더니 다시 두실이었다가 남산동이었다가 다시 청룡동으로 발걸음이 닿았다.

집에 꽤 멀리 떨어진 오르막 길에 트럭 한 대가 있었는데, 남색 천으로 둘러져 있었고 뒷면은 뚫려 있었다.

오빠가 은진이를 발을 받쳐 먼저 올려주고 본인도 올라탔다. 배도 고프고 너무 오래 걸어 잠이 쏟아져서 둘이 몸을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한 참 자고 있는데 갑자기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겁이 났지만 오빠는 괜찮다며 은진이를 안심시켰지만 겨울이라 밤이 되니 너무 추워 더 이상 잠이 오질 않았다.

"오빠~ 너무 추워" 은진이의 말에 오빠는 입고 있던 점퍼를 벗더니 바꿔 입자고 했다. 바꿔 입고 보니 오빠 점퍼가 오히려 덜 따뜻했다. 그럼에도 그 어린 나이에 동생 위한답시고 벗어 준 오빠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 다시 바꿔 입자는 말도 못 하고 은진이는 밤새 벌벌 떨며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해야 했다.

제법 시간이 지나고 차가 멈춰 섰고 차 주인이 내리는 소리가 들려서 잠시 숨 죽이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처음 그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차에서 내려 은진이를 데리고 범어사역 방향으로 향해 걸었다. 범어사역 지하철 안에는 지하로 건너라고 늘 불이 켜 있었고 공중 전화기가 있었다. 그 시각이 밤 12시가 되기 전 아마 11시 30분쯤 되었던 것 같다.

못난 오빠는 또 은진이에게 집에 전화할 것을 강요했다. 이쁨을 한 몸에 받고 사랑도 한 몸에 받는 놈이 혼날까 무서워서 동생에게 자꾸 떠 넘기니 은진이는 무서운 아버지 눈빛이 생각나 극구 싫다며 이럴 거면 나 혼자라도 도망갈 거라 하니 마지못해 오빠가 수화기를 들어 집에 전화했다.


   "여보세요"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은진이 귀에 수화기를 갖다 대 버린다. 무섭지만 이미 전화를 걸었으니 떨리는 목소리로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어디냐?"

"범어사역이요...."

"안 들어오고 뭐 하냐"

"........."

"춥다. 안 혼낼 테니 얼른  들어와서 자라"

"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지만, 혼내지 않겠다는 말을 믿고 집으로 향했다.

그땐 이미 달동네가 아닌 범어사역과 5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이사 온 때였는데 그날따라 그 거리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범어사역에서 올라가 건물 모퉁이를 도니 바로 아버지가 나와 계신 게 보였다.

매서운 눈을 하고 계셨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고, 할머니도 별 말 없으셔서 둘은 그렇게 그냥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이 밝고 아버지는 출근하시고, 할머니가 자초지종을 물으셨다. 그때 역시 은진이가 거의 설명했던 것 같다. 얌체 같은 오빠 놈은 불리한 건 전부 은진이에게 떠넘겼으니.

한참 듣다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는데, 그때 두 분이 이혼을 한 게 아니라 엄마가 도망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은진이가 3살 되던 때 도망 나갔고, 도망 나갔다가 몇 달이 지나 몰래 찾아와선 오빠를 데리고 도망쳤더란다. 그때 한참 더울 때였는데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려면 버스를 탔다가 기차를 탔다가 또 버스를 타야 했단다. 더운 날씨에 안 그래도 열이 많은 애가 여러 번 차를 탔더니 탈진해서 쓰러졌단다.

결국 병원에 가게 되면서 붙잡히게 됐고, 그때 오빠는 머리를 12 바늘인가 꿰매야 했단다. 오빠 머리에 작은 땜빵 같은 게 있었는데 그게 그 자국이었나 보다.

그러나 오빠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은진이는 그 이야길 듣고도 전혀 오빠가 가엾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또 버림받은 기분을 느꼈다.


   할머니, 아버지 오빠들도 원하지 않는데, 교회 사람들도 학교 선생님이나 아이들도 은진이를 싫어했으니 엄마가 도망 나갔다가 오빠만 데리러 몰래 왔었다는 사실이 그 누구도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아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안 일과 번데기 장사까지 도맡아 하면서도 늘 "엄마가 있었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불행하지 않을 텐데" 생각하며 그리워했기에 엄마마저 자신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음화 예고 : 진짜 엄마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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