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달동네라 불리는 곳에 살았던 은진이는 학교 다니기 전까진 오빠들은 학교 가고 할머니와 아버지가 출근하시면 집 위에 있던 공터에서 놀았다. 무당벌레를 유난히 좋아했던 은진이는 공터에서 무당벌레 찾는 시간을 즐거워했고, 잠자리를 따라다니거나 잡거나, 메뚜기를 잡거나 잡아서 가지고 놀거나 튀겨 먹는 등 전형적인 시골 아이처럼 놀았다. 유일한 놀이터였던 공터에 한 날은 낡은 매트리스가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3분의 1쯤 벗겨져 스프링이 다 보였는데 그 부분을 피해 매트리스 위에서 한 시간이나 점프하며 놀기도 했다.
주인집에서 키우는 송아지를 아주 가끔 그 공터에 풀어둘 때면 송아지랑 놀기도 하고, 송아지랑 못 노는 날엔 종종 벽 사이에 작음 틈으로 소가 코를 내밀 정도의 구멍이 있어서 풀을 주며 놀기도 했다.
그러다 한 번은 소가 머리를 핥아줬는데 아무 생각 없이 기분 좋게 받고(?) 있다가 집에 가서 보니 잔뜩 떡이 져 있었고 머리를 감았지만 이상한 끈적임이 지워지지 않아 애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공터 근처에 매실나무가 있었는데 공터에서 살짝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어서 키 작은 은진이에겐 더없이 좋은 서리감이었다. 조그마한 손으로 매실을 따서 옷을 받침 삼아 나름 가득 담고는 집으로 돌아와 가려운 손을 씻으며, 매실을 같이 씻어 생으로 씹어 먹곤 했는데, 시디 신 그 매실 맛이 여전히 생각나서 침이 고인다.
7살까진 그렇게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고, 가끔 두 살 터울 오빠를 따라다니며 놀기도 했는데, 총 싸움하는데 끼었다가 총에 맞아 울기도 하고, 복숭아 서리 따러 갔다가 주인에게 들켜 높은 담벼락에서 뛰어내려 보기도 하고, 딱지 치기나 콜라(동전 던지기)나 땅따먹기 할 때도 껴서 놀았는데 소극적인 동생이랑 다니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던 오라비는 점점 은진이를 도망가듯 두고 놀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 오빠를 따라가려고 열심히 달렸는데 도무지 따라 잡히지 않는 오빠 뒷모습을 보며 주저앉아 펑펑 울어도 아랑곳 않고 골목길로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렇게 오빠와 노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던 어느 날, 동네 언니들이 은진이에게 먼저 같이 놀러 가자고 제안을 해왔고, 지금 생각해도 같이 놀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워낙 외로웠던지라 무심코 따라갔던 것 같다.
그날의 기억이 사실 아주 띄엄띄엄 희미하게 일부분만 남아 있어서 할머니가 말씀해 주신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하자면 이러하다. 은진이가 살던 곳에서 지하철 출발 지점은 종착역 바로 다음 정거장인 '범어사역' 이였다. 언니들과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멀미가 심한 은진이는 그만 잠이 들어버렸고, 눈을 떴을 땐 '남포동역'이었다고 한다. 22 정거장 총 40분이 걸리는 거리이니 차로는 얼마나 먼 곳까지 갔겠나. 태어나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이기도 하고 홀로 지하철에 남겨져 본 적 없으니 무서워서 꺼이꺼이 숨 넘어갈 듯 울고 있는 은진이를 어떤 아주머니가 파출소에 데려다줬단다.
그때 나이가 6살이었을 때였던 것 같은데 그 나이에 집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는 아이는 많지 않았다. 파출소 아저씨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했는데 울면서 절레절레 아무것도 모르오를 시전 하는 은진이를 겨우 달래고, 단팥빵과 우유를 먹여 난로 앞에 재웠단다. 그리고 만약 아침까지도 어디서 연락 오는 곳이 없으면 고아원에 보내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밤 12시가 넘어갈 때쯤 갑자기 눈을 떠서 "팔송정교회" 한마디 하고 멀뚱히 바라봤단다.
은진이가 3살 되었을 때 부산으로 이사가 손주들을 키우기 위해 범어사역 근처에서 할머니는 번데기 장사를 했었다. 장사하는 동안 아이들 맡길 곳이 없어서, 가장 가까운 교회에 있는 유치원에 오빠는 돈을 주고 보내고, 나이도 어리고 생떼를 피우거나 여느 아이처럼 손이 가지도 않으니. 덤으로 같이 받아달라 부탁해서 다니게 된 교회였다. 때마침 그곳이 생각났었나 보다.
그 말을 듣고 경찰 아저씨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팔송동(지금은 청룡동)에 있는 파출소에 연락했는데, 마침 집에서도 파출소에 신고를 해둔 참이었고. 다행히 바로 소식이 전해졌다. 새벽 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라 첫째 오빠를 데리고 할머니와 택시를 타고 남포동까지 달려왔더란다.
첫째 오빠는 은진이와 배 다른 오빠로 10살 터울이라 이미 16~17살쯤 되었을 때니,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는 나이라 아침 일찍 일 가야 하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데려간 듯하다.
새벽이라 막힘없이 택시 타고 30분 정도 달려서 와보니 난로 앞에서 쌔끈 쌔근 잠이 들어있었단다. 깨워서 데려갔는지 오빠 등에 업혀서 갔는진 모르겠지만, 은진이는 그다음 날 할머니에게 오질 나게 욕먹고 혼난 기억만 남아 있다. 그날 이후 또래라도 사람들이 무서워 혼자 있고 싶어 했고,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그림 그리기 뿐이라 그때부터 그림 그리기와 만화 보기가 유일한 취미 생활이 됐다.
그곳에 살면서도 사실 말도 안 될 정도의 안 좋은 일도 많았지만, 은진이의 유년시절을 통 틀어보면 그곳에 살 때가 가장 평화로운 편에 속했던 시절이다.
'진짜 고아'가 될 뻔했던 은진이는 최근까지 그림 대신 켈리그라피나 글 쓰기를 취미 삼아 하다가, 켈리그라피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재능 기부도 하고. 나름 '브런치 스토리 작가'라는 힘을 얻어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다음화 예고 : 엄마를 구하기로 다짐한 은진이.